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일기 벽돌시리즈 422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사백 이십 이번째
한강 작가가 노벨상을 받는 것을 보면서, 타이밍의 힘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이미 뉴스에 마르고 닳도록 쏟아내고 있어 노벨 문학상, 아시아 여성 최초의 수상자로써 엄청난 영광을 안게 되기까지 한 사람의 스토리에서 정말 많은 것들을 이뤄나갈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작품을 다루기에 다소 민감할 소재들이 있어 정치적으로 사상검증을 요구하는 사람들도 많다.
한 가지 짚어보자면 모든 소설가와 작가는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을 작품이라는 유무형의 표현으로 담아 구체화 시킨다. 그런데 정치적인 논리로(질투어린 시선이 깊게 박혀있는) 그것을 깎아내리려 한다는 것 자체가 표현과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고 획일화에 기여하면서 우리나라가 인문학이나 예술성 어쩌고 저쩌고 왜 세계보다 뒤떨어지느냐 자조섞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의 모순에 미간을 찌뿌리지 않을 수 없었다.
노벨상을 탔던 것도 지금의 서사가 있기까지 한강이라는 작가의 작품성과 개인의 생각, 표현에 대한 의의로써 나타난 커다란 이벤트처럼 어떤 유의미한 결과가 있기까지 타이밍은 필요하다. 즉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때란 아무도 모른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풀리는 때가 있는 가 하면 아무리 게을러도 술술 풀리는 때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참 답답하기도 하다.
다만 오해를 살 부분이 타이밍에 대한 정의가 "시간의 우연성"에 기초한다는 것에 방점을 둬서인지는 모르나 무작정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긴다는 것은 정말로 터무니없는 생각임은 틀림없다. 타이밍 그리고 때라는 것은 뭐라도 하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것이 당연하다. 하다못해 로또에 당첨되려면 로또를 사러가는 수고를 겪어야 하며 운명의 짝을 만나는 건 자기가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깊게 갈망하는 성공도 똑같은 것 같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케케묵은 노력과 운명의 대결이겠으나 어느 한쪽이 불안하면 다른 한쪽도 기울어지게 되어있다. 노력을 하더라도 때를 만나지 못하면 마치 눈치 없는 사람의 행동처럼 분위기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람의 확대버전을 보는 듯하고, 때를 만나더라도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이제 그것을 붙잡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내려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을 다 하고 하늘에 맡긴다는 진인사대천명처럼 내가 할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내가 하지 못하는 부분도 엄연히 존재하고 그 중 하나가 시간이라는 점에서 노력을 계속 해야만 때를 만나더라도 위태롭지 않다. 반짝 떠오른 것이 공항의 수하물 컨베이어 벨트다. 승객이 내리고 자신의 짐을 찾으려 할때 비행기에 실었던 짐이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나오게 된다. 그러면 자기의 짐이 뭔지 알아야하는 것과 잡기 쉬운 위치에 있어야 하지만 그러지 못한 경우 이내 놓치고 또 다시 한바퀴를 돌아야 만날 수가 있다.
단기적인 관점에서 이 "때"라는 것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 인내하기가 굉장히 힘들다. 알지도 못하는 그 시간을 내가 어떻게 캐치할 수 있겠는가? 다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시간의 우연성을 바라보노라면 그 "때"란 사람 스스로가 익기까지 그리고 익음으로써 세상의 수요가 만나는 그 교차지점에서 타이밍은 빛을 발하리라 생각한다. 방금 담은 배추김치에 아무리 젓갈을 넣어도 묵은지가 될 순 없다.
[매일마다 짧은 글에서 우리 모두를 위한 가능성, 벽돌시리즈는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