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의 성장일기 38
벽돌 시리즈 삼십팔 번째
퇴근 후, 귀가 후 잠을 자기 위해 침대에 누울 때쯤 오늘을 회상한다. 꼬리를 물고 과거도 회상한다.
내가 등장하는 온갖 장면들이 떠오르는 데 가끔은 쪽팔릴(?)만한 장면이 나오고 기억이 생생하게 나타난다.
그 순간 강렬한 감정과 특정 장면이 몰아닥치면서 이불속으로 얼굴을 숨기거나 이불을 발로 차는 그 유명한 이불킥 장면이 나온다. 누구나 다 창피한 순간이 있고 부끄러운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가끔 나는 욕실을 진실의 방으로 부른다. (영화 범죄도시에서 나오는 진실의 방이 아니다.)
샤워를 할 때 부지불식간에 떠오르는 창피한 순간이나 후회했던 것이 떠올라 욕을 한다거나 그 순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진솔한 말을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가족과 함께 쓰는 욕실은 나 말고도 우리 가족이 쓸 때도 볼륨이 커서 소리가 문을 닫아도 흘러나온다. 그래서인지 진실의 방이라 비유하자 우리 가족은 크게 동감하는 것 같더라.
발표 때의 내가 긴장하거나 떠는 말투를 하게 될 때 아니면 평상시에 내가 옹졸하거나 평소 이미지와 정반대의 모습을 상대방에게 보였을 경우 수치심이 생겨난다. 우리가 강의 시간에 의견 개진을 잘하고, 적극적인 이미지로 생각하는 미국인들도 발표공포가 상당하다는 보고가 있다. 만국 공통의 수치심인 것이다. 대중 앞에 설 때 자기를 바라보는 무수한 눈동자와 표정들. 이내 내가 무대를 열심히 준비해서 사람들을 압도해야 하는데 내가 압도당하는 경우가 많다.
야외활동, 길거리에서도 수치심을 느낀다. 나도 대인기피가 비슷하게 있어서 예전에는 버스정류장 아니면 번화가를 걸을 때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지고 창피했다. 굳이 대다수의 사람 앞에서 내 모습을 보이는 경우 아니어도 스스로 수치심을 느낄 때도 많다. 혼자서 무엇을 할 때 뭔가 일탈 혹은 자기가 생각한 기준에서 벗어난 행동을 했다고 느낄 시 양심의 가책 또는 수치심을 느끼기도 한다.
쪽팔리는 순간과 상황들이 무수하다 보니 사람들은 이내 위축되고 뭔가 누군가에게 의견을 꺼내거나, 요구하고 싶어도 못할 때도 있다. 예전에 강의나 발표를 들을 때 궁금한 점이나 말하고 싶은 것을 부끄러워 참을 때도 있고 내가 식당이나 카페에서 주문이 잘못되었거나, 야외에서 남과 뭔가 부딪힐 일이 생기면 그런 경우가 많았다.
내가 심리학을 하겠다고 결심하는데 영향을 주고 나에게 크나큰 영감과 도움을 준, 내가 제일 존경하는 심리학자가 있다. 바로 앨버트 엘리스다. 그에 대해 이야기할게 많지만 오늘은 수치심에 다루고자 하니 다음에 말하도록 하겠다. 앨버트 엘리스도 한때는 수줍음쟁이라서 남들 앞에 서는 것을 부끄러워했다. 그가 나중에 고안한 "수치심 극복 연습"이란 것이 있다.
그가 제안하는 연습은 정말 보통 용기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사람들의 시선과 야외에서의 수치심을 극복하고자 내담자에게 지하철에서 뜬금없는 함성을 지르게 해 보거나, 이상한 복장을 하고 돌아다니거나,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다가가서 이야기를 한다거나 춤을 춘다거나 다양하다. 남들이 보면 특히 우리나라에서 보면 "왠 또라이가 있냐?"라고 십중팔구 생각할 그런 행동들 말이다.
준비하고 처음 실천하는데 쉽지는 않으나 막상 하면 의의는 생각보다 사람들이 자신에게 해를 가한다거나 직접적으로 뭘 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고 하는데 이것도 어쩌면 홍수법과 비슷한 원리다. 경험이 가르쳐주듯 직접 해봄으로 생각보다 사람들이 나에 대해 적대적이지 않다거나 오히려 같이 춤을 춰주기도 하고 리액션을 해주는 것을 보면 모든 사람이 나를 미친 X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느낄 수 있다.
이건 내가 따라 하기에는 여전히 준비가 안됐다. 나중에 해볼 생각은 있긴 하지만... 하여튼 그가 말한 수치심을 극복하는 방법은 결국 뻔뻔해지고 낯짝이 두꺼워지려면 경험을 많이 해봄으로 나의 수치심에 대한 아집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점에 있다.
그리고 첨언하자면 대중 앞에 서거나 남들과 대화할 때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며 의견을 말하거나 발표하기도 하는데, "내가 무슨 궁예도 아니고 그 사람 속마음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설령 안다고 해도 내가 그 사람 생각을 마인드 컨트롤하는 초능력자도 아니니 그가 어떻게 생각하든 말든 나는 하고 싶은 대로 그냥 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리고 그 사람 시선에 대해 내가 좌지우지된다는 건 정말이지 억울한 일이 틀림없다!
개인적인 수치심도 비슷하다. 이미 엎질러진 쪽팔림에 대해선 어쩌지 못하니 그냥 인정하거나 그때의 순간도 결국 내 이미지에 어긋나서 창피한 경우가 많을 수 있다. 하지만 케이스바이케이스라는 절대적인 진리(?) 앞에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것으로 스스로를 위로하며 다음에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기에 성장의 경험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수치심으로 인해 내 일상에 불편감이 생긴다면 충분히 즐거워할 수 없다. 모르는 사람과 이야길 한다거나 요구를 한다는 등 많은 경우가 자의든 타의든 생길 수밖에 없는 데 그것을 하려고 온갖 결심과 고민을 하게 되면 심한 에너지 낭비다. 뻔뻔해지는 것이 정말 FunFun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