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끝나가고 10월의 시작을 알리는 이 시점에서 오늘의 날씨는 나름 쌀쌀하다. 가끔 아파트 경비실 앞에 혹은 우체통에 산더미 같은 짐들을 보노라면 내가 시킨 택배나 가끔 오는 선물들이 생각이 난다.
인터넷에서 결제를 해 택배를 시키면 배송일자가 나오는데 내가 생각하기엔 어른들의 산타클로스는 당연 택배기사님이시다. 예상은 해도 몇 시에 도착할지 모르는데 도착 당일 늦잠 자고 있을 때 도착해 있으면 그것만큼 기쁜 일도 없다.
일상에서 우리는 기대를 은근 많이 한다. 심지어 자기는 욕심이 없다 생각을 해도 기저에는 분명 기대가 있을 수밖에 없다. 사람이란 살아있기에 욕심이 있고 욕심이 있기에 기대한다. 무언가를 기대하는 행위는 삶의 원동력이나 동기부여가 된다. 극적인 예로 쇼핑중독인 사람의 패턴을 보노라면 물건 자체에 흥미를 가지기보다는 사는 과정과 그리고 그것을 기다리는 감정, 받고 오픈할 때의 감정이 그 사람이 쇼핑을 멈추지 않게 하는 원인이 된다.
우리도 흔히 산 지 얼마 안 된 물건이나 핸드폰을 처음에는 애지중지 어화둥둥하다가도 며칠 지나면 침대에 냅다 던지거나 아무렇게나 놓는 것을 보면 폰 입장에선 "어떻게 사랑이 식었니?"라고 드라마 속 여자 주인공 멘트를 칠 법도 하다. 하지만 이런 패턴은 누구나 사람이기에 그런 지속적인 감정을 겪기란 쉽지 않다.
애초에 기대나 보일 듯 말듯한 욕망에 대해 사람은 더 환장(?)을 하고 매달린다.
그런데 이런 기대가 점차 당연하다는 듯한, 당위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면 일상의 감정이 달라진다. 뭔가를 기대하거나 뭔가가 이렇게 저렇게 되어야만 하는 조건이 갖춰지는 것이 마치 일반적인 상태로 받아들이면 스스로 상처 입기가 쉬워진다. 내가 존경하고 있다던 심리학자 엘리스도 사람의 비합리적인 신념의 고통이 바로 당위성에서 온다고 가르쳤다. 당위적인 혹은 절대적인 것을 내 삶에 있다거나 바라게 되는 것을 전제한다면 삶은 매우 피곤해진다는 것이다.
솔직함과 유머를 좋아하던 엘리스는 자위행위를 뜻하는 "masturbation 마스터베이션"을 "mustbation 머스트베이션"이라는 반드시라는 뜻의 머스트가 들어간 합성어를 쓰며 당위성의 해로움을 설명하기도 했다. 즉 당위성을 갖는다는 것은 자위행위밖에 좀 더 노골적으로 이야기하면 쓰잘데기 없는 자기 합리화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어떤 조건이나 상태를 나에게 혹은 상대에게 더 나아가 세상에게 강요하거나 전제로 생각하면 결국 수많은 변수에 의해 자기 자신이 상처를 입거나 실망하게 된다. 쉽게 따져도 자기만의 절대적 기준을 제멋대로 세워놓고 그것이 살짝이라도 어긋나면 부정적인 감정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예로 들 수 있겠다. 남들은 안 그런데 자기만 혼자 성질을 낸다거나 슬퍼한다거나 하면 결국 나 스스로가 가해자가 되어버린다.
기대를 하는 것은 좋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여야지. 때에 따라 하루이틀 안 올 수 있지 그새 못 참고 택배기사가 안 온다고 소리치고 민원 넣고 심지어 욕하는 막장 주문자의 태도가 떠오른다. 우리 일상도 마찬가지다. 자기 자신에 대한 기대나 당위적인 기준에 너무 몰입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민원과 욕을 나에게 퍼붓는 꼴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내가 생각했던 친했던 사람의 선물이나 표시가 오지 않는다면 굉장히 실망하게된다. 그러나 그것은 온전히 "내가 생각했던"에 불과하다.
물론 상식적으로나 어느 정도 뉘앙스에 따라 다를 수 있겠으나 결국엔 상대방이 보내거나 말거나는 그 사람 자유다. 그런데 그 사람 선물이 안 왔다고 난리부르스 치는 것은 그 사람에게 자신의 감정 통제권을 넘겨준 것이나 다름없다. 실망하고 화가 날 수 있다. 하지만 사랑이 식어버린 폰을 던지듯 반대의 경우도 기대했던 결과가 오지 않더라도 가끔은 이내 극복하고 넘기는 연습이 필요하다.
추석이라 그런지 선물을 주고받는 행위가 떠오르고, 그리고 선물에 따른 기대, 택배가 복합적으로 떠올라 이를 비유로 글을 써본다. 첨언하자면 나는 예전에 내 생각이 나 스스로 컨트롤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했던 적이 있다. 즉 이미 굳혀버린 나만의 생각은 바꿀 수는 없고 표면적으로 보이는 행동이나 조절할 수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데 지금은 달라져 불완전 할 순 있으나 그래도 나 스스로 나의 태도와 생각을 바꿔 나갈 수 있다 굳게 믿는다.
이것도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익숙하다고, 또 그래왔다고 바뀌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내가 그동안 인식하지 못한 채로 지금의 생각이 굳혀져 왔다면 이젠 내가 스스로 인식한 채로 바꿔나가는 연습을 꾸준히 한다면 인식하지 못했을 때보다 더 빠른 속도로 바꿔 나갈 수 있다고 본다. 심리치료를 공부하면서 알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