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빛의 여정 99화

장편소설 빛의 여정 99화 / 9장 불씨 운반자 네이즈

by 포텐조

장편소설 빛의 여정 99화 / 9장 불씨 운반자 네이즈


이질바이나의 높은 산 자락에 자리한 이질바이나 수도원은 갈리스의 말대로 오랜 역사를 품고 있었다. 설립 시기로 따져봐도 수도원들의 선배 격이었다. 초창기에는 이질바이나에서 피데라시스들의 활동이 붐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백야의 날 이전엔 이단추적대 본부가 동부 아나티리캄에 세워짐으로 피데라시스들의 순례들이 크게 위축되었다. 그리고 백야의 날 이후에는 추위가 몰아 닥치고 외딴 섬과 같은 험한 이질바이나를 왕래하기를 다들 꺼려서 차츰 수도원뿐 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도 하나 둘 씩 더 따스한 곳으로 이사를 가버렸다. 현재는 이단 추적대의 사냥 앞에서 생존만을 위해 찾아온 이들의 얼마되지 않는 피난처일 뿐. 또한 피데라시스의 이단종파인 빛의 심판이 피난민들 그리고 수도원 인원들까지 몽땅 데리고 사라지는 바람에 활력이 완전히 끊겨 버렸다. 유일하게 남은 수도사 갈리스는 더군다나 최악의 손님들을 수도원으로 끌고 오고 말았다.


네이즈는 산 자락에 위치한 수도원의 풍경을 만끽하고 있었다. 호위대도 말에서 내려 끌고 오면서 가쁜 숨을 내쉬었다. 제론은 칼집을 마치 지팡이 삼아 땅에 댄 채 팔로 기대고 있었다. 눈 앞에 나타난 이질바이나 수도원은 크기가 아담했다. 그리고 피데라시스의 수도원들이 으레 그렇듯 방어를 위해 벽이 둘러쳐져 있었다. 벽 너머로 높지 않은 종탑과 목조 건물 몇 채가 서 있었다. 하늘 위로 새들이 줄 지어 날아가고 있었다. 갈리스는 두 손이 묶인 채로 자기 집에 돌아왔고 이제 네이즈가 원하는 물건을 약속대로 건네줘야 했다.


네이즈는 당연하다는 듯이 자기가 집 주인이듯 손짓하며 수도원의 문으로 갈리스를 안내했다. 갈리스는 표정없이 수도원의 문 앞에 다가가 열쇠를 꽂고 돌렸다. 끼릭 소리와 함께 문의 잠금이 풀렸고 두손으로 차분히 밀어냈다. 문이 점점 아귀를 벌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수도원의 마당이 보였고 이어서 좌 우 그리고 앞쪽에 위치한 신전까지 그들의 눈에 들어왔다. 네이즈는 마치 그곳을 정복이라도 한 것처럼 좌우 손바닥을 비비면서 흡족한 표정으로 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에 앞서 제론과 몇몇 병사들이 수도원에서 기습이라도 있을까 봐 먼저 문에 들어가 살핀 다음에야 길을 터주었다. 네이즈가 들어가고 나머지 병사들이 재빨리 뒤따라 들어가 좌우로 선 채 도열했다. 갈리스는 그것을 보면서 처음으로 미소를 지어보였다. 물론 어이없다는 뜻이었다.


네이즈가 갈리스를 옆에 데리고 도열한 병사들 사이로 걸어갔다. 두손이 묶인 갈리스에게 네이즈가 말했다.

"자, 이제 왔으니 건네줘야겠지?"

대답을 하지 않던 갈리스가 도열의 끝에서 돌아서며 네이즈에게 말했다.

"그건 내 서재에 있소"

네이즈가 미소지었다. 그는 갈리스를 따라 좌측 건물로 향했다. 얼마 걷지 않고 건물 앞에 멈추자 네이즈가 물었다.

"여기가 당신의 서재가 있는 곳인가"

갈리스가 끄덕였다. 그러면서 건물의 문을 다시 열쇠로 열면서 물었다.

"그렇소. 내가 혼자 들어가 꺼내오길 바라오?"

네이즈가 대답하지 않고 뒤돌아 병사들을 바라보며 손짓으로 바로 자기들 앞에 있는 건물을 가르켰다.

그러자 병사 10명이 갈리스가 열은 문을 통해 들어갔다. 이어 우당탕 소리가 들려왔고 계단을 올라가는 소리도 들렸다. 네이즈가 말했다.

"피데라를 섬기는 놈들한테 된통 당했 단 소식을 들어서 말야"

잠시 대기하다 2층에서 창문이 하나 열리더니 병사가 외쳤다.

"문제 없습니다!"

그러자 제론이 먼저 문으로 들어갔다. 그 후 네이즈도 갈리스를 앞세우고 뒤 따라 들어갔다. 나머지 병사들은 그들이 들어간 건물을 반원형으로 에워싸며 경계했다.

갈리스가 실내에 들어오고 1층 자신의 서재로 향하면서 잠시 눈을 감으며 마음을 정리했다. 갈리스는 서재의 문을 열었다. 미세한 먼지가 떠돌아다니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에게 익숙한 집기들이 맞이하고 있었고 책들이 보였다. 서재는 크지는 않아서 제론과 동반한 2명의 병사 그리고 네이즈가 들어왔다. 실내에 있는 병사들은 서재 밖 문 근처에서 경계한 채 대기했다.


중요한 물건이 이 안에 들어있다. 그리고 이 구닥다리같은 곳에 홀로 남은 수도사가 그것을 내게 건네줄 것이다. 네이즈는 기대감에 흥분되어 있었다. 몇 개월 전 잃어버린 소중한 조각을 여기서 찾음으로 상실을 메꿀 수 있다니! 대주교님이 크게 기뻐하시고 아보께서 축복해주실 것이다. 다소 여유로워 보였던 네이즈가 이제 갈리스를 재촉했다.

