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음벽은 내가
물이 똑똑 떨어지는 오래된 반지하 방, 우리 집이 다시 새롭게 지어지면 말이야. 큰엄마네가 이사하면서 바꾼, 그러니까 사용처를 잃어버린 가구들. 책상, 서랍, 책장, 식탁, 작은 서랍, 옷장을 채워 넣기로 했지. 똑똑 떨어지는 자리만 피해 이 가구들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면 2년간 창고를 빌리지 않아도 될 거야. 가구탑이 살던, 진영이 방은 불을 켜두지 않았어. 한 칸짜리 책장이 붙어있던 작은 책상에는 똑똑 물이 떨어지고 있었지. 진영아, 당분간은 책상이 없을 텐데 어쩌지? 책상은 의자에 앉아 소리를 내어 글을 읽고, 또박또박 글씨를 읽을 수 있는 가구지. 끈적해진 나무판에 책을 올려두고 싶지 않아. 부엌의 불이 켜질 때, 불빛을 건네받은 진영이 방에서 물이 떨어지지 않는 곳에 가방을 내려놓고, 책을 꺼내어 나는 부엌 구석의 앉은 벵이 탁자에 숨어 있었지. 물이 떨어지던 방의 주인들은 본인이 그곳의 주인인지도 모를 거야. 습기 찬 먼지들이 표면을 덮어 손으로 쓰다듬기도 싫었던 박스와 딱딱한 가방들은 누구의 것이 아니었어. 누구의 것들을 모아 한 곳에 천천히 쏟아내고 문을 닫았지. 다시 꺼내어 주인을 찾으면 내 방이 넓어질까. 넓어지면 무엇을 할 생각이지? 누군가의 결혼식에 주인 되는 사람을 만난다면 이야기해 볼까? 당신이 20년 전쯤에 사용하셨던 화장품이 재봉틀용 기름과 당신 어머님 되시는 분의 앨범이 오래된 전압조절기가 우리 집에 있는데 찾아가시겠어요?
시골의 작은 도서관, 문을 열면 바로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대형 가습기 굴뚝에서 나오는 습기. 수증기. 책이 물을 먹는 것을 좋아하나? 건조한 곳은 냄새가 사라져. 이 미용실 주변에 식당이 많거든요. 아무리 문을 닫아두어도 습기가 차올라요. 수건을 빨아 말릴 때에도 클리닉을 받으실 때에도 습해질 거란 말이죠. 다양한 냄새들이 공간을 채워요. 제습제를 백날 천날 사고 냄새제거제와 숯과 물을 먹는다는 식물을 키워도 제습기를 이길 수가 없더라. 장마는 말할 것도 없는데, 겨울에도 느긋하게 눈과 비가 내리다 보면 결국 벽지가 울고, 곰팡이가 생기고, 아무리 닦아도 바닥이 끈적거렸거든. 이렇게 물을 모아본 적이 없었으니까. 제습기가 있으니 이제 바닥이 미끄러워. 집에 그렇게 많은 물들이 있을 줄은 몰랐지. 네 남동생 방의 시큼한 냄새가 좀 줄어든 것도 같아. 디퓨저를 넣어도 소용이 없던 거지. 옷만 해도 봐 봐. 해가 잘 들지 않는 축축한 베란다에서 말리는 것보다 제습기를 돌려보는 것이, 그것도 안 되면 그냥 건조기에 돌리는 것이 마음 편하지. 손이 바싹 말라가더라도 아니, 그건 습진이야. 나는 가습기가 무서웠나. 대단했나. 궁금했나. 마른 냄새도 불쾌한가?
우리가 앉아 있는 자리, 우리가 눕는 자리의 크기는 절대적으로 비슷하지. 네 눈과 코와 귀가 불편할 뿐이지. 재질의 촉감을 느끼는 피부도 불편할 수는 있겠다. 불편함은 상대적인 것이지. 그냥 눈을 감고 가만히 있으면 시원해진다고 자기 최면을 거는 것도 움직인 것이 맞아. 그저 현실을 자각하고 내가 그 장소에 머무르고 있지 않다고 내게서 멀어져 보겠다 선언하는 것이나 마늘 껍질을 까는 것으로 정신을 팔고 눈이 붉어지는 것이나 결국 똑같지. 우리 이제 10년은 함께 살아 보았잖아. 목이 터지게 덥다 축축하다 냄새난다 이야기해도 달라질 것은 없어. 나도 모르는 것이 아니야. 무관심. 모르는 척하는 거지. 밥솥의 밥이 얼마나 남아있는지, 다른 집 미어터지는 찬장 속의 라면과 햇반이 더 눈에 보이는 거야. 주변 동네 마트의 광고지를 모아 어떤 라면이 제일 싼 지, 오늘은 어떤 가게에서 콩나물을 사는 것이 가장 좋은지를 쳐다보는 것이 더 내 앞에 있었어. 네가 말하는 것들, 지금 불편하다고 말하는 것을 고치지 않는다고 죽지는 않아. 밥 못 먹으면 죽잖아. 매일매일 어떤 것으로 밥을 먹일까? 어떤 것으로 돈을 아끼지? 어디서 돈을 벌 수 있지? 바깥의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쳐다보든 그 인간들이 우리에게 밥을 챙겨 줘? 그런 이야기 들어서 뭐 해. 나는 몰라. 말을 걸지 마. 안 들을래. 듣고 싶지 않아. 조용히 해. 저리 가. 엄마 바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