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빛의 여정 97화 / 9장 불씨 운반자 네이즈
장편소설 빛의 여정 97화 / 9장 불씨 운반자 네이즈
모처럼 찾아온 헤르논의 수도원은 맑은 꾀꼬리와 산 비둘기 소리와 함께 아침을 맞았다. 분주하게 우물가로 가서 물을 뜨는 수도사들과 수도원 후문으로 나가 겨울 수수밭을 가꾸는 수도사들 그리고 성 아나트라를 본받아 여성 수도사들이 바구니짜는 일을 삼삼오오 모여 하고 있었다. 변덕스러운 날씨는 그칠 줄 모르고 여전히 추웠다 서늘했다를 반복하는 이 대륙은 언제 추위가 잦아들지 알 수 없었다. 봄이 언제 오나, 여름이 언제 오나 기대하는 것은 이미 예전 일이 되어버렸다. 우물이 얼지 않게 하기 위해 긴 나무막대를 넣어 깨부수는 일도 일상이 되었다. 우물이 얼면 후문을 통해 강가로 나가야 했는데 강가는 가장 추운 때에도 살얼음이 끼고 얼음 덮여있어도 다행히 물은 흘러갔다.
숙소에서 예배를 드리기 위해 신전으로 향하는 수도사들 중 얼굴이 퉁퉁 부어있거나 지난 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 지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흩어진 수도사들을 보노라면 로이딘은 살짝 동질감이 느껴졌다. 저들도 나와 같다라는 심정. 로이딘은 얼굴이 초췌한 채 앉아 설교를 들었다. 설교를 하는 얀자의 모습에선 어떠한 흐트러짐도 없어 보였다. 한편으론 그를 보면서는 이질감이 느껴졌다. "어떻게 이른 아침에도 저리 쌩쌩하시지?" 얀자의 설교는 선지자의 증언을 바탕으로 한 다른 연구서들의 내용을 설명해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빛으로 탄생한 피데라를 섬겼던 많은 피데라시스들의 삶에 대한 공통점 그리고 성자로 추대 된 자들에 대해 알려주고 있었다. 또한 호기심이 이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지금은 몇년이 흘렀 나 기억은 안 나네요. 절망의 산맥에서 동쪽 그러니까 우리 수도원 기준으로 거리상 서북쪽으로 보름 정도 걸리는 곳에는 성자들의 무덤이 있습니다."
얀자가 "성자들의 무덤"을 설명하기를 그곳은 성자로 추대된 피데라시스 수도사가 세상을 떠나면 석관에 모셔 안치한다는 것이었다. 성자는 피데라 신앙에 모범을 보이고 공헌을 한 자에게 부여하거나 피데라를 대면하고 예언과 기적을 펼친 자들 등등을 아울러 일컫는다. 그리고 얀자는 그 성자들이 가지고 있던 유물들이 "소유했던 성자가 자신의 익숙한 물건과 함께 안치되어 하늘로 올라가 피데라 앞에서 정체성을 표징하고 안녕하는 기능과 함께 그를 기리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 유물을 보면서 존경과 영감으로써 작용하는 성질의 것"임을 설명했다. 유물중에 성물이란 더 나아가 피데라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물건들로 축성을 받았거나, 피데리시스 역사에 등장할 만한 희귀하거나 고귀한 유물들을 일컫는다.
다만 외부인들에게는 성물과 유물의 정의는 모호했고 도굴꾼의 입장에서는 그게 그것이니 무엇이든 손에 넣고자 찾아갔던, 위험은 크지만 성공하면 대박치는 도박장과도 같아 피데라시스 입장에서는 이곳을 방어하는 임무가 선지자의 증언 자체에서도 공동체의 의무로써 언급될 정도로 중대했다.
성자들의 무덤은 본래 많은 유물이 묻혀 있음을 세간에 알려졌고 호시탐탐 노리는 자들이 이전부터 있어왔기에 무덤 근처에서 관리하기 위한 수도원과 피데라시스 공동체가 자리하고 있었다. 하나의 마을과도 같았고, 다만 이곳 수도원 내에 수도사들은 다른 수도원과는 달리 대부분의 수도사들이 유물관리와 함께 성물과 성인의 역사를 탐구하는 수도사와 그곳을 지키는 전투 수도사로 역할이 양분되어 있었다.
백야의 날 전까지만 해도 성자로 추대된 돌아가신 수도사들의 장례를 치루고 안치하는 평범하는 날을 보냈지만 영원한 추위가 찾아오면서 야만성이 되살아난 부족민들 혹은 도적들이 도굴하러 어슬렁거리는 빈도수가 잦아지자 교단차원에서 아예 입구를 봉해버렸다 말했다. 또한 영원한 추위로 수도원 공동체의 존속이 힘들어지자 문이 열려 신성한 무덤이 무너지지 않도록 최소한의 인원만을 남겨 놓은 채 모두 떠났다. 현재 성자들의 무덤을 지키고 있는 수호자들이 날이 갈수록 힘들어 지고 있으니 그들의 고귀한 헌신을 기리며 기도하자며 얀자가 설교를 마쳤다. 다들 눈을 감고 기도를 했다. 로이딘도 잠시 기도를 했다. 그의 마음 속에 성자들의 무덤이 단순한 설교 내용으로 들려오지 않았다. 직감이 그를 인도하고 있었다.
입을 가리고 기도를 마친 신전 안에 있던 모든 수도사들이 떠나고 로이딘과 시테온은 잠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테온은 간만에 만신전에 찾아가서 테오메자께 기도를 드리고자 한다 말했다. 로이딘은 조용히 끄덕였고 같이 가볼 생각 없냐는 시테온의 제안에 잠시 고민되었다. 그는 그냥 편히 아침 식사나 할까 했다. 시테온이 말했다.
"지하에는 놀라운 신상이 8개나 있어. 보면 놀랄 걸?"
결국 코가 꿰인 로이딘이 시테온을 따라 만신전으로 내려갔다. 만신전의 로비에서 언제나 책상에서 비몽사몽한 채 있는 수도사가 대충대충 인사하며 들여보내 주었다. 그리고 가운데 전당에서 8갈래로 나눠지는 곳까지 가면서 로이딘은 말로 만 듣던 만신전을 구경하게 되었다. 타 지역 출신의 수도사들이 각자 믿고 있는 신상에게 가서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로이딘이 조용히 시테온에게 속삭였다.
"이런 말하기 좀 그렇지만, 피데라를 섬기던 아나트라는 엄청난 대인배였던 게 분명해"
시테온이 끄덕였다.
"인정해. 다른 곳도 아니라 자기 수도원에 다른 신들을 기리는 신전을 짓게 하다니"
전당에서 속삭이던 그들을 향해 처음 보는 수도사가 말했다.
"그러니까 그녀가 빛의 사도 아니겠소?"
잠시 짬을 낸 로이딘은 시테온이 테오메자 신상 앞으로 가는 것을 지켜보다 다른 신들을 살펴보았다. 여러 신들이 보였다. 아보, 테오메자, 불로야 그리고 이름 모를 이국적인 신들까지. 아침 밥을 먹기 전이지만 뭔가 배가 부르는 듯한 출발이었다. 새로운 장소와 새로운 자극, 그리고 처음 마주하는 신들. 아까 전의 설교와 함께 머릿 속으로 로이딘은 보고 들은 것을 소화하기 바빴다. 시테온이 기도를 끝 마치자 진짜로 소화할 만한 것들을 만나러 가기 위해 그들은 만신전을 빠져나와 식당으로 향했다.
98화에서 계속...
"때가 차매 그 빛이 다시 솟아나리라"
(매주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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