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빛의 여정 6화

빛의 여정 6화

by 포텐조

빛의 여정 6화 / 1장 불씨 운반자


달팽이 상단이 팔아치운 "티쿠아린 대륙"의 지도


과거 크리네스 마을이 듣는 유일한 칭찬은 "언덕 위에 자리잡은 풍경 좋은 곳(방문객들 말로는)"이었다. 목조성벽이 둘러져 있어 그나마 자체 방어가 가능하다 수준의 마을이었지, 결코 웅장한 군사 요충지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명성을 듣고 멀리서 오는 상단이나 방문객 혹은 순례자들 같은 경우 하나같이 똑같은 반응을 보여주었는 데, 바로 "실망"이었다. 장로의 선대가 명성있는 개척자들로 알려져 있어 동쪽 끝의 크리넬의 풍경은 대륙 중부와는 무언가 다른 면모가 있을 것이란 기대가 깔려졌었기 때문이다.


영원한 추위 전 까지 "풍경 좋은 곳"이란 평가는 얼추 맞았다. 넓은 영지에는 참나무 숲이 넓게 펼쳐져 있었고, 크리넬 전역의 목재를 책임졌기 때문이다. 숲에서 사슴과 다람쥐, 새들이 한 데 어울려 있었고 초록 잎이 넓게 펼쳐져 방문자를 쉬게 했다. 장로의 말로는 "크리네스 나무들의 넓은 잎들이 연인들의 사랑을 가려주기에 알맞은 장소였다"는 데 그 말을 하자 옆에 있었던 그의 아내의 눈동자에서 "주책 좀 떨지마"란 잔소리가 쏟아지는 듯 했다. 마을의 남성들이 숲에서 도끼질을 하면 마을의 여성들은 숲을 통과하는 강가에서 빨래를 했었다. 숲 속의 조그만한 버드나무로 둘러진 호숫가는 심신의 평안함까지 주고는 했다.


하지만 이젠 어림도 없지. 더욱이 다 썩어가는 끝이 뾰족한 나무 성벽과 냉해와 강풍에 허름해진 건물들이 가득찬 마을이 멋있으면 얼마나 멋있을 것인가? 차라리 헤르논이나 아나티리캄이 잦은 분쟁으로 돌로 쌓은 튼튼한 요새들이라도 있지만 여기는 순 깡촌이였다. 그렇다고 상업적으로 혹은 종교적인 명소로 유명한 건 더더욱 아니였다. 크리네스 가문의 영지는 바다와 접해져 있지 않다. 서 북쪽으로 올라가야만 성소를 볼 수는 있었으나, 하여간 크리네스 마을은 아니였다. 크리네스 장로는 크리넬에서 가장 넓은 땅을 가지고 있다는 자부심 하나로 일 평생을 살아왔다. 무엇보다 크리넬이라는 국명이 자신의 가문에서 따왔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모든 것이 이젠 지난날의 이야기가 되었다. 지금은 숲이 있던 자리 저 멀리 군데 군데 앙상한 나무 몇 그루만이 서 있고 오로지 황량한 하얀 들판과 얼어버린 강 그리고 진창만이 벽 너머를 장식하고 있었다. 버드나무는 온데간데 없고 호수는 반쯤 진창이 되어 얼어 있었다. 간혹 마을 사람들이 항아리 안에 자른 고기를 보관하려고 얼음을 캐간 흔적외에는 더 이상 사람의 흔적은 물론 동물들의 흔적도 쉽게 찾아볼 수 없었다.


로이딘의 눈 앞에 보이는 마을이 밥을 하는 모양인지 연기가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고, 세찬 바람이 성벽의 망루를 스치고 지나가며 소리를 내고 있었다. 망루 안에 앉아있는 모양새가 딱 봐도 군기 다 빠진 크리네스 장로의 아들인 "아르한"이였다. 지 애비를 빼닯아서 그런 지, 반쯤 연결부위가 터져나가고 집안의 문장이 달린 오래된 가죽갑옷을 입는 것을 고집했다.


로이딘이 한 발 한 발 올라갈 때 마다 공포로부터의 해방감은 덜어져갔지만 긴장이 풀림과 동시에 나무의 무게가 점차 크게 느껴져오기 시작했다. 지게에 나무를 최대한 잘게 쪼개오나 그렇다고 무게가 어디로 도망가는 건 아니였고, 숙련된 나무꾼들만이 그 무게를 끝까지 소화해낼 수 있었다. 한번은 로이딘을 따라 나무를 베러 갔던 시테온은 처음에는 잘 메고 따라오나 싶더니, 강가 근처에서 쉴 때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잠시 맡겨두고" 올 만큼 만만치 않은 무게였다.


길가의 발자국을 보아하니 새벽에 부지런히 또 뗄감을 찾아 나선 동지들이 성문 밖을 나간 모양이다. 최근 지나간 깊게 패인 마차자국은 상단의 흔적일것이고, 이렇다 할 흥밋거리는 없었다. 어디서 굴러왔는 지 모를 까마귀 떼가 로이딘의 반대편인 숲쪽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붉게 올라오는 태양빛은 스산한 추위를 물리치기엔 터무니 없어 보였다. 마음의 추위 또한 그러했다.


핏빛늑대의 소문에 기가 다 빨려 기운을 잃어 그런지 압박감이 심했다. 가까이 다가가는 마을은 변함없이 얼어붙어 성문가와 지붕에는 고드름이 길게 내려 자리하고 있었다. 고드름에서 떨어지는 물이 또 바닥을 적시고 얼게 되면 미끄러지고 넘어지기에 매번 치우는 건 아낙네들의 일상이 되었다. 망루에 서 있던 아르한이 내려오는 게 보였다. 할 말이 있는 건지, 딴지를 걸려는 건지 모르겠지만 로이딘은 피곤함이 몰려와 알고 싶지도 않았다. 기나긴 너스레나 안 떨었으면 좋겠다.




7화에서 계속...

"때가 차매 그 빛이 다시 솟아나리라"


(매주 화요일,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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