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빛의 여정 103화

장편소설 빛의 여정 103화 / 10장 아나트라의 흔적

by 포텐조

장편소설 빛의 여정 103화 / 10장 아나트라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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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보테의 수도, 디고의 서기실이 새벽부터 난리가 났다. 아보테 영역 곳곳에서 날아오는 검은 비둘기가 떼로 모여 건물 전체가 새장을 연상케 했기 때문이다. 푸드덕 거리는 날갯짓과 다리에 달린 편지들. 그리고 사람을 급파해 보낸 전령들도 줄줄이 서기실 1층 문 앞에 선 채 편지를 전하고 있었다. 평소와 같으면 문제없을 책상의 갯수와 인원들이 쏟아지고 쌓이는 편지에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서기관들은 잠결 호출에 급히 뛰쳐나와 일을 시작했다. 이미 책상엔 편지들이 수북히 쌓여 아직 봉인을 뜯지도 않은 채 놓여 있었다.

여기저기 비둘기 똥을 싸는 바람에 총무대신의 서기실 경비대도 욕을 내뱉으며 적당히 창으로만 위협했다. 비둘기를 다시 날려 보내는 것보다 날아오는 마릿수가 더 많아 서기관들은 건물 입구에서 1,2층안까지 분주하게 움직이며 편지의 내용을 정리해야 했다.


총무대신 "비잘"이 서기관들이 먼저 수습해서 정리한 서신들을 바탕으로 국왕 아넬피스에게 보고를 올리기 위해 뛰어갔다. 궁정엔 이미 다른 신하들과 왕이 모여있었다. 급히 들어오는 비잘의 이마에서 흐르는 땀을 보았는지 다들 긴장한 채로 꼿꼿이 자세를 유지했다. 아넬피스가 왕좌에서 말하였다.

"비잘, 서기실이 난리가 났다 들었소. 무슨 일이오."

비잘이 급히 인사를 드리며 서기관들이 내용을 정리한 문서를 손에 쥔 채 들어올렸다.

"폐하, 급한 소식이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나이다. 새벽에 날아온 서신, 바슬라와 마주한 동쪽 국경에서 대규모 군대가 침공하여 주변이 쑥대밭이 되었고 마을들이 불타고 있다라며 디에프 성의 영주가 보고하였나이다. 또한 방금 전 날아온 서신에는 남쪽 레비 전초기지의 사령관이 급히 방어 병력이 필요하단 서신을 보냈나이다. 다른 편지들도 마찬가지로 동쪽과 동남쪽에서 영주들과 사제들이 보내왔으며 내용은 동일하옵니다"

비잘의 떨리는 목소리를 들으면서 신하들 사이에서도 동요가 일어났다. 날벼락 같은 침공 소식이었다. 평소와 같던 냉정하고 차분한 아넬피스의 얼굴에서도 긴장이 감돌았다. 그가 물었다.

"바슬라의 군대이던가?"

비잘이 답했다.

"아닙니다. 바슬라의 군대로 보기엔 무장이 허술하며 북쪽 지방의 야만인들로 추정한다 보고했습니다"

아넬피스가 답을 듣자 한탄했다.

"허, 아나티리캄보다 먼저 불로야의 잡초들을 쓸어버렸어야 했는데"

왕 곁에 머물고 있던 대주교가 마스크를 바로 잡고는 왕에게 조용히 말했다.

"폐하의 식견은 틀리지 아니하였나이다. 아나티리캄은 소인에게 맡기시고 침략자들을 소탕하소서"

그러자 아넬피스가 고개를 완전히 대주교에게 돌려 말하길,

"그대가 어찌 하려 하오?"

대주교가 짧게 답했다.

