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빛의 여정 4화

빛의 여정 4화 / 프롤로그 종료

by 포텐조

빛의 여정 4화 / 프롤로그 종료



(달팽이 상단이 팔아치운 티쿠아린 대륙의 지도)


디고에서의 기이한 밤이 얼마 지나지 않은 후,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또 다른 현상들이 티쿠아린 대륙 전역에 간헐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했다. 본래 북쪽의 동토에서만 볼 수 있었던 폭설이, 열대 정글로 뒤덮여 있는 뜨거운 남쪽에 이르기까지 쏟아져 내렸다. 하늘이 흐려지고 우박과 폭설이 연이어 떨어지니 사람 높이 넘어 눈이 쌓여 일상 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지역들이 속출했다.


대개 소식을 가장 빨리 접하고 전해주는 자들은 주로 멀리 떠나는 무장한 상단들인데 그들이 하나 같이 이러한 기이한 현상을 자기 고향 사람들에게 알리러 올 때 같은 현상이 어딜 가든 일어나고 있음을 목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부분의 사람들이 갑작스런 추위와 두려움을 공유하고 있었다. 하얀 풍경이 익숙해질 무렵에 폭설이 그쳤다. 사람들은 안도했지만 얼어버린 밭을 부여잡고 우는 자들도 있었고 병세가 악화되어 죽은 자들을 묻느라 무덤의 공간이 부족할 지경이었다.


또 다시 얼마 후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영원한 추위가 대륙 전역을 뒤덮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얼어붙는 날씨에 사람들이 땔감을 떼느라 산과 들의 초목이 남아나질 않았고 민둥산이 곳곳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전 보다 맹렬한 추위와 바람 그리고 간간히 내리는 우박과 눈이 내리는 대륙의 모습은 이제는 북쪽의 동토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혹한으로 말미암아 죽어가는 사람들이 나날이 늘어나니 몇몇 상인들은 동물의 가죽과 지방, 심지어 나무 몇 조각으로 폭리를 취했다. 그럼에도 고립된 마을들은 전재산을 털어서라도 살기위해 불을 지피기 위한 재료들을 구입했다.


문제는 날이 갈수록 더욱 심각해졌다. 창고에 태울 것이 없자 이제는 창고를 통째로 뜯어 태웠으며 더 이상의 땔감이 없는 동쪽 지역들은 시체를 태우기 위해 무덤을 다시 파냈다. 도서관을 통째로 비우면서까지 책도 불태우기 시작했다. 그들이 믿는 신의 경전조차 큰 죄책감만을 남긴 채 태우면서 온기를 취해야 했고, 몇몇 사제들과 무당들은 과도한 스트레스와 압박감에 고열로 쓰러졌다. 그들은 경전으로 태워지는 불을 바라보며 회개의 예배를 드렸고 눈물을 훔쳤다. 아나티리캄 지역의 어느 원로 무당은 실신하여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제 이웃끼리 눈 속에 파묻힌 나무 그루터기를 탐내다 다툼 끝에 살해하는 경우가 있었으며, 추위로 인해 동상으로 발이 썩어버리는 자들이 부지기수였다. 남쪽에서 나무를 구해오겠다고 정글로 떠난 상단과 군대들도 있었으나 거대한 빙산과 험로가 그들을 가로막았고 마차가 진창에 빠지고 말들의 다리가 미끄러졌다. 그후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고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그 누구도 맹렬한 추위와 흐린 하늘이 사라지리란 예언을 감히 하지 못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난 후에 아보테에서 어느 순간 만들어진 물건 하나가 대륙 전역에 빠르게 확산하며 유행하기 시작했다. 아보테의 사람들은 물론, 대륙에 두 발로 서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도 왕이 있는 수도인 디고 쪽으로 감사의 머리를 조아리니, 그 물건은 "이그네움"이라는 고체 기름이었다. 이그네움은 횃불 정도에 사용되는 양이라면 기존의 동물지방이나 기름보다 3일은 거뜬 할 정도로 오래타는 물질이었다.


그보다 더욱 사람들을 기쁘게 했던 건 뿜어내는 열기가 엄청났기 때문이다. 혹한으로 갇힌 대륙인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구사했고 이 기름을 가지고 대륙 전역을 다닐 수 있었으며 개인이 하나의 횃불 정도만 소지하면 혹한의 날씨속에서 모닥불을 만들어 아침 저녁 할 거 없이 이겨낼 수 있었다. 본래는 각 나라의 군주들은 상단을 자유롭게 두되 그들에게 세금을 거두는 식으로 특산품에서 광물이나 원자재까지 반출을 허가했으나 이그네움같은 경우는 아보테의 상단이 아닌, 또한 군대도 아닌 아보의 교단에서 이그네움의 불씨를 운반하는 자들을 직접 선별하고 엄격히 통제했다.


불씨 운반자들은 대륙 전역으로 흩어져 해당 지역에 불이 붙은 이그네움을 다시 옮겨주는 식으로 전해주었으나 결코 공짜가 아니었으며 받는 쪽에서 치뤄야 할 댓가는 만만치 않았다. 혹한에 스스로 성문을 열어젖힌 수많은 지역들이 불씨 운반자들을 원했고 아보테의 속령으로 들어가기를 자처하고 있었다. 설령 버티는 군주가 있더라도 남녀노소 할거없이 살아가기 위해 내부에서 압박을 가할 정도였다. 아보테의 영토가 점차 구름처럼 퍼져가고 있을 무렵, 저 멀리 동쪽 소국 크리넬, 그 중 크리네스 가문의 영지에 서신 하나가 날아왔다.


"조만간 본국에서 불씨 운반자가 올 예정이니 불의 수여식을 준비하라 -보호령 동남지부 본부장- "



5화(1장)에서 계속...

(고정된 날짜는 매주 화요일, 토요일 연재, 가끔 진도를 위해 추가 연재 할 수도 있습니다)


"때가 차매 그 빛이 다시 솟아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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