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렸을 때부터 역사를 좋아했다. 아버지가 역사를 좋아하셔서 그런지 나도 같이 사극이나 다큐멘터리를 보고 역사 만화책을 즐겨 읽었다. 덕분에 국사가 선택과목이던 시절 나는 수능도 한국사, 세계사로 시험 보는 역사 덕후이기도 했다.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사건들이나 인물, 나라들 이외에도 힙스터기질이 있었는지 독특한, 숨겨진 진주를 찾는 듯 사극에선 주인공을 안 좋아하고 궁예나 악역으로 나오는 인물들이 강렬해서 더 좋아했다.
최근에 알게 된 인물이 하나 있는데, 알바니아 수도 티라나에는 광화문의 이순신장군처럼 위풍당당한 기마상이 광장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다. 바로 알바니아의 스칸데르베그라는 이명을 가진 "제르지 카스트리오티"다.
나는 전쟁위인 한정으로동양에선 이순신장군이라면 서양에선 쟁쟁한 인물이 워낙 많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론 스칸데르베그가 가장 뛰어난 인물이지 않나 싶다. 알바니아 독립세력의 지도자로서 거대한 오스만 제국이 동유럽 쪽과 발칸반도를 집어삼킬 때쯤 무려 25년간 작디작은 알바니아를 지켜낸 방어전과 게릴라의 전설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스칸데르베그란 이명도 적국 오스만 제국 쪽에서 알렉산더대왕+태수(영주)가 합쳐서 부른 별명으로 그만큼 용맹했다는 것이다. 그의 전적은 21번의 전투 중 19번을 이겨내고 나머지 2패는 자기가 직접 진두지휘하지 않았을 때의 패배이니 말 다했다. 불패의 승리 그리고 오늘날 단결이 안되어있던 산간지방 각자도생하던 알바니아 인들의 민족의 정체성으로 알려진 카스트리오티가 나는 가장 대단하다 생각했던 점은 그 거대한 오스만 제국의 침공을 25년이나 버텨왔다는 것이다. 여타 다른 전설적인 장군들이나 지도자들도 대단하긴 하지만 그들의 전공은 특정 전투나 상황이 그들을 돋보이게 했다는 점에 비추어볼 때 이 기나긴 25년의 방어전은 놀랍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정도 역사를 아시는 분들은 알겠지만 대국의 침공에 이 정도까지 버티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다. 우리 역사만 보더라도 국토가 초토화 된 임진왜란은 7년인데 병자호란은 단 2달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즉 공격 측이나 방어 측 모두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때 당시의 보급은 지금과는 천양지차이기에 결국 외부로부터 보급이 끊긴 방어 측이 백기를 들 수밖에 없다. 이런 끈질김과 인내심이 제르지 카스트리오티가 알렉산더 영주라고 불릴만한 이유이기도 한 셈이다.
인물을 비추어 보건대, 우리의 일상과 삶도 끈질김과 인내로 대표되는 지속성이 가장 필요한 게 아닌가 싶다.
또 이런 생각도 해본다. 마치 우리 운명이 정해지고 죽음도 언제 죽을지 알게 된다면. 사람들은 짧고 굵게 살기 위해 온갖 리스크를 감수하고 별의별 짓을 다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미래를 알 수 없고 우리 삶은 더더욱 모르기에 안정성을 추구하고 신중한면이 있다. 누군가는 이런 신중함을 이도저도 아닌 답답한 태도라고 욕할진 모르겠다.
짧고 굵게 가는 삶은 임팩트 있고 내가 원하던 것을 이루고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큰 성과를 보인다. 그것이 굵게가는 것이다. 하지만 짧은 것은 결국 모든 것이 흥망성쇠이니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가늘고 길게는 성과가 작고 남들이 거들떠도 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작디작은 성과들이 평생을 함께 갈 수도 있다.
자기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가늘고 길게가기를 삶의 노선으로 정했다.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바싹 돈 벌고 나머지 중년 혹은 노후를 편하게 보내고 싶다는 이야길 하는데 별로 와닿지가 않는다. 일단 우리 부모님부터 70이 다 되어 가시는데 왕성히 사업을 하고 계시며 부모님의 주변 친구들을 보면 오히려 우리 가족을 부러워한다. 어떻게 보면 대기만성이었을지 모르지만 나는 이런 가정에서 자라면서 가늘고 길게의 중요성을 체득하게 된 것 같다.
그리고 언뜻 들려오는 중년 혹은 노년세대가 노후에 확보된 자금으로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그들이 바라는 건 자기 존재가 발현되는 활동을 통해 건강하게 살기를 원하는 것이다. 돈은 그때 진짜 수단으로써 활용된다.
흔히 우스갯소리로 노상에서 포장마차에서 떡볶이집을 하시는 할머니가 장사 마치고 벤츠 타고 귀가하신다는 말처럼 경제적이든 무엇이든 아무런 활동을 안 한다는 것은 노년의 정신건강에 적지 않은 피해를 가져다주는 것은 분명하다.
쉽게 이야기해서 은퇴하면 대략 길게 쳐도 60이라치면 수명이 길어진 지금의 경우 나머지 20-30년을 아무런 활동 없이 집에만 있거나 동네만 거닌다고 생각해 보자. 그 시간이면 지금 내가 응애응애할 때부터 지금까지다. 인생의 거의 3분의 1이 아무런 활동 없이 가만히 있는다고 해보자. 아찔하다. 그래서 나는 가늘고 길게 가고 싶다는 말은 노후가 되어서도 계속 소소하더라도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거나 관련된 활동이나 일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저번 글인 시간의 그물에서도 말했듯이 운이라는 요소도 결국 타이밍이라 본다면 길게 가다가 여러 번 찾아오는 기회중 우연히 하나가 대박을 터지는 것으로 본다면 가늘고 길 게의 이점이 상당하다. 물론 짧고 굵게냐 가늘고 길 게냐로 인생을 단순히 양분할순 없겠지만 재미 삼아 생각해 보면 그렇고 또 진지하더라도 성공이나 뭔가 원하는 바를 본인 삶에서 달성하고자 한다면 핵심은 지속성임을 이제야 알 것 같다.
내가 갑자기 삘받아 열몇 시간 그날 공부한다 해도 점수를 높게 받거나 명문대를 가지는 못한다. 그것을 꾸준히 해야 성과가 나오는 것이기에 어떤 것을 한다 하면 길게 가는 것은 기본이다. 다만 내가 그 정도의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이제야 걷는 수준이라면 가늘게 가자는 것이다. 못하면 그보다 낮춰서 할 만큼 하면서 계속해나가는 것이 가장 가장 중요한 방법이지 않나 싶다. 흔히 끈기, 노력, 인내라고 하는데 이런 단어를 가끔 보게 되면 숨이 막히거나 답답하다. 왜냐면 그런 단어를 쓰는 글이나 매체들을 보면 그 주인공들은 어마어마한 것을 달성하거나 하고 있기에 도저히 내가 따라잡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냥 나는 내게 맞는 단어를 골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