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예전에는 마을 곳곳에 우물이 있었다. 그래도 시골에 가면 여전히 지하수가 있는 우물이 있거나 폐우물이지만 형태는 여전히 보존하고 있다. 우물을 한번 만들어 놓으면 주구장창 계속 사용할 수 있는 마을의 중요한 공공재가 되며 가끔은 동네 모임의 장소가 되기도 한다. 옛날만 해도 물을 길어 오거나 할 때 차례를 기다린다거나 물을 퍼기까지 시간이 은근 소요되므로 사람들끼리 대화도 나누는 장소였는데 오늘날 약수터를 생각하면 딱 그런 이미지다.
모임 내에서 가끔 사람들이 삶의 고민이나 궁금점을 말할 때 흔히 어떤 것에 집중하고 선택해야 할지를 각자에게 물어보기도 한다." 한 우물만 파라"라는 말이 있다. 한 가지에만 집중해서 성과를 거두라는 뜻인데 내가 의견을 줄 때는 주로 나는 이 말을 좋아해서 비유를 들어 설명한다. 다만 여기에는 전제가 하나 붙어 있어야 한다. 한 우물을 집중적으로 파기보다는 일단 물이 나올 장소를 여러 곳을 건드려 보는 것이 낫지 않냐는 것이다.
흔히들 선택과 집중을 해서 빠른 시간 안에 성과를 거두고 싶어 하지만 타이밍도 그렇고 어떠한 것을 노렸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우물을 판다면서 정작 우물 안 개구리처럼 경험의 폭이나 관점이 좁아진 채로 이내 파고 나서 허리를 한번 폈더니 이미 근처에 더 큰 우물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후회할지도 모른다. 뭔가 좋아 보이고 끌린다고 해서 피상적으로 접근하게 되면 안 하느니 못한 결과도 초래하지 않나라는 생각도 해본다.
앞뒤 안 보고 맥락도 안 따진 채로 책의 한 문장을 읽게 되면 책이 결국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지 못한 채 문장 하나만 가지고 평가를 하는 것과 다르지 않는다. 진득하게 뭔가 하라라고 조언 내지 잔소리를 하는 경우도 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경험해보지 못한 무수한 것 중에 단 하나만 보고 달려가기엔 위험요소도 클뿐더러 되돌아보면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경우도 있다.
자영업이 생각이 난다. 카페 열풍이나 특정 음식이 선풍적인 인기를 끈다는 이유로 시장을 조사 안 하고 영업하는 데 있어 인프라 구축과 자원들을 정비하지 않은 채로 불나방처럼 뛰어들게 된다면 결국 돈만 들이부은 꼴이 된다. 하지만 이에 대해선 이 또한 하나의 경험이므로 뭐라고 할 순 없다. 이렇게 하나씩 경험해 보는 것도 결국 한 우물을 파기 위한 과정이라면 수긍이 가겠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러기엔 리스크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과 체력은 한정되어 있다. 그리고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제적인 부분도 한정되어 있다. 비단 사업의 문제가 아니라 삶 전반에 관한 이야기다. 내가 갑자기 끌린다고 고3 때 연극영화과 학원에 가서 이도저도 아닌 경우가 되어버린 것처럼 말이다. 이 또한 경험으로 말한다면 물론 그것도 맞지만 결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도서관에서 여러 책을 읽으면서 직업조사를 하고 내가 어떠한 길을 걸을지 면밀히 살펴봤던 그 경험이 진짜 경험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엔 큰 그림 안에서 특정 경험이 의미를 부여받는 것이다. 연극영화과는 한낮 배우들이 멋지고 부러워서 나도 될 것처럼 생각해서 했던 것이고 독서는 내가 어떻게 살아갈지를 정하기 위한 작업이므로 둘은 다른 문제다. 그래서 이런 경험과 그동안의 생각들의 집합을 비추어 보건대 하나의 목적 또는 가치관을 토대로 넓고 얕게 사는 것도 중요해 보인다.
어떤 사람들은 가끔은 본인 소유보다 더 큰 것을 구입하거나, 때가 아닌데 어떤 시도를 하는 사람들에게 욕심이고 쓸데없고 사치라고 비판한다거나 손가락질을 하기도 한다. 한때 나도 그런 사람들을 보면 철없는 인간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그 사람의 내면은 알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자기 자신의 큰 그림을 그린채 그 속에서 찾아내기 위한 작업이라면 오히려 우리가 식견이 좁은 채로 그들을 판단한 것일지도 모른다.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것은 정말 중요한 것 같다. 다양한 경험이란 것이 갑자기 유학을 간다거나 뭔가 창업을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굳이 갈 필요도 없다.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거나 글을 읽는다거나 정보를 접하는 등 각자만의 인생 스토리와 현장분위기를 접하는 것이 다양한 경험을 직간접적으로 접하는 것이다. 가끔은 큰 꿈을 가지는 사람에게 망상이라 생각할 순 있겠으나 이미 경험을 해보고 그런 선언을 한 사람이라면 오히려 지극히 현실적인 사람일 수 있단 생각도 해본다.
우물은 깊게 파야 지하수가 나온다. 하지만 지하수가 나오는 곳이 한 둘이 아니고 극적이게 표현하자면 다른 곳을 파다가 금맥을 발견할 수도 있는 놀라운 경험도 할 수 있기에 처음에는 자기가 할 수 있는 한 넓고 얕게 파보고 나서 그 후에 한 곳을 골라 집중적으로 파기 시작하면 좀 더 튼튼하고 깊은 우물을 팔 수 있으리란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