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빛의 여정 7화

빛의 여정 7화

by 포텐조

[소설]빛의 여정 7화 / 1장 불씨 운반자


달팽이 상단이 팔아치운 "티쿠아린 대륙"의 지도


"늑대 없었어?"

"없었지"

"그럼 핏빛 늑대는?"

살짝 짜증이 올라왔지만 마음을 달랬다.

"있었으면 내가 여기 있겠어?"

장로의 아들은 본인도 얼마 지나지 않아 얄짤없이 밖에 나가 땔깜을 주우러 가야 할 처지였기 때문에 물어보는 것이 많았다. 창대를 두 손으로 잡으며 지지대 삼아 몸을 기댄 아르한은 로이딘 빅혼이 지게를 내려놓고 땔깜을 정리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었다. 켜켜이 쌓인 나무들을 분주히 창고 안에 넣으며 집중하던 로이딘은 문가에서 자신을 지켜보는 아르한과 다시 눈이 마주쳤다. 어이 없어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의 표정이 도살장에 끌려가는 돼지마냥 심각했기 때문이다.


"아니 왜 그러는데"

아르한이 망설이다가 답했다.

"이틀 뒤면... 수여식이잖아"

반면 로이딘은 마음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그네움 배급도 쥐꼬리라서 나무 베러가는 것도 뭐고 그냥 탈주해버릴까하는 서운함과 분노를 장로에게 쏟아내고 싶었지만, 드디어 불을 신나게 붙일 수 있게 되겠구나 싶었다. 반면 아르한의 표정에는 이유가 있었다. 우리 가운데 가장 높으신 분인 장로와 그의 아들께서는 불의 수여식을 도맡아 진행하셔야 하니 어쩐담, 가만히 있어도 잘 굴러가다가 본국에서 오는 분들 앞에서 기를 못피는 건 당연지사일 것이요, 가시방석에 앉아있을테니까. 음.. 무언가 꼬시군 꼬셔


로이딘은 차마 놀릴 수는 없고 생각을 정리하고 말을 건넸다

"아르한, 새삼스럽게? 고생 꽤나 해야겠는걸"

"수여식이고 나발이고 그냥 건네주고 밥만 먹고 꺼지면 안되나?"

장로의 겁쟁이 아들께서 아보의 교단을 향해 수위가 센 진심을 꺼냈다. 새벽에 망루지기 역할을 하면서 들어 줄 사람이 그나마 로이딘이었기 때문에 가열차게 불만을 쏟아내고 있었다. 욕과 욕을 더한 불만을 듣는 둥 마는 둥 귀로 흘려보내며 나무를 차곡차곡 쌓아가던 로이딘에게 아르한의 한 마디들도 차곡차곡 쌓여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완전 신참내기가 온다던데?, 불이나 제대로 붙여줄지 모르겠어"


영원한 추위 앞엔 어느 인간이라도 버틸 수 없다. 온기 없이는 결코. 이그네움이 떨어지는 지역은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 서 있어야 했고, 그대로 얼어죽을 지 누군가를 태워서라도 살아남을 지 하는 극한의 상황에 양자택일을 해야만 했다. 그런 지경까지 가지 않으려면 족장이나 영주, 왕들은 어떻게든 구성원들을 대신하여 이그네움을 확보해야만 했고 확보하지 않으면 자신의 자리와 정치적 입지까지 크게 위태로워 질 수 있었다. 소문에 의하면 어느 왕은 수행원들을 극히 일부만을 데리고 밤을 새 가면서까지 수도 안의 교단에 찾아와 바닥에 거의 눕다시피 엎드리며 이그네움을 요청했다 한다.


불의 수여식이 있는 날이면 마을이든 성이든, 도시든 비상이 걸렸다. 모든 가용인력이 의식을 준비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여야 했고 교단에서 내려오는 불씨 운반자들은 융숭히 대접받아야 했다. 그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것이 우선 순위였다. 사전에 요구한 공물과 함께 이그네움을 교환했다. 처음에는 이렇게 의식화되어 있지 않았는데, 초창기 불씨 운반자들이 이그네움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제대로 관리를 하지 못하는 통에 유출이 되거나, 해당 지역에서 습격을 받는 등 여러 일화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은 정식적인 의례와 교단차원에서 기강을 세우기 위해서 마련한 작업인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런 엄숙한 의식을 갑쪽에서 몸소 사람을 보내시고 준비를 하는 데 어찌 을이 되는 받는 자들이 설렁설렁 받을 수 있으리요?


그래서 불의 수여식은 군신관계가 어떤지,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인지 주기적으로 확인하는 시간이였다. 수여식 참여자 중 불을 받는 역할은 대게 왕이나 족장이 맡으며, 교단이 지정해서 보낸 불씨 운반자에게 직접 공손히 받아야 했다. 다만 보는 눈들도 많은 만큼 주는 자와 받는 자에게 실로 이득이 맞아 떨어지는 행사이기도 했다. 이는 공물이야 직접 자기 곳간을 터는 것이 아닌 백성이나 신민들에게 강요하면 될 사안이라, 불을 받고 나서 모두를 구해낸 책임지는 지도자란 이미지를 심어주고 아무 손해 없이 당분간 편히 지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보테 쪽에서는 불씨 운반자들이 대륙 곳곳에서 뜯어내는 공물들이 상당하여 본국으로 수송할 수록 디고의 시민들은 나날이 배불러져 가고 있었다.


일주일 전에 크리네스 가문에 서신이 도착하고 장로는 노구의 몸인데도 불구하고 맞이할 손님들을 위해 일선에서 직접 일을 거들었다. 몇몇 사람들이 그를 말려도 그는 듣질 않았고 이는 로이딘이 손에 꼽는 장로의 고집이 순기능을 발휘하는 몇 없는 순간 중 하나였다. 태만한 아르한도 거드는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르한과 같이 농땡이나 부리고 싶어하는 몇몇 마을 사람들의 마음도 존재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론 촌장님, 때론 족장님이라 부르는 아보테에서는 실질적으로 왕으로 간주하는 이 노인네가 가만히 앉아있으면 우리가 일하는 데 좀 편할텐데라는 생각들을 많이 하고 있었다.


크리넬의 크리네스 가문, 크리네스 4세라는 이름을 가진 장로는 크리넬이라는 부족 통합을 이끌게 된 가문의 가주이자, 크리넬의 족장이였다. 원래는 크리넬의 땅은 이주민과 순례자들 그리고 바다 건너 어디서 왔는지 모를 사람들과 북쪽 왕국의 피난민까지 다양하게 섞여 있고 그들만의 공동체를 독자적으로 만들어 살아가고 있었다. 초창기 역사는 개척과 서로간의 전쟁의 반복으로 비극과 혼란이 계속되어 왔었으나 거리가 너무나 가깝다보니 애증의 관계가 생긴 모양이었다. 각 족장들과 영주들이 만나는 "통나무 회의"를 개최하면서 남부와 동부 부족 혹은 작은 공동체들이 시간이 지나 합류하여 크리넬이라는 이름으로 통일하게 되었다. 정리하자면 크리넬의 부족 연합의 대표가 바로 크리네스 가문이고, 가문을 이끄는 크리네스 4세가 곧 있을 불의 수여식을 대표해서 진행하게 된다.



불씨 운반자의 도착까지 일주일에서 어느새 2일 밖에 남지 않았다. 크리네스 마을은 분주함과 기대감, 부담감이 혼재되어 하루를 준비하고 있었다.



8화에서 계속...

"때가 차매 그 빛이 다시 솟아나리라"


(매주 화요일,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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