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빛의 여정 111화 / 11장 성묘 수호대
장편소설 빛의 여정 111화 / 11장 성묘 수호대
헤르논 수도원에서 한 주가 흘렀다. 아보테 동쪽의 성, 디에프가 함락되었단 소식이 알려지자 로이딘은 초조해졌다. 바슬라의 영토를 거쳐 아디일라의 야만인들이 짐을 싸들고 디에프에 눌러앉으려는 심산인지 떼를 지어 내려오고 있단 소식도 같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강 건너 북쪽 땅을 진입하기 위해선 야만인들과 반드시 마주칠 수 밖에 없었다. 바슬라 강의 다리들은 바슬라가 통제하고 있으며 아디일라 사람들이 분주하게 왕래하고 있었다. 도시국가 바슬라와 피데라시스 교단이 우호적인 건 과거의 일일 뿐. 이그네움 보급을 두고 간접적으로 충돌하는 경우가 많았졌던 터라 관계가 이전만 못했다. 더욱이 피데라시스의 이단종파 "빛의 심판"이 훼방을 놓는 바람에 갈등이 불거졌다. 헤르논 수도원에서 전투 수도사들인 로이딘 일행이 찾아 왔다는 것을 고깝게 보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그와 별개로 지금까지 전투 수도사를 자기네 상단의 용병으로 채용해서 잘도 써 먹은건 무시할 순 없겠지만.
월요일 아침은 정상적으로 연습장에서 훈련하고 예배를 들으며 얀자의 설교를 들었다. 간혹 시간이 비는 날은 교대로 수도원 내 작업도 함께 해야 했기 때문에 로이딘은 나무를 베러 갔다. 진달라가 만들어 준 도끼는 내려놓은 채. 베일런은 제자 세 명이 위험에 처할까 봐 시기를 주의깊게 조정하고 있었다. 수도원의 생계를 책임지는 상인 겸 바깥 세상에 대한 정보를 모으는 수도사들이 복귀할 때마다 베일런은 바슬라와 아보테 국경의 상황을 물어보고 점검했다. 화요일도 마찬가지로 강 주변이 분주했지만 화요일 저녁부터 차츰 아디일라의 후방부대들이 흩어졌다. 잔류하는 부대가 얼마남지 않자 베일런은 수요일 오후나 저녁에 로이딘 일행을 보내기로 했다. 그리고 그들이 출발하면 성묘 수호대에게 검은 비둘기를 보낼 것이다.
수요일 새벽과 이른 아침에 복귀한 수도사들이 베일런에게 가도 좋다는 식의 신호를 주었다. 바로사의 귀에도 들어갔지만 바로사는 자기 할 일만 할 뿐 내색하지 않은 채 수도원 영내를 돌아다니며 수비대을 시찰했다. 베일런은 로이딘 일행이 떠날 준비를 시켰다. 로이딘, 시테온 그리고 루네는 전투 수도사의 갑옷을 입고 잠시 손에서 사라졌던 방패를 다시 잡았다. 진달라가 만들어 준, 주문이 각인 된 무기들도 손에 쥐었다. 루네는 화살통에 화살을 채웠고 시테온은 혹시 몰라 자신의 방에서 말린 약초들을 가죽 주머니에 담아 품에 넣었다. 로이딘은 방에서 대기하면서 손가락 길이만한 조각 3개를 나란히 펼쳐보면서 넋을 놓은 채 구경을 하다가 주머니에 넣고 끈을 묶어 목걸이처럼 찼다. 오후의 공기가 평소보다 더욱 차가웠지만 얀자와 베일런 그리고 몇몇 수비대와 바로사가 배웅을 했다. 진달라도 있었다. 얀자가 두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있다가 입을 뗐다. 그의 입에서 입김이 나왔다. 얀자의 코는 빨갰다.
"두번째 출정이군 로이딘, 시테온, 루네. 이번에는 가서 확실한 성과를 얻기를 바라겠네"
베일런이 다소 착잡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얀자 옆에 서 있었다. 얀자가 그들을 향해 기도를 해주었다.
"지고하신 영광의 아버지 피데라시여, 당신의 잔흔을 찾아 세 명의 수도사들이 다시 떠납니다. 지금 가는 곳은 험난하나 마음의 빛을 주시고, 그들 앞에서 인도의 빛을 선사하소서. 생명의 피데라여 자녀들을 지켜주시고 끝까지 살아남아 당신의 영광을 돌릴 수 있도록 허락하소서"
기도를 마치자 주변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손으로 입을 가리며 동의의 표시를 했다. 무덤덤하던 바로사가 그들이 등 돌아 나가기 전에 말했다.