"제가 직접. 아나티리캄으로 가겠나이다"


정신이 팔려있던 아나티리캄 정죄를 대주교가 직접 맡기로 하면서 그는 먼저 궁정에서 나왔다. 남은 신하들과 아넬피스는 불로야의 침략자들을 어떻게 막을 지 서로 토론이 오고가고 있었다. 공작 "미울"은 바슬라에게 서신을 보내 침략자의 꼬리를 치라하잔 의견을, 총무대신 비잘은 적의 수가 많으니 지역의 성들이 방어하면서 시간을 끄는 동안 군사를 나눠 각개 격파를 하자는 방법을 제안했다. 먼저 아보테의 군대가 분산되어 있으니 다시 모이게 하는 데도 당장 시간이 걸릴 참이었다. 다른 신하는 아예 아나티리캄에서 철수를 하고 침략자들 소탕이 먼저라며 이후에 다시 정죄하는 것도 늦지 않을 것이란 이야기도 했다. 하지만 아넬피스는 그것만큼은 완고했다.

"아나티리캄의 일은 이미 대주교에게 맡겼으니 신경을 잠시 끄세. 정죄는 포기할 수 없어. 이단자들을 살려둔 채 떠나면 저들은 다시 뭉칠 거야"

아넬피스의 주름 진 오른손이 사르르 떨렸다. 허나 그는 신하들에게 보이지 않으려 애쓰며 옷깃속에 팔을 숨겼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왼손으로 덮었다.


대주교는 궁정에서 빠져나와 자신의 집무실이 있는 대신전으로 향했다. 수행 사제들이 옆에서 뒤따랐고 아보의 깃발이 높게 휘날리며 시민들 사이에서 경외심을 일으키게 했다. 그가 도로를 지나가고 왕궁의 성문을 빠져나가면서 경비대는 왕 못지 않게 예우를 갖추며 인사했고, 해자에 놓인 다리를 건너 디고의 시내로 들어갈 때도 왕과 같은 인사를 받았다. 그가 탄 말 뒤로 줄줄이 뒤 따라오는 아보의 형제들 사제단은 살짝 고개를 숙인 채 대주교를 따라갔다. 마주친 시민은 고개를 숙이면서도 마스크 안에 그의 얼굴은 어떠한 지 상상하고 있었다. 양 옆으로 신전 수호대들이 대주교가 갈 길을 터주었다. 누구도 그의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그가 어떤 생각과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 지 알 턱이 없었다. 그의 언행이 어떻게 나올지 표정으론 전혀 알 수 없었으므로 마주친 자는 불안함에 긴장할 수 밖에 없었고 대주교는 마치 그걸 즐기는 것만 같았다.


한편, 쏟아지는 비둘기 떼로 정신이 없는 디고 시내의 서기실은 여전히 해가 창창한 오전임에도 갑작스런 전쟁통에 수습이 되고 있지 않았다. 이제는 망루에 서 있는 경비병들 조차 비둘기 떼가 오고가는 것을 그냥 아무 생각없이 지켜보던 때였다. 그 수많은 비둘기 중에는 오부치 가문의 검은 비둘기도 섞여 있었다. 새벽에 아나티리캄 북부에서 여기저기 쏘다니는 검은 비둘기를 심상치 않게 보았으므로 눈치를 챈 오부치가 병사를 시켜 디고로 보냈다. 오부치가 보낸 검은 비둘기는 편지를 보내는 용도가 아니였다. 그의 비둘기가 다른 비둘기들과 섞여 성벽을 넘고 들어가서 서기실 지붕에서 멤돌다 2층 창문을 통해 휙 들어가 버렸다.


푸드덕 걸리는 비둘기가 이미 한 둘이 아니였지만 서기관들은 중요한 편지라도 있을 까 한 마리도 놓칠 수 없어 내버려 두고 있었다. 사무실엔 비슷한 내용의 침략 소식이 쌓여 있었고 오부치의 비둘기는 다른 비둘기처럼 사무실 바닥에 안착하다가 다른 비둘기가 들어와 파닥거릴 무렵에 책상 어딘가쯤에 내려앉더니 갑자기 뭉텅이째 종이를 잡고는 창문을 빠져나갔다. 이때 날갯짓에 분간을 못하는 서기관들은 아나티리캄에서 온 도둑 비둘기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렇게 2층 서기실은 비둘기와 씨름을 하고 1층에선 전령들의 편지를 하나하나 받고 있을 때에 오부치의 비둘기는 다시 하늘 높이 날아올라 디고의 성벽을 넘어 경비병들의 시야에서 벗어났다.



104화에서 계속...

"때가 차매 그 빛이 다시 솟아나리라"

(매주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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