"자! 어디있나? 보여주게"

갈리스는 자신의 책상 뒤로 갔다. 뒤에 위치한 3층 서랍 앞에서 쭈구려 앉더니 1층 서랍을 열고 이리저리 뒤지다가 피데라 조각상을 꺼내 자신의 책상에 놓았다. 네이즈의 표정이 갈리스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해 어리둥절 했다. 그러자 갈리스가 말했다.

"아 잠깐. 서랍 안에 숨겨두었는데 그거라도 구경들좀 하라고"

그러더니 2층 서랍을 열었다. 또 뒤적 거리다가 이번에는 가죽에 싸인 무언가를 꺼냈다.

"이거인가? 잠깐만 한 두개가 아니라서"

네이즈가 참지 못하고 책상에 놓인 가죽을 직접 열었다. 그 안에는 필사할 때 필요한 깃펜하고 숯 막대기 밖에 들어있지 않았다. 슬슬 짜증이 났다.

갈리스가 마지막 서랍을 열었고 역시나 가죽에 쌓인 무언가를 꺼내며 책상에 놓았다.

"여깄다!"

네이즈가 그 소리에 다시 기대감이 샘솟았고 그가 열려고 하자 이미 갈리스가 그 포장을 열고 있었다.

"어디보자 이게 조각이던가?"

갈리스가 말하면서 가죽을 열어 젖혔다. 순간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손이 스쳐 지나가면서 내용물을 낚아 챘다. 등을 구부려 책상을 바라보던 네이즈가 놀랐다. 기합과 함께 갈리스는 묶인 두손으로 네이즈의 가슴에 무언가를 찔러 넣었다. 가죽을 펼쳐 낚아 챘던 것은 바로 단검이었다. 네이즈가 비명을 질렀고 제론이 잠시 멍을 때리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머지 두명의 병사도 서랍을 열었다 닫고 있던 갈리스에게 방심하다 급히 허리에 찬 칼을 꺼내 들었다.


"죽어라. 이 괴물아!"

갈리스의 외침에 제론이 칼을 뽑아 갈리스를 향해 휘두르기 직전 네이즈가 얼굴을 찌뿌리며 그를 팔로 막아섰다. 그리고 다른 두 명의 병사도 가까이 오는 것을 물리었다. 제론이 당황하며 네이즈를 바라보았고 그간 표정 변화 없던 갈리스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네이즈의 찔린 부위가 검게 빛나고 있었다. 검은 빛이 새어나오며 나풀거렸다. 네이즈는 고통에 표정을 찌뿌리다가 이젠 다시 여유를 되찾은 듯 미소를 지었다.

"장난을 치는 구나 수도사"

그 말을 함과 동시에 네이즈는 오른 팔로 갈리스의 목을 잡아 쥐었다. 당황한 갈리스는 헉 소리와 함께 공기가 차단됨을 느꼈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네이즈는 오른 팔 하나로 목을 잡고 갈리스를 들어올렸다. 갈리스의 두 발이 허공에 뜨며 발버둥쳤다. 가슴에 단검이 꽂힌 네이즈가 조용히 갈리스에게 물었다.

"고통스럽게 죽기 전에 어서 내놓아라 조각을. 두 번 말하지 않겠다"

네이즈의 오른손이 더 힘이 들어갔고 목을 움켜쥔 손은 사람의 힘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흔들림이 없었다. 갈리스는 이제 온 몸으로 발버둥을 치며 움켜진 목에서 들끓는 목소리를 가늘게 내보내고 있었다.

"꺼져..라"


네이즈의 웃었던 표정에선 이제 분노와 살기가 느껴졌다. 그는 입을 다문 채 오른 팔로 갈리스의 목을 더욱 꽉 잡았고 손 안에선 검은 빛들이 새어나왔다. 손 안에 잡힌 목이 불로 지져지는 듯 연기도 새어 나왔다. 갈리스가 마지막으로 있는 힘껏 비명을 질렀고 발악에 가까운 기도를 외쳤다.

"피데라여! 빛을 보게하소서"

새어나오는 연기가 더욱 커졌고 고통스런 비명이 온 서재를 메웠다. 검은 불이 결국 갈리스의 목을 완전히 태워버리자 네이즈는 살점으로 닿지 않았던 목 전부를 이제 완전히 손에 쥐게 되면서 그의 목을 꺾어버렸다. 갈리스는 마지막 외침과 함께 그렇게 생을 마감했다. 그걸 지켜본 제론과 두 명의 병사들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서 있었다. 서재 안에서 비명이 들리자 건물 안 밖에서 달려왔던 병사들도 문 턱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가슴에서는 검은 불꽃이 타오르고 그의 오른 손에서도 검은 불꽃이 빛나고 있어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할 지 몰랐다. 다른 이들의 입술이 떨어지기도 전에 불꽃이 사그라들었고 가슴에 꽂힌 단검이 칼날이 녹은 채로 튀어나와 바닥으로 떨어졌다. 네이즈는 놀란 부하들을 진정시키려 말했다.

"놀라지 마라. 이 또한 아보께서 주신 능력이다."


네이즈 일행이 모두 떠난 후에 그들이 있었던 건물에서 불이 붙어 타오르기 시작했다. 맹렬한 열기와 연기를 내뿜으며 수도원에 있는 모든 것을 이내 불태웠고 화마는 밤에도 계속되어 이질바이나 어디서나 보더라도 하늘 가까이 높은 산에 위치한 수도원이 불타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곧 100화네요 감사합니다

100화에서 계속...

"때가 차매 그 빛이 다시 솟아나리라"

(매주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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