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빛의 여정 96화

장편소설 빛의 여정 96화 / 9장 불씨 운반자 네이즈

by 포텐조

장편소설 빛의 여정 96화 / 9장 불씨 운반자 네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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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딘 일행이 참회자 아우테레스의 연구서 [선지자의 증언 중 악의 의지에 대한 표상과 정체에 대한 고찰]에 대한 설명을 수도원장 얀자에게 듣고 있었다. 얀자는 앞서 베일런에게 연구서를 가져오라 시켰고 잠시 후 베일런이 도서관에서 가져오자 그 기나긴 양피지를 책상 위에 조심스레 폈다. 베일런이 고맙게도 동화책 읽어주는 아버지마냥 연구서의 내용을 한 글자도 빠짐없이 읽어주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선지자의 증언에서도 쓰인 성 아나트라의 발언 "내가 보매 말로트는 검은 꼬리를 남기는 자로고, 헌데 자세히 보니 검은 불꽃이더라"

그 구절을 들으면서 로이딘은 소름이 돋았다. 캠프에서 내리꽂혔던 검은 불꽃과 갈라진 땅들.


얀자는 참회자 아우테레스에 대해 잠시 설명해주었다.

"그는 이교자였네. 전사이자 외골수. 불로야 신앙의 광신도였지."

불로야를 버리고 피데라께 용서를 구하기까지 많은 시간과 고통이 필요했다. 그는 그것을 고통 혹은 고난이라 생각하지 않았고 싸울 때면 기꺼이 맞서 싸웠던 투사였다. 불로야는 지금의 절망의 산맥, 북쪽 땅 전사들의 신을 의미한다. 좋게 말하면 전사의 신이지 실상 다른 교도들에겐 살육과 약탈의 신이었다며 얀자가 말했다. 아우테레스는 어느 날 자신이 공격했던 마을에서 깨달음을 얻게 된다. 불타는 민가와 쓰러진 사람들 사이에 서 있던 그는 우연히 동료 하나가 약탈 중에 잘 따르는 개 한마리를 데리고 가려고 그 주인을 베어 버리는 것을 지켜 보며 생명의 가치에 대한 고뇌를 시작하게 되었다. 아우테레스는 자신의 부족에서 나오고 탈출하는 데 목숨을 걸어야 했고 우연히 피데라시스 신자를 만나 그에게 많은 이야기를 접하며 자신의 세계관을 탈바꿈하게 되었다.


아우테레스는 60일간 동굴에서 고난의 참회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는 자신의 잘못에 대해 뉘우치고 눈물을 흘렸다. 가끔 광기에 빠져 불로야와 피데라가 자신의 마음 속에서 격렬하게 충돌하는 심적인 고뇌를 겪어야 했으며 미친듯이 소리치며 돌아다니기도 했다. 그는 바슬라를 넘은 뒤에 동쪽의 작은 산골짜기 동굴에서 지냈다. 가끔 지나가는 나그네나 상인들은 그를 대놓고 "미친 놈"이라 말했지만 그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과거였더라면 맨손으로도 금새 해치워 버릴 수 있는 사람들이 자신을 모욕하는 것을 기꺼이 감내했다. 그러자 60일에 피데라의 환상이 나타나서 그에게 "참회자"로써 모범을 보였다 크게 칭찬을 한다. 그의 노력이 하늘을 울렸다는 말과 함께 피데라의 환상이 사라지자 동시에 하늘에서 눈물처럼 비가 내렸다. 아우테레스는 동굴에서 나와 비를 흠뻑 맞으며 전율을 느끼며 새로운 삶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이후 그는 헤르논에 도착하여 수도원에서 헌신하기를 원했다. 과거 이력에 대해 듣고서 당시 수도원장은 그가 전투 수도사로써 능력을 발휘하리라 기대 했으나 아우테레스는 학문과 연구로써 자신처럼 고뇌에 빠진 참회자들을 위해서 헌신하겠다 다짐 후 도서관에서 공부를 했다.


이후 많은 작품과 주석서를 남기고 피데라시스의 교리를 발전시키는데 큰 공헌을 하였고 수도원장 자리도 내부적으로 검토 후 후보로 추대하고자 했으나 그가 완강히 거절했다는 설이 있다. 학문적 헌신을 자신의 정치적 입지로 더럽히고 싶지 않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렇게 오늘. 그가 남긴 연구서 중 하나를 로이딘 일행이 듣고 배우고 있었다. 얀자는 이어서 연구서에 주된 내용 중 하나인 절망과 검은 불꽃에 대해 이야기 했다.

"너희들이 본 것이 검은 불꽃이 맞다면 그것은 절망이고 절망은 곧 말로트를 의미하는 것이며..."


시테온이 뜨거운 물을 홀짝이다가 문득 궁금한 게 있어 손을 들었다. 그러자 얀자가 말해보라 하자 말했다.

"원장님. 그토록 어마무시한 악신이라면 왜 직접 나타나서 이 세계를 엎어버리지 않는 것인가요?"

얀자가 미소지으며 끄덕였다. 그러다 자신의 서재 벽에 걸린 나무로 만든 피데라시스 문양을 손으로 두드리며 말했다.

"자네 말이 맞아. 근데 아직 때가 아니라서 그럴 것 일세. 종말은 한 번에 이루어지지 않거든. 또한 피데라님이 이 땅으로 떨어지셨으니 쉽게 건드리지 못하는 것도 있어. 재미난 점을 말해줄 까?"

시테온이 눈빛이 반짝이는 것 같았다. 그러자 얀자가 이에 부응하듯 말했다.

"말로트, 이놈은 절망과 공포를 관장하고 인간의 감정을 먹고 사는 두려움의 신이지만 역설적으로 자기 자신이 두려움 그 자체이기때문에 그에 상응하는 두려움을 마주치면 쫄기 마련이다라는 거야"

시테온이 다소 놀라는 표정으로 듣고나서 말했다

"그 말은 곧 피데라님이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움직인다 보면 될 까요?"

얀자가 끄덕였다.


날개달린 시체에 대해서도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엔 베일런이 그에 대한 로이딘 일행의 목격담을 듣고선 괴물 무리들이 뛰쳐나와 공격하는 것에 대한 심각성을 일러주었다.

"루네, 네게 특수 화살을 주지 못해서 만약 놈들과 부딪혔다면 위험 했을거야. 몽땅 죽어 있어서 다행이구나."

루네가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저 뿐만 아니라 로이딘하고 시테온도 같이 있는데요 뭘. 주문도 있잖아요"

베일런이 고개를 저었다.

"들어보니까 놈들의 무리가 다행히 나눠진 것 같은데 뭉쳐있었다면.. 장담못해. 검은 불꽃으로 나타난 괴물과 늑대 그리고 캠프 근처 숲에서 본 날개달린 시체들이 한 몸으로 움직일텐데 로이딘의 말이 사실이라면 피데라님이 도와주신 것이겠지."

얀자가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 모두가 잠시 숙연해지자 그때 얀자가 입을 뗐다.

"우리에게 어떤 일이 어떻게 일어날 지 알 수 없으니 정신들 바짝 차리세. 성 아나트라가 계셨으면 무어라 조언해주셨을 까?"


로이딘 일행은 오자마자 베일런에게 잡혀 들어가 보고한 것과 함께 아우테레스 연구서의 수업을 듣고 나와 다시 숙소로 돌아갈 때 피곤해서 각자 말 한 마디 조차 하지 않았다. 손 한번 들어주는 게 그들에게는 그 날의 큰 인사였다.




97화에서 계속...

"때가 차매 그 빛이 다시 솟아나리라"

(매주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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