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의 성장일기 134
벽돌시리즈 백삼십 사 번째
"아오 쪽팔려! "라디오 녹음을 마치고 편집하고 다시 들으며 외친 외마디 비명이다. 1회 차 녹음은 로보캅 부럽지 않을 정도로 거의 인간 AI가 되어 최대한 안정적으로 읽어나가려 노력한 나머지 일반적인 분위기의 음성이 아닌 있어 보이려는 목소리가 난다. 나는 일반적인 편안한 대화를 하고 싶지만 그게 현재 쉽지는 않다. 왜냐하면 그 순간 작성한 원고의 대사 흐름이 날아가버린다. 아직 초보의 딜레마라서 그런지 자연스럽게 말이 트이는 날을 기다리며 2회 차 녹음을 마치고 왔다.
촐싹스런 인문학 토크쇼를 방향으로 슬슬 시동 걸고자 2회 차는 내 생각이 담긴 이야기를 풀어놓고 왔다. 점차 음량이 환관으로 올라갈 정도가 되면 아마도 그때는 편안하다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배어있을 것이다. 예전에 무한도전에서 목욕탕특집할 때 다 같이 모여서 초심으로 돌아가자라는 느낌으로 유재석부터 노홍철까지 신인시절 모습이 나오는데 손발이 고사리손 될 정도로 오그라드는 어리벙벙한 모습, 유치한 당당함이 눈에 띈다. 당사자는 얼굴이 붉어지고 가운으로 얼굴 가리기 바쁜 모습이 나온다.
거장들도 누구나 갓난아기 수준의 신인시절이 있다는 것이 어쩌면 일반인들에게는 위로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결국 그들도 사람이라는 것과 저렇게 대단한 사람들도 저랬구나를 보면서 나도 뭔가 해낼 수 있단 희망을 얻게 된다. 말 많은 심형래나 친하다고 알려진 김용만도 유재석이 저렇게 클 줄 몰랐나 보다. 골리앗도 갓난아기 시절이 있듯이 우리들의 처음은 언제나 어색하다.
대학교 처음 발표 때도 어버버 한 상태로 식은땀을 흘리며 마치기도 하고, 사람들 앞에 자신을 소개할 때는 그 시선에 압도되어 뭐라고 말이 떠오르지 않는 경우도 많다. 내가 중학교시절 적어놨던 작은 노트에 판타지스러운 설정들이 가득하다. 그래도 힙스터 기질 어디 안 간다고 남들은 멋있는 거 좋아할 때 나만 원주민이나 독특한 설정에 빠져서 적어놓았는데 지금에서 보면 깜찍하기도 끔찍하기도 하다(어휴 내 고사리)
그런데 그런 시작이나 어떤 행동을 간헐적으로라도 했기 때문에 그것이 이어져 지금의 위치에 온 것임을 볼 때 지금의 시작을 한번 살펴본다. 결과가 좋든 안 좋든 예전의 원인들이 지금의 결과를 도출해 낸 것을 보며 성적표를 받아 들면 그나마 23년도가 가장 높은 점수를 차지한다. 그래서 행복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상태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스트레스도 쌓이기도 한 양면의 한 해였던 것 같다.
초창기가 없으면 현재도 없으니 이걸 달리 생각해 보면 미래를 어떻게 만들고자 한다면 초창기인 현재 어떻게 해야할지를 봐야 할 필요가 있다. 가끔 24권의 일기 중 하나를 골라 넘겨본다. 별의 별생각을 많이 했구나 하면서, 아 맞다 이게 있었지라고 돌아본다. 그런데 현재를 평가하는 주요 기준이 초창기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단정 짓기엔 위험하다. 사실 여기까지 오기까지 시작 하나로 정해진 결정론적인 결과도 아니니까 말이다.
우리 집 고양이가 넙데데 드러누워 잠에 빠진 것을 보면 한숨부터 나온다. 아이고 저 돼냥이.. 굴러가겠다.
꼬맹이 시절에는 얼마나 활기 치며 다니다가 귀여운 두 눈망울을 보노라면 귀여움이 절로 뿜어져 나왔는데 지금 보면 웬 배 나온 중년 아저씨가 내 침대에 누워계신다. 금방이라도 믹스커피 좀 타오라고 시킬 것만 같다.
어쩌면 우리 형이 전국도보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그때를 좋게 평가하듯이
어떻게 보면 모든 시작은 활기차고 좋은 추억이기도 하기에 고이 간직할만한 물건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