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의 성장일기 51
벽돌시리즈 오십일 번째
엄격 근엄 진지. 오늘 주제에 대해 생각하면서 일반화할 수 있는 위험성이 내포되어 있으나 그래도 한번 이야기해 보면 좋을 거 같아 생각해 봤다. 위의 석상처럼 가끔 주변사람들이나 혹은 타인에게서 유연함과 나긋나긋함을 찾아보기가 힘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일에 치여 피곤함에 찌들거나 사람에 치여 사람에 대한 피로감까지 생겨서인지 그들에게서는 웃음을 찾을 수 없는 것 같다.
자주 웃거나 웃는 상의 사람들. 보기만 해도 활력이 샘솟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자기도 웃고 타인도 웃게 만드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리고 외모까지 뛰어나면 이미 결혼은 따놓은 당상이다(?). 침울한 인상과 이미지는 상대방도 괜히 침울해지고 상처 줄까 바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일 수도 있어서 어떻게 보면 잘생기고 못 생기고를 떠나서 얼굴의 표정에서 나오는 이미지는 결코 무시 못할 요소이기도 하다.
표정을 떠나서 웃음, 그리고 유머, 유쾌함은 사람에게 일상의 윤활유 역할을 해준다. 사람을 기분 좋게 한다거나 굉장히 어려운 문제도 마법처럼 유연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유머다. 유머라고 하면 괜히 아재개그, 재미없는 말장난을 떠오르곤 하는데 그것보다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혹은 지향하는 태도로 본다면 유머만큼 삶을 풍성하게 하는 건 없다.
멤버들이나 아니면 다른 분들이 촐싹거리고 웃기기를 좋아하는 나를 보다가 나의 아픈 과거를 듣는 순간 전혀 그래 보이지 않는다는 말씀들을 하시는데 어쩌면 내가 그 과거를 이겨내는데 유머도 큰 공을 세운 것이 맞다.
학창 시절 학교폭력을 당할 때도 집에 와서 나는 재미난 것을 찾아보거나 개그적인 동영상이나 글을 읽고 했는데 그것 나름대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게 해 주었고 그전에도 초등학교 학예회 때 맨 앞에 나가서 온몸을 투신하며 웃기는 역할로 친구들과 참석하신 학부모들을 위한 쑈를 하기도 했다.
웃는 것으로 또는 따스함이든 나는 그런 관심을 좋아하던 사람이었다. 웃기는 것이 재밌고 웃는 것을 좋아하기에 개그맨도 생각해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기나긴 터널을 통과하니 이미 나의 쾌활함은 외적으로 숨어버렸고 가족들 이외에 나의 촐싹거림을 알아주는 이는 얼마 없었다. 그러나 점차 극복하니 누군가가 초등학교 시절로 예전의 모습을 다시 찾으신 것 같다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그 말이 와닿았다.
유머는 삶의 고난 속에서 황무지에 피어나는 꽃과 같다. 일말의 인간성을 보이는 감정이기도 하며 몇몇 에세이나 수용소 생활을 다룬 이야기에서도 유머는 지옥 같은 현실 속에서 일말의 희망이 우리 가운데 구체화되어 나타난 소중한 것으로 표현한다. 유머가 휴머니즘이란 용어와 비슷한 어감인 것도 결국 인간을 중심으로 한 삶에 필수불가결한 요소이기에 그럴 것이다.
진지함과 엄숙함 그리고 경직된 사회 속에서 유머와 유쾌함은 긴장된 상태를 풀어주고 딱딱함을 정화시키고 영화 속 석상으로 갇힌 인물이 풀려나서 다시 생명을 찾듯이 삶을 풍요롭게 하는 아주 특별한 감정이자 능력이다. 가끔 웃음이 만병통치약이라는 하는 것도 대중적인 인식 이외에도 당연히 정신건강적으로도 굉장히 유익하므로 가끔 칼럼으로 보이는 많이 웃으라는 의사들의 의견도 우리 뇌에 이롭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물론 너무 경박하다거나 알맹이 없는 쓸데없는 소리만 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런 분위기를 마냥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런 삼류 코미디 극장이나 영화가 아닌 일상에서 그런 자리를 기피하는 사람들에게서 본인은 진지하고 경박한 저들과는 다르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본인도 본인 나름의 유머를 좋아하고 웃음을 찾는다. 심지어 비꼬거나 자기들이 생각하는 고급 유머도 하나의 웃음 카테고리에 포함되어 있기에 웃음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심지어 산업혁명기나 현대 상류층들을 풍자하는 글도 마찬가지로 그들 나름대로는 권위적이고 있는 듯한 느낌을 갖추고자 하지만 몇몇 눈썰미 좋은 사람들은 오히려 그들을 풍자대상으로 만들어 뒤집어지고 엎어지기도 하는 모습으로 대중들로 하여금 속 시원하게 표현해주기도 했다. 웃음은 인간의 희로애락 중에 많은 것을 담당한다. 그리고 웃음을 정의하고 이론으로 설명하기에는 정말 애매하고 난해하다. 하지만 그렇게 단일적으로 뭔가를 정의하기 어렵기에 그만큼 유연하고 다채롭고 요리조리 촐싹 맞아 오히려 애매하다는 정의가 더 들어맞을지 모른다.
평범한 일상속에서 유머와 유쾌함이 있는지 생각해 본다. 지금까지 아프면 약을 먹듯이 나에게는 심적으로 아프면 진통제 역할을 해주었던 것이 유머였던 것 같다. 각자만의 유머코드가 다르겠지만 웃으면 복이온다는 옛말처럼 웃는 것은 신이 내려준 축복 중의 하나임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