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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끗 차이

by 감자나무

영상통화를 하고 있구나. 지하철에서도 유독 귀에 쏙쏙 박히는 목소리가 거슬려 간지러운 목을 참지 않고 가다듬기 시작했다. 건조한 기침을 하고 편도를 긁는 소리를 내고 나만 너의 목소리에 유난인 건지 몇 되지 않는 승객들의 눈과 귀를 관찰했다. 거슬린다. 모든 신경이 쓰인다는 상태에 거리를 두고 싶어진다. 적어도 대상의 선택에 나의 의지가 담겨 있기를 바란다. 신경을 꺼, 자리를 피해.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물러서야 하지? 인식했다는 것부터 잘못이야. 저 사람은 네가 본인의 목소리를 듣고 불편하기를 바라지 않았어. 불편할 것이라는 생각은 했을까? 지금 멀리서 내 목소리를 듣고 있는 나의 피앙새 눈빛을 너는 느낄 수도 없잖아! 조용한 공간에서 내 목소리가 아름답게 들리지 않을까 생각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소음과 소리는 한 끗 차이지. 목을 가다듬는 소리가 네가 바라지 않은 다른 사람에게 소음으로 다가올지도 몰라. 무엇이든 원하는 방향으로만 전달될 수는 없지. 받아들이는 것도 너의 바람대로 될 수 없음을 모르지는 않을 텐데.


사람과 이야기가 품고 있는 목소리와 잘 어울리는 자리들이 있다. 아무 방해 없이 넓게 퍼져 나가야 하거나 주변의 벽에 스며들어 조용히 지워져야만 하는 목소리. 너만 들어주기를 바라거나 우리 모두가 들어주기를 바라는 목소리. 도착한다는 보장도 없이 먼 곳에 있는 너에게 온 힘을 다해 던져보거나 차라리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 생각하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던져지는 목소리. 주변 사람들이 매개가 되어 결국 나에게 전달되거나 내가 매개가 되어 주변 사람들에게 퍼트리는 목소리. 귀를 기울여 남김없이 듣고 싶거나 귀를 막고 비명을 질러 내게로 찾아오지 못하는 목소리. 그 소리가 유독 불편하다면, 자리를 잘못 찾은 거야. 소리를 내고 있는 당신은 아무런 죄가 없을 거야. 전달되는 과정에서 목소리는 직무가 바뀌니까. 듣고 있는 네가 자리를 이동하거나 목소리의 주인을, 목소리가 품은 이야기를 달콤한 호박 찰떡처럼 기분 좋은 것으로 바꾸려고 노력해야지. 그게 가능한가?


하루에 한 번 일기 쓰기를 빼먹지 않도록 노력하고, 얼굴을 있는 힘껏 찌푸리고서 비어있는 자리를 채우는 일을 해내더라도 나는 당신의 아픔이 공포로 다가오니 아픔을 지우는 일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에 맞는 목소리를 찾아내지 못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엄마가 덮고 있는 따뜻한 이불 속에 들어가 애벌레처럼 누워있어도 사람은 죽는다라는 사실을 지워낼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지 않길 바랐냐고? 죽음 자체가 무섭지 않았다. 죽음 이후에 오는 것들, 가족관계증명서의 네모난 박스에 '사망'이라는 문자가 적히기 전까지의 과정들을 걸어가면서 바라보아야 하는 불친절한 비일상의 어색함에게 고개를 끄덕여주는 것이 싫었다. 일상이 비일상에게 밀려, 당신이 나를 보며 지어주던 평상시의 표정이 일그러지고 나는 어떤 표정과 말을 던져야 하는지 아직도 잘 모르고 있다는 것에서 한숨을 뱉고, 하나씩 부서져 가는 거야. 조각조각 나다가 결국 한숨까지도 부서지겠지. 커다란 목소리에 힘이 빠지고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도 내뱉지 못하게 되는 시간의 자연스러움을 알고 싶지 않다.


지하철 계단을 오르다 부모님과 낯익은 강아지 인형의 손을 잡고 천천히 계단을 내려가는 아이를 보았다. 겨울이 찾아오기 전에 인형들은 다 여름 유배를 떠나야 해. 이불속에 넣고 자면 따뜻한 것들이 여름에는 꼴도 보기 싫은 솜뭉치가 되니 벽장 속 깊은 곳에 처박아두는 거지. 이제 추운 밤이 찾아왔는데 여름 유배를 떠난 아이들은 언제 다시 돌아와? 이미 돌아왔어. 친구들은 이제 이 뽁뽁이 봉투 속에 들어가 빵빵한 베개가 되어 내가 잘 베고 자고 있지. 뼈가 부러진 것처럼 솜들이 흩어져 흐물흐물한 인형이 될 바에는 의미 있는 직업을 가지는 것이 친구들에게도 좋을 거야. 여름 유배에서 무사히 돌아온 거북이 인형을 베면서 잠을 자면서 침을 흘리면서 벽장에 처박아두는 것이 여름 유배라면 병원에 가는 것은 무엇인지를 잠시 고민했던 것 같다.

거식이와 거둥이. 두 형제에게는 이제 거상이라는 외삼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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