"성묘 수호대를 잘 부탁한다."
베일런도 바로사 옆에서 어색한 듯 서서 말했다.
"그들이 기다리고 있을거야"
그렇게 수도원에 머문 지 한 주가 지나서 로이딘 일행은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로이딘은 도끼 손잡이를 쥐고 등에 맨 방패의 무게를 느끼며 말을 탄 채 동료들과 나란히 가고 있었다. 이번에도 말을 잃어버리면 다음 출정때는 빌려주지 못 할수도 있단 바로사의 메시지를 베일런이 전달했다. 그래서 말에서 내린 후 이동할 때 미리 안전한 장소를 확보하여 말들을 묶어 놓고 움직이되, 일행 중 한 명이라도 반드시 되찾아 오기로 약속했다. 루네가 그 주제에 대해 말했다.
"셋이 아니라 6명이 가는 느낌이야. 우리 셋하고 여기 보호해야 할 귀족 3마리"
시테온이 고삐를 잡고 느긋하게 가면서 말했다.
"그럼 귀족들 위에 네가 감히 올라타고 있는거야?"
루네는 시테온의 하찮은 농담에 대응하지 않았다. 수도원의 정문을 통과하며 마주하는 오후의 숲 속은 험난한 추위에서도 생기가 있어 보였다. 눈이 내리고 시냇가가 얼어붙음에도 이 나무들은 도무지 포기를 모르는 것 같았다. 만신전에서도 예배를 드리는 몇몇 이방수도사들은 수도원의 강인한 숲조차 신성하게 여기고 있었다.
로이딘이 혼잣말 하듯 그들에게 물었다.
"다리를 통과하고 나서 아디일라를 어떻게 피해야 할까?"
베일런은 그들에게 바슬라 다리를 건너가는 건 문제가 없지만 북쪽 영토에 들어간 이상 돌발변수가 투성일것이라 일러주었다. 아디일라의 병사들을 만나거든 무장 상단의 용병들이라며 둘러대라 했지만 로이딘의 마음이 편치 않았다. 시테온이 답했다.
"아디일라 놈들도 용병 수도사들을 한 두 번 본 게 아닐텐데 베일런의 말 대로 하면 되지않나?"
로이딘이 시테온의 되물음에 답했다.
"문제는 그렇게 둘러대더라도 그 다음 놈들의 제스처가 어떠할 지 알 수 없다는 거야. 만만해보여서 갑자기 공격한다거나 아니면 쪽수로 우릴 납치한다거나 한다면.."
루네가 듣다가 나지막히 말했다.
"그러면 주문을 써야겠지."
이들이 가진 주문은 이러하니, 로이딘의 주문은 땅을 뚫고 나오는 빛 줄기로 괴물을 관통해 순식간에 티끌로 흩날려버렸다. 그의 주문은 아나트라의 주문이기도 하면서 쉽게 볼 수 없는 선지자의 주문이기도 했다. 시테온의 주문은 그의 손에 부여된 육체와 영혼의 치유능력이었다. 동료 중 누구라도 세상을 떠나기 직전이라면 시테온은 상처를 봉합하고 영혼의 정신을 일깨울 수 있었다. 루네의 주문은 자신을 휘감는 돌풍으로 육안으로 보이는 곳으로 순식간에 당도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적은 저항하지 못한 채 그녀의 소용돌이 휘말려 제 몸 하나 가누지 못할 것이다.
로이딘이 말했다.
"다른 건 몰라도, 시테온의 주문이 사용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어"
시테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야 주문을 실전에서 써보고는 싶지만 네 말대로 그걸 써야 할 상황을 맞닥뜨리긴 싫어"
피데라시스의 주문은 피데라가 인간의 언어에 부여한 신성한 능력이요, 그의 영광을 표출하는 하나의 수단이기도 했다. 같은 문장으로 된 주문을 미치기 일보 직전까지 수개월 간 읆조렸던 이 세명은 그제서야 전투 수도사로 거듭났다.
아침, 오후, 저녁 할 것 없이 공기를 가르며 그들은 헤르논에서 바슬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성자들의 무덤이 있는 유령도시 라베스트리아. 성지 수호란 힘겨운 사명을 감당하고 사방이 침략자로 가득한 동굴 무덤에서 꿋꿋하게 자릴 지키고 있는 피데라시스의 성묘 수호대를 찾아 접촉하는 것, 그곳에서 로이딘은 아나트라가 남긴 편지로 보았던 성물의 정체를 보다 자세히 알게 될 것이다.
*2026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112화에서 계속...
"때가 차매 그 빛이 다시 솟아나리라"
(매주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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