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빛의 여정 94화 / 9장 불씨 운반자 네이즈
장편소설 빛의 여정 94화 / 9장 불씨 운반자 네이즈
네이즈 일행이 아나티리캄에 도착해 안장 위에서 지켜보는 서부의 광경은 그들의 생각보다는 혼란스럽지 않았다. 디고에서 들었을 때는 대신전에 있던 동료 사제가 인외마경을 찾아가느냐고 묻기도 했다. 헌데 이곳 서부는 이단 추적대가 목 줄을 단단히 잡고 있는 모양인지 주변이 조용했다. 상인들은 왕래하고 있고 주민들은 겨울 수수밭에서 괭이질을 하고 있었다. 24명이 두 줄로 나란히 행군을 하는 것을 사람들은 인상깊게 보고 있었다. 네이즈가 입이 간지러웠는지 제론에게 물었다.
"이곳은 생각보다 조용한 데? 디고에서는 난장판이라고들 했는데 말이야"
네이즈의 물음에 제론은 손으로 해가 뜨는 동쪽을 가르키며 말했다.
"동부와 남부에서 텝 오부자 놈들이 작당을 해서 반란을 일으켰던 탓인지 거기는 소란이 꽤 있습니다. 서부는 아무래도 우리 왕국과 추적대 본부 사이에 끼어 있지 않습니까? 조용할 수 밖에요."
아보테에서 경계석이라 하는 국경을 넘어온 지 얼마 안 되었으므로 아나티리캄의 속사정을 정확히 알리는 없었다.
본부라는 말에 무언가 떠올렸는지 네이즈가 말했다.
"기억하나? 진땀을 흘리며 본부에서 쩔쩔맸던 거"
제론이 말 없이 끄덕였다.
그러자 네이즈가 다시 말했다.
"자네가 말이 없는 거 보니 꽤나 힘들었나 보군"
선두에 선 두 사람은 걸어가는 말 안장 위에 앉아 있었다. 22명의 호위병은 보기 좋게 두 줄로 11명씩 움직였고 군데 군데 궁사들이 섞여 있었다. 말들은 이동을 위해 마갑을 씌우지 않았다. 울끈불끈한 근육을 자랑하는 아보테의 말들은 대부분 북서쪽의 평야에서 길러온 것이다. 거칠고 훈련시키기 까다롭지만 체력이 넘쳤고 저돌적이었다. 훈련은 마굿간지기들이 알아서 할 일이지, 네이즈가 신경 쓸 일은 전혀 아니었다. 짙은 갈색피부의 말들이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하자 뒤에서 흙먼지가 일었고 근처에서 겨울수수를 가꾸고 있던 농부들은 그들이 모두 지나가자 몰래 욕을 했다.
서부 안쪽을 깊이 들어왔을 땐 마주친 어느 마을 입구에서 나무에 매달린 시체들이 보였다. 목에 걸린 나무판에는 "절도범"이라고 써져 있었다. 네이즈는 그것이 추적대원들과 아보교단의 심판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찌 신성한 아보의 자식인 나무들에게 더러운 불신자들을 매달리게 하겠는 가?. 다만 아나티리캄이 쑥대밭이 된 지라 가난한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는 뒷 배경을 그는 전혀 알지 못했고 이해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또한 곳곳에는 순찰대를 이끌며 지나가는 "명예 추적대원"이 눈에 보였다. 따뜻하고 항상 봄날같은 디고의 아보 형제들의 교단에서 매 순간이 살얼음판인 아나티리캄에 있는 파사니만의 궁여지책을 좋게 볼리 없었으며 비웃었다. 그래서 네이즈는 보자마자 빵 터졌다. 너무 웃어대는 나머지 눈가에 눈물이 맺혔고 조용하던 네이즈가 그러하니 제론이 당황스러웠다.
네이즈는 괜찮다라는 듯이 손짓했다.
"아 너무 재밌네. 수저 들 힘만 있으면 명예 추적대원으로 앉히나 봐?"
