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일기 벽돌시리즈 394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삼백 구십 사 번째
유럽의 역사는 동양의 중앙집권적, 서로 다른 민족과 왕조끼리 부딪히는 역사와는 거리가 조금 있다. 봉건제도와 느슨한 연합국, 한 명의 통치자 가문에서 여러 친척들이 나뉘어 자기네 땅을 각자 다스리고 있었다.
스페인에서 간신히 독립한 이 초창기 독립국의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했다. 바다보다 낮은 땅, 곳곳이 호수의 담수로 뒤덮여 있으며 비만 오면 흘러 넘쳐 나막신을 신고다녀야 했던 작고 불안한 이 땅에서 자라난 독립국이 당시 세계를 호령할 줄 누가 알았을까?
상식적으로 모두 다 아는 사실, "물이 너무 많으면 식물이 썩어버린다라는 점". 꽃과 식물을 키워본 사람 누구나 물 조절을 실패해서 잎과 줄기를 썩어버리게 한 안타까운 경험이 한번쯤 있을 것이다. 네덜란드도 마찬가지였다. 이곳에 정착했던 네덜란드인들의 고민도 홍수 또는 바닷물, 호수의 담수가 넘쳐 흘러버려 땅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작물을 도저히 키울 수 없게 만들었단 점이다.
네덜란드의 이름 자체가 "저지대 지역"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바다보다 높이가 낮은 이 땅에서 물과의 전쟁은 일상이 되었다. 지금 당장 먹고사는 문제와 생존의 문제가 이 물과의 전쟁과 직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오랜 간척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강물과 바닷물을 차단하기 위해 제방을 쌓고 안쪽에 모여있는 물들을 퍼내기 시작했다. 네덜란드 하면 떠오르는 유명한 이미지, 바로 풍차를 이용해서 이 물을 퍼담아 밖으로 배출해 가며 그들의 땅을 넓혀나가기 시작했다.
이런 고생 끝에 위기는 기회가 되었다. 물에 잠겨있던 땅들은 그만큼 유기 영양분이 가득해 낙농업을 발달시키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향후 있을 튤립 버블의 배경은 작물을 키우는데 효과적이었던 토지환경이 마련되어 있었다는 점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독립 후에도 스페인이 눈칫밥으로 여전히 압박을 가하자 네덜란드인들은 세계최초의 주식회사와 증권거래소를 세워서 동인도회사를 세우고 식민지 사업과 금융업을 발달시켜 나간다.
여전히 자신들이 딛고있는 본토의 땅은 작고도 작았지만 그들의 눈은 드넓은 바다로 향했다. 당시 해운업에서 최대효율을 발휘하는 화물선인 플뢰위트(fluijt) 범선을 개발했다. 이 배는 갑판은 좁았지만 아래로 갈수록 뚱뚱한 모양을 취했는데 다른 상선과 화물선에 비해 더 많은 물량을 적재할 수 있음과 동시에 적은 인력으로 운송업 경쟁력에 우위를 가져오게 된다. 17세기 유럽 절반 가까이의 물량 운송을 네덜란드가 담당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유럽의 바다에는 청어가 넘쳐났다. 그리고 이 청어가 유럽인들의 식단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기에 청어잡이에 너도나도 참여하고 있었다. 네덜란드의 어부중 한 명이었던 빌럼 뵈컬손(Willem Beukelszoon)이 청어를 쉽게 손질할 수 있는 끝이 V자로 갈라진 작은 칼과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절임법을 개발하여 국가적으로 손질과 보관방법을 보급하고 규격화를 한 결과 식품 수산업으로도 황금기를 열게 된다.
영국 앞바다에서 청어를 싹쓸이하는 네덜란드인, 식민지에서 계속 기웃거리던 네덜란드인들 그리고 화물업과 운송업으로 유럽의 큰손으로 탈바꿈하게 된 네덜란드를 상대로 어느새 라이벌 의식과 위협감을 느끼게 된 영국과 프랑스 연합은 영란전쟁으로 네덜란드의 황금기를 끝내게 된다. 남한의 40프로에 불과하던 크기의 작은 이 나라의 역사는 상업에 대한 혁신 그리고 사상적으로 동시대의 국가들에 비해 자유로웠던 시대상을 비추어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린 이야기처럼 주어진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가능성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Je Maintiendrai(나는 유지할 것이다). 네덜란드를 독립시킨 국부 빌럼 1세의 표어로써 자신의 품위와 위신, 신앙을 지키기 위한 맹세라고 한다. 오늘날 네덜란드의 표어로 쓰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