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입력하세요

대학원생의 성장일기 52

by 포텐조

벽돌시리즈 오십 이 번째

글의 제목을 적는 란에 희미하게 "제목을 입력하세요"라는 안내문구에 나도 모르게 홀려 그대로 적어버렸다.

살아가면서 사람들은 자신과 타인 그리고 세상에 이름을 부여한다. 어떤 사물에 대해서 인간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그 이름과 의미를 점차 구체화시키고 이제는 당연하다는 듯이 이어지고 받아들인다. 사과라는 이름도 우리가 언어로 규정하기 전까지는 빨갛고 둥근 먹는 거, 과일 중의 빨간 거 등 하나의 사물에 대해 여러 뜻이 내포되어 있지만 그것을 하나로 묶는 것은 이름이고 언어는 그것이 수단이 되어 작용한다.


언어를 주제로 한 책을 최근에 읽었다. 언어에 대해 더 나아가 언어가 규정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언어는 인간의 추상적인 개념을 하나로 묶어 그것을 직관적으로 바로 떠오르게 만든다. 그 후에 언어가 묶어준 단일적 의미에 대해 인간은 암묵적으로 합의된 개념을 그대로 대대손손 받아들인다.

언어가 우리에게 주는 이점은 우리가 지구상에서 만물의 영장이자 야생을 지배하는 동물로써 자리매김하는데 큰 역할을 해준 것은 맞다. 그리고 고차원적으로 진입하여 생각하는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필수불가결한 수단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수단이 그러하듯 동전의 양면 그리고 양날의 검처럼 언어 또한 어두운 점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이른바 사회시간에 한번 들어본 듯한 "낙인이론". 단순히 사물과 무생물에 규정하는 작업은 굉장히 편하지만 사물이 아닌 살아있는 존재에 대해 규정을 하다 보면 특히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누군가에게 의미를 부여를 하게 되면 어떤 이는 굉장히 부정적인 사람으로 어떤 이는 굉장히 위대한 사람으로, 타이틀 즉 "낙인"이 찍히게 된다.


사회의 하류층은 말썽쟁이이며 가난에 찌들어 살며 도벽과 가정환경이 불우하기에 계도의 대상이자 나라의 곳간을 파먹는 쥐와 같다는 예전의 천박한 자본주의적 관념을 예로 들듯 어떤 집단, 어떤 사람을 규정짓는 작업은 상당히 조심스러운 부분이며 다시 생각해봐야 할 주제라고 요 근래 생각해 본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가끔 인터넷에서 정치적 중립성이니 프로불편러니 하면서 이들이 떠드는 언어에 대해 다시 규정짓는 작업도 쓸데없고 반동적이며 본질을 흐리는 듯한 행위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물론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왜냐하면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의 태도와 언행을 보노라면 누가 누구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논쟁을 위한 논쟁을 하는, 진보적인 스탠스를 취하면서 자기는 마치 도덕적 우월감에 빠진 위선자로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의 주장은 노파심에 말씀드리면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다만 규정짓는 언어의 역할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문제인 것은 분명하다.


예전에 프레임이라는 책이 나와 한때 열풍이 불고 프레임이 유행어가 되다시피 했다. 지금도 신념, 그리고 일반화된 생각에 대해 프레임이라는 단어를 즐겨 쓴다. 프레임도 한마디로 프레임 되어버린 것이다. 사실 나는 프레임의 중요성과 프레임에 대해 굉장히 관심 있어 하는 한 명의 학생으로서 타이틀 내지는 프레임은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와 핵심을 다루는 요소 중 하나라고 본다. 인간은 언어를 쓰기에 생각하고 생각하기에 다시 언어를 쓰는 존재로써 이데올로기나 종교등과 같이 이 또한 각자만의 프레임을 형성했기에 프레임은 인류사 그 자체이기도 하다.


여기까지 보면 괜히 지식자랑, 고차원적인 있어 보이는듯한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나 굉장히 일상적인 이야기임을 강조하고 싶다. 하루를 살다 보면 우리는 감정이나 타인 그리고 집에 돌아온 나 자신을 돌아보며 액자를 하나하나 만들어 나간다. 처음에는 액자의 재료를 구하며 간을 보며, 네모로 할지 원 모양으로 할지 요리조리 살펴보다가 어느 순간 의미를 액자 속에 담아 마음속에 반영구적으로 저장해 버린다.


"나는 실패자다"," 나는 우울한 사람이다"라고 스스로를 규정짓는 액자작업을 해버리면 다시 살펴보지도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고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타인에 대해서도 "저 인간은 문제가 많은 사람", "저 인간은 가까이 두기에는 위험한 사람"등과 같은 내적으로 규정하게 되면 더 이상 그 사람을 다양한 관점에서 보기도 힘들고 인간관계가 진전이 안될 수도 있다.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누군가를 cctv처럼 계속 쫓아다니며 마음까지 살펴볼 수는 없다. 나에게는 친절할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4가지 없는 사람으로 비칠 수도 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규정짓는 것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작업이기에 타인과 세상을 컨트롤할 수는 없다고 해도, 적어도 자기 자신의 액자는 다시 건드려 볼 필요가 있고 또 바꿀 수 있다. 지금 내 액자가 맘에 안 들면 바꿔 낄 수가 있는데 사람들은 그것이 절대적인 진리인양 받아들인다. 그리고 바꿀 생각을 안 하기도 한다. 그게 편하니까. 바꾸는데 시간도 많이 들고 어렵기도 하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 액자가 계속 내게 상처를 주고 더 이상 이롭지 않다면 다시 수정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프레임. 액자 속 나는 어떤 모습이고 어떤 의미를 부여받았을까? 사람은 양면적이고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간다. 저번 글에서도 언급했든 단일적인 정체성, 이미지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경직적인 모습에서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 과거는 지나갔고 오늘은 지금이다. 그리고 미래는 올 것인데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나는 스스로를 무엇으로 규정하고 있는지, 어떻게 규정하고 싶은지 살펴보자.


나에 대한 제목을 입력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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