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빛의 여정 92화 / 8장 세번째 조각
장편소설 빛의 여정 92화 / 8장 세번째 조각
[선지자의 증언 중 악의 의지에 대한 표상과 정체에 대한 고찰]
태초에 계셨던 유일자께서 물러 나신 후에 통치한 선과 악의 형제들. 만물의 생육을 담당하고 그들의 영광을 받아 기뻐하는 피데라는 선을 담당하고, 만물의 고통과 죽음의 순환 그리고 절망으로 기뻐하는 말로트가 악을 담당했다. 끝을 모르는 드넓은 하늘의 주권과 통치는 바로 그들에게 있었고 땅은 하늘에 종속되었다. 선지자의 증언에서 아나트라가 피데라를 처음 본 순간을 묘사했듯 피데라는 빛이 나는 형상으로써 혹은 빛나는 사람으로써 피조물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이는 그의 성체는 빛이요, 빛이 곧 피데라임을 증거하는 것이니 태양과 함께 압도할 정도의 찬란한 빛들은 이 땅 위에 그의 영광을 표징하는 것이라.
반면, 악을 담당하는 말로트는 실로 거대한 모습으로 바라보는 자의 육안으로 나타나니, 이는 그가 피조물의 원초적인 공포와 절망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으며 다시금 두려워하는 자의 공포와 절망을 흠향한다. 만물이 생장하면 곧 시듬과 마름과 죽음이 이어지는 것은 자연계의 순환이며 그 나머지 부분을 말로트가 취했기에 하늘 왕좌는 절대적 그 누구의 것이 아니었다. 선이 있으면 악이 있고 생이 있으면 사가 있으나 최근 떨어진 별똥별과 함께 백야의 날로 북쪽 수도원 원장들과 사제들 사이에서 여러 해석이 분분하여 이를 잠시 정리하고자 글을 쓴다. 다만 하늘에 무슨 일이 일어났음이 틀림이 없다는 것은 모두들 인정하고 있다.
만약 말로트가 왕좌를 차지 해 나머지 절반의 피데라의 영역마저 집어삼키려 한다면 이는 세계의 위험이요, 가꾸어 놓은 텃밭에 흔들리는 지반이라. 선지자의 증언 중 말로트의 개입은 울로메히라는 거대 멧돼지를 떨구어 피데라를 농락하고 그의 피조물 아나트라를 잡아 먹히게 하려 했던 사례가 대표적일 것이다. 울로메히는 마을 하나를 통째로 부순 마굿간 크기만한 야수였는데 이를 토대로 말로트는 거형거상을 추구하며 이것이 인간의 감정에 압도함과 경외감을 동시에 불러 일으키는 특징을 지닌다 볼 수 있다. 본질적으로 울로메히는 야수였으므로 두려움을 압도적인 공포로 확대하여 피데라의 종들이 감히 저항하지도 못하게끔 하려 할 의도였던 것이다.
이 연구서가 쓰이는 현재, 별똥별이 떨어지고 나서 백야의 날이 지난 후 압도적인 추위가 계속되면서 인적드문 숲속에서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보고된다. 이들의 정체를 감히 추정키는 어려우나 설득력있는 가설중 하나는 평소보다 커진 괴물 늑대의 등장, 부풀어오른 시체가 다시 기어 나오는 것 그리고 우연히 찾아간 동굴에 피칠갑과 함께 시체더미를 쌓아놓고 사는 깡마른 야만인 등을 목격한 사례등은 모두 "절망"의 말로트와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거물거상의 늑대와 시체들. 사물의 형상과 특성에 변형이 가해지거나 뒤틀려버린 모든 동물은 무리에서 배척을 당한다거나 사회적 죽음으로 이어진다. 이는 인간의 공포심, 변형됨을 두려워하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회적 생물인 인간의 말초 본능에 개입하고자하는 징조라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말로트는 단순히 악마의 모습, 검거나 붉은 모습으로 표현되었던 원시적인 표상과는 달리 성 아나트라는 이렇게 증언한 바 있다. "내가 보매 말로트는 검은 꼬리를 남기는 자로고, 헌데 자세히 보니 검은 불꽃이더라"
그녀가 울로메히를 처단했을 당시 멧돼지의 꼬리가 검은 불꽃이었음을 감안하면 말로트가 개입해 탄생시키는 괴물들은 검은 불꽃과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나트라의 말이 단순 상징적 해석인지 실제 검은 불꽃인지는 아직 판단하기에는 말로트의 흔적이 대륙에서 희소하므로 계속 연구되어야 할 주제인 것은 분명하다.
마지막으로 선지자의 증언은 계속 쓰여지고 있는 경전이다. 작금의 상황에서 연구서를 작성함으로 피데라시스의 안위와 영광에 보탬이 되길 바라며 마지막 선지자가 경전의 마지막 마침표를 찍는 그 날. 우리는 그때서야 학문적 고뇌와 전투를 마치고 빛 속에서 마주할 수 있으리라. 영원한 추위가 계속되고 있어 수많은 사람들이 기근과 추위로 죽어가고 있어 크게 우려된다. 피데라의 따스한 자비와 영광이 대륙의 모든 피데라시스들에게 함께하길 바란다.
-참회자 아우테레스가 피데라시스 신전과 수도원 형제자매들에게-
93화에서 계속...
"때가 차매 그 빛이 다시 솟아나리라"
(매주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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