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일기 벽돌시리즈 525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오백 이십 오번째
인간은 누구나 수치심을 느낀다. 부끄러움은 여러군데에서 찾아온다. 괴리가 있거나, 보이지 말아야 할 것이 보인다거나 혹은 무시당했다 여겨질 때 부끄러움인 수치심을 느낀다. 누구나 느낀다면 누구나 훌훌 털어버려도 되지 않을 까 싶지만, 문제는 수치심이 일어나고나서의 반응이다. 예를들어 인사를 받아주지 않는 누군가 때문에 수치심이 느껴져 그 사람이 나타나는 주변을 가지를 않는다거나 신경쓰게 된다.
반면, 그러거나 말거나 오히려 그 쪽에서 신경쓰게 만들 심산인지 이리저리 보이거나 아니면 대놓고 물어보거나 다른 주제로 말을 거는 경우가 있다. 같은 수치심을 느꼈더라도 이런 대처방식의 차이가 일상의 감정을 크게 바꾸어 놓는다. 그래서 때로는 거부를 당할 줄도 알고, 무시 당할 줄도 알고 심지어 이상한 사람 취급까지 당해봐야 한다는 가르침도 있다.
부끄러움을 느끼고 위축되면 그 나름대로 양심이 있다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어떤 잘못을 저지르고도 오히려 위의 그러거나 말거나의 나쁜 버전으로 가게되면 정말 얼굴 철판 깔았다는 말이 나온다. 또 하나는 수치심을 느낀다는 것은 마음 속 한켠에 위치한 어떤 기준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즉 체면이라는 게 있어 "내가 그래도 무슨무슨 대접이나 응당 사람은 이래야 해" 하는 기준을 가지고 있는 것.
하지만 모두가 당신에게 예스라고 외치지 않는다. 모두가 당신에게 안녕하세요라고 외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런 기준에 때문에 체면에 손상을 입었다고 판단하고 남몰래 끙끙 앓는 사람도 많다. 반면, 과도한 수치심이 몰려와도 벼랑 끝으로 뻔뻔함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도 있다. 혹은 그런 기준이 있더라도 지금 당장 해야할 것들이 더 중요도가 크면 그것을 감수하고서라도 반응하는 사람도 있다.
발표를 한다거나, 길거리에서 판촉을 한다거나, 누군가에게 말을 건다거나, 어디를 방문한다거나 등등 분명 이 과정에서 수치심을 느낀다. 그래도 할 사람은 하게 된다. 어떻게 보면 이또한 연습이고 훈련이니까. 작년 한해 나의 대인관계의 목표는 뻔뻔함이였다. 올해는 조금 업데이트가 되었다. "전투적으로"뻔뻔해지려고 한다. 이는 누군가의 시선 그리고 누군가의 반응에 대해서 민감하지만 그래도 할 건 해야겠다는 인간관계에서의 목표설정이다.
[매일마다 짧은 글에서 우리 모두를 위한 가능성, 벽돌시리즈는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