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일기 벽돌시리즈 369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삼백 육십 구번째
다시 돌아왔다. 몇 달 전에 썼던 글의 주제였는데 "우리 다시 학습해 보아요!(?)" 주관이 존중받는 사회야말로 건강하다 생각한다. 따져 보자. 본인만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털어놓을 데가 과연 얼마나 되는가? 그리고 암묵적으로 누군가의 의견에 대해 벌써부터 손석희 아저씨가 생각날 정도로 반론을 제시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한 게 우리가 처한 일상이다. 또한 살아가면서 본인의 주관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를 털어놓는다는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위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서 이런 자기만의 주관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혹은 받아들여주는 기준은 상대적으로 높게 책정되어 있다. 강연프로그램에는 나가야 본인 삶의 궤도를 대중들이 "와아~"하고 받아주지, 웬만한 사람들은 서로 간의 주관에 대해 "지가 뭐 별거나 된다고?"라고 생각하기 쉽다. 나도 그렇다. 누군가의 의견이 잘난 척으로 들린다. 그런데 어느새 잘 나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노라면 "풉"에서 "와~"라고 바뀌어 있다.
각자만의 인생관 그리고 가치관을 사랑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것이 오늘 메시지의 전부다. 하지만 또 다르게 갈대처럼 이리저리 쏠리는 사람들이 많은 거 같아 혹은 고민들을 하고 있는 것이 보이곤 한다. 어떻게든 자기 삶의 테두리 안에 누군가의 인생관을 넣기 위해 노력한다. 최근 베스트셀러 책들이 호불호가 갈리듯 자기 계발서가 자기만의 주관을 털어놓으면서 남의 주관을 침해하는 경우가 있음을 본다.
본인이 이야기하는 것은 철학이고 남이 이야기하는 것은 개똥임을 주장하는 것. 물론 내 의견 내 생각이 당연히 중요하긴 하며 지켜나가야 하는 게 맞지만 그걸 넘어 넌지시 강요하거나 그것만이 진리임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팩트라고 들고 오며 혹은 권위 있는 누군가의 주장을 들고 오며 그것만이 맞다는 이야기는 자기 사상이 취약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강요는 누구나 싫어한다. 주장하는 이의 문제가 있다면 받아들이는 사람의 문제도 있다. 나만의 가치관 혹은 인생관은 그 누구도 터치할 수 없는 어쩌면 신성의 영역이다. 삶의 궤도를 바꿀 사람은 없다.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 빼고는(자유의지 논쟁은 별개로 하자). 그러나 장학퀴즈나 객관식 문제는 줄 곧 차게 이야기를 잘하지만 본인 생각을 이야기하자고 하면 눈치부터 본다. 물론 그게 주관이 없어서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나의 생각을 온전히 사랑하는 것이 자존감의 출발이다.
아직 긴장의 끈을 놓으면 안 된다. 여기서 아집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개인적인 생각이 이는 태도의 문제일 수도 있단 생각도 든다. 즉 동의는 안 하더라도 그냥 들어주기만 해도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 말하는 이의 아집과 듣는 이의 아집이 충돌하는 그 순간, 백 분 토론이 시작된다. 누군가의 가치관이 물질로만 가득하다고 해서 그게 천하다고 생각하거나 반대로 정신적 가치에 대해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그것 가지고 뜬구름 잡는 소리라고 하기 대단히 쉬워진다.
한 가지 생각해볼 것은 가치관, 인생관에 한 해서 그 자체가 무엇인지 따져본다면? 즉 철저히 주관의 영역이므로 어디까지나 내 테두리 안에서만 다루어야 한다는 것. 그의 가치관은 그녀의 인생관이 될 수 없다. 그녀의 가치관이 그의 인생관이 될 수가 없다. 각자만의 자존심이 아니라 자존감을 챙겨야 하겠다면 지금 나의 인생관이 무엇인지, 가치관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독자와 저를 위한 일말의 영감, 벽돌시리즈는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