네이즈는 굳이 순찰대 앞에서 비웃으며 힘을 낭비할 필요는 없어 웃음을 참다가 그제서야 터뜨렸다.
웃음을 모두 마친 그는 진정하고 다시 말했다.
"파사니만의 머리에 무엇이 든 건지 나도 참 궁금하군"
그렇게 몇 일 후에 이질바이나 근처까지 오게 되었다. 서부에서 동남부로 향하는 데에는 꽤 시간이 걸렸고 날씨조차 암울하여 비가 세차게 내렸다. 여관에서 기숙하여 비가 그치기를 바랐고 또 내리고 피하기를 반복해야만 했다. 제론은 남부의 날씨는 개떡같다며 욕을 했다. 그러나 아랑곳하지 않고 네이즈는 여관에서 크게 자리를 차지한 채 술을 마셨다. 아침에 호위병 한 명이 소변을 보면서 앞에 보이는 이질바이나 마을이 있는 절벽을 바라보았다.
"이야, 참 풍경 좋다"
옆에서 또 다른 호위병이 다가와 같이 누면서 드넓은 이질바이나의 아름다운 바위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깎아지른 바위와 여전히 생기를 유지하려 안간힘을 쓰는 겨울초들이 군데군데 살아가고 있었다. 나무들도 괴이하게 변한 날씨 탓에 얼어 죽어버린 나무가 상당수이나 그럼에도 살아있는 숲은 있었다. 아침을 든든히 먹은 네이즈 일행이 다시 안장 위에 올라 바위산의 이질바이나까지 질주했다.
"곧 이질바이나로군. 수도원이 바위산 중턱에 있다 했나?"
네이즈의 물음에 제론이 그렇다 답했다. 다른 곳보다 사람이 드문 곳이라 이곳은 이렇다 할 소란은 없어 보였다. 다만 그 소란을 얼마 안가서 네이즈 일행이 만들 것이지만. 점심 쯤에 이질바이나 마을에 도착한 정체를 알 수 없는 기병대를 보고 주민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마을 정문을 순식간에 통과해 공터에 네이즈 일행이 멈춰서자 몇몇 사람들이 장로를 급히 부르러 갔다.
나이가 젊은 앳된 장로가 나오는 바람에 제론은 놀랐다.
"나이 상관없이 촌장을 그리 부르나 보군?"
제론의 물음에 장로가 답했다.
"그렇습니다. 원하는 게 무엇이죠? 아이들까지 놀라게 말 발굽 소리를 크게 낼 필요가 있었나요?"
네이즈가 이마를 한 번 손으로 문지르더니 조용히 읆조렸다.
"깨끗해. 정말 깨끗해.. 아름다운 풍경을 망치고 싶지는 않은 데 말이야"
말이 끝나자 제론이 손짓을 했고 22명의 병사들이 모두 검을 뽑아 들었다. 모인 사람들 중에 몇몇 사람들이 놀라 비명을 질렀고 아이들은 부모의 품 안에 꽉 안겼다. 네이즈가 말했다.
"너희들도 알다시피 저 위에 수도원에 있잖아. 그치? 그런데 거길 가기 전에 주변 정리를 좀 하고 갈 필요가 있어 말야. 굳이 수도원가서 입 아프게 떠들 필요 없이 미리."
그렇게 말한 후 크리넬에서 보여주던 "불씨 운반자"로써의 퍼포먼스를 이질바이나 주민들에게 다시 재현하는 것처럼 손가락을 치켜든 네이즈는 모인 사람들 중 한 명을 지목하면서 말했다.
"그래. 아름다운 아가씨? 나와 봐. 물어 볼 게 있다."
지목된 여성은 다름아닌 젊은 장로의 아내였다.
95화에서 계속...
"때가 차매 그 빛이 다시 솟아나리라"
(매주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 연재)
[당신의 좋아요, 구독은 작가에게 창작의 에너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