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일기 벽돌시리즈 567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오백 육십 칠 번째
원인을 환경으로 전부 퉁치거나 손쉽게 거시적인 부분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다. 이 부분은 어떻게 보면 맞는 말이다. 그런데 오늘 독서모임을 진행 하기 직전 커피를 주문하고 앉아서 기다리다 문득 떠오르는 게, 그래서 "어쩔 거냐?"라는 것이다. 즉 "이러이러한 문제가 있는데요 결국 환경과 맥락에서 문제가 생긴 거에요"를 안다면 그 다음엔? 여기까지가 내가 체감한 학문의 영역이다.
거시적인 영역에서 바라보는 자는 숲의 어느 나무가 썩거나 불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환경을 바라볼 때 우리는 전체적인 영역의 공간적 개념뿐만 아니라 시간적 개념으로서 맥락까지 포함해서 분석한다. 어디가 문제인지 알게 되면 고쳐나가면 된다. 그리고 왜 이렇게 되었는지 과정까지 설명하며 인과관계까지 나열되면 학문으로써 역할을 해낸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이젠? 내려와야 한다. 더 이상 미국 산림감시원처럼 하늘높이 솟은 철탑에서 불이 번지는 걸 계속 바라만 볼 수는 없다. 숲으로 들어가야 한다. 나무와 나무사이로 들어가야 한다. 이제 미시의 영역으로 진입한다. 본격적인 해결의 시점은 사실 여기서부터라는 게, 방금 전 철탑 꼭대기에서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현장은 어느새 시시각각 달라진다.
나처럼 그럴듯하게 말하려는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 "케바케"나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라는 말이다. 그건 대부분 어디서나 통하는 말이지만 본질을 회피하기도 한다. 크게 보다가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각자의 관점에 따라 달라지고 나눠지기 때문에 생각에 대한 호불호가 생기며 그것에 대한 반론과 재반론으로 머리 아픈 싸움을 이어나가야 한다. 큰 것에는 일치하지만 작은 것들은 차이가 생긴다.
환경 개선이라는 대의 아래 움직이려는 사람들은 현장에서 그 말대로 어떻게 적용할 지부터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본인이 처한 환경을 바꿔나가려는 사람들은 배운 것을 곧 어떻게 적용할지 그리고 어떤 부분이 문제라면 이것을 어떻게 해결할 지를 행동으로 보여야 함은 너무나도 당연한 말일 것이다. 크고 거창한 것을 이야기하기는 굉장히 쉽지만 작고 사소해 보이는 것을 하는 것조차 쉽지가 않다.
[매일마다 짧은 글에서 우리 모두를 위한 가능성, 벽돌시리즈는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