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의 성장일기 48
벽돌시리즈 사십 팔 번째
나는 액션영화를 좋아한다. 치고 부수고 터지는(?) 영화로 카타르시스를 느끼거나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직관적인 권선징악으로 굳이 영화 보는데 까지 머리 싸매고 고민할 필요가 없어서 좋아하는지, 부모님이 워낙 좋아해서 어릴 때부터 같이 봐와서인지 모르겠으나 그냥 단순하고 멋있어서 좋아하는 것 같다.
다만 오늘은 영화이야기가 아닌 능력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마블이나 혹은 초능력을 쓰는 슈퍼히어로물도 액션영화 범주에 포함되지만 너무 허황돼서 좋아하지는 않는다. 다만 우리가 흔히 아는 영웅인 슈퍼맨이나 배트맨을 보노라면 일반인이 가지지 못한 능력을 발휘하여 문제를 해결하고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한다.
어릴 때는 동경의 대상이자 빨간 식탁보를 뒤로 매고 날아다니는 흉내를 내기도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이제는 통장만 바라보며 이번달은 돈이 얼마나 나갔는지 한숨 쉬기도 바쁘다. 한 가지 생각해 볼 점은 슈퍼맨이나 배트맨은 영화이고 그들의 능력은 전혀 일반적이지 않다. 그리고 영화이기에 그러한 능력들은 굉장히 직관적이고 상상으로만 이뤄질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제 영화를 마치고 스크린에 제작진과 협찬사 이름이 줄줄이 올라가고 다시 현실로 돌아올 때쯤이면 나는 이런 고취된 감정을 계속 유지하고 싶거나 혹은 저러한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상상의 나래를 빠져보기도 한다. 하지만 이내 잠을 자고 다음날을 맞이하면 이내 내 맘속 고취된 감정은 흩어져 버린다. 문득 그들의 능력을 부러워하는데, 우리들 스스로 각자 가지고 있는 능력들이 무엇이 있으며 다들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내가 사람들이 보는 공개일기를 쓰면서 계속 일관된 생각을 펼쳐왔던 것 중 하나는 나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누군가에게는 되게 부러워할만하다거나 존경받을 정도의 개인이 갖추고 있는 능력 또는 상태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극장에서 영화 속 주인공을 부러워한다. 그리고 현실에서 내가 원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 상대를 부러워하거나 질투심을 가진다. 그리고 열등감을 가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영화 속 주인공들에게는 열등감을 안 가지면서 왜 우리 삶에선 누군가에게 열등감을 가지느냐는 개인적인 추측으로는 그러한 능력이 잡힐 듯 안 잡힐 듯 현실적으로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 전제해 있다. 그러기에 나도 저러고 싶지만 붙잡을 수없는 그것에 힘들어하기도 한다. 그러한 감정들을 겪는 것은 당연하지만 나에게도 어떤 상태와 능력이 있는지는 되돌아볼 필요가 분명히 있다.
나의 장점이자 능력은 창의력이다.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거나 상상하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칭찬을 듣거나 검사를 해보면 창의력이 높다는 것이 많이 나오는 좋게 포장하자면 지극히 예술적인 사람이다.
내가 스스로 창의력이 높다고 각인된 이야기가 있는데, 초등학교 미술시간 때 각자 준비한 A4사이즈 나무판으로 거기에 코르크보드를 덧대어 게시판을 만들어보는 시간이었다.
야외에서 코르크보드를 접착제로 붙이는 작업을 하는 도중 어쩌다 나의 나무판이 반으로 갈라져버렸다. 옆에 있던 친구가 "너 망한 거 아냐?"라고 했는데 그때 나는 무슨 자신감인지 괜찮다고 하며 집에 가져가서 다음날 갈라진 두 판을 두꺼운 실로 붙여 두 개의 판자로 나뉜 게시판을 제출해서 어려움을 기회로 해결했다는 선생님의 칭찬과 반 아이들에게 박수를 받았던 기억이 난다.
돌이켜보면 지금도 가끔 기분이 좋기도 하는데, 일상에서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외부 환경으로부터 쏟아져 오는 자극들을 처리하느라 그만 자신의 상태를 잊어버리고는 한다. 그러한 자극을 잠시 뒤로한 채 나를 본다 하면 어떠한가? 내게는 어떤 능력이 있었던가? 자조서에서 나오는 억지 같은 자기 칭찬시간이 아니다.
그리고 영화 속 뜬구름 잡는 이야기도 아니다. 각자 본인이 살아오면서 자의든 타의든 길러낸 능력들이 분명히 있다. 나의 장점 내지는 능력을 상기시키는 것은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되는 환경 속에서 지극히 현실적인 관점이다.
남의 티끌은 잘 보지만 나의 대들보는 안 본다는 말이 있다. 남의 사소한 잘못을 잘 알면서 나의 큰 잘못은 모르거나 인정 안 하려는 경우를 말하는데 이를 반대로 똑같이 적용하면 잘한 것과 능력도 마찬가지다. 남이 가진 것에 대해 굉장히 부러워하지만 내가 가진 것은 오히려 티끌이라 생각하기에 더더욱 안 본다. 어쩌면 사회가 정한 일관된 기준이 개개인의 개성을 억압하고 있다는 요망한(?) 생각도 해본다.
대나무숲인지 블라인드 직장인 익명커뮤니티에 글을 쓰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이 대기업 다니고 집과 차를 가지고 있는 결혼한 남녀라고 하는데 당연히 말도 안 되는 뻥(?)임을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4년제 서울에서 아니면 지방 국립대는 나와줘야 하고 들어본 듯한 기업을 다니며 집과 차가 있는 사람이 우리나라 일반인의 기준이라면 당연히 나부터 피라미드 속 하층민에 불과하다.
이런 일관성을 추구하는 사회에서 자기만의 기준을 갖추어야 바위처럼 튼튼할 수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하나의 기준에 휩쓸리다 보니 기준미달자로 힘들어한다. 외부로부터 온 성공 기준을 기꺼이 거부하거나 일부만 수용하는 용기를 보여주고 나의 진짜 인생을 돌아보는 것은 만족스러운 삶의 기준이 될 것이라고 본다.
무엇보다 외부의 삶이 아닌 자기의 삶이고 나의 삶이다. 내가 살아가는 것이기에 내가 삶의 창조자로서 기꺼이 서나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