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여정 5화 / 1장 불씨 운반자
소설 빛의 여정 5화
[1장 불씨 운반자]
로이딘 빅혼은 새벽이 지나고 동이 틀 무렵, 언 발을 간신히 풀어가며 나무를 메고 돌아오고 있었다. 한기가 온몸을 감싸 이제는 때깔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그의 얼굴엔 볼거리에 걸린 듯 뺨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추위와 더위가 혼재된 몸에선 열기가 피어 올랐다. 지난 들려온 소식은 참으로 끔찍했다. 네디아 가문 사람 두 명이 산 채로 핏빛 늑대에게 잡아먹혔단 소식은 온 동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아이들은 밤에 문 밖을 나가서 볼일조차 보러 가기를 무서워 해 부모들의 속을 썩였다. 마찬가지로 마을 밖을 나서거나 땔감을 주우러 가는 일이 익숙한 자들에게도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솔직히 무서워서 마음 같아선 달리고 싶었지만, 눈 밭을 스치고 바람을 견디는 다리가 따라 주질 않았다. 늑대무리는 특유의 울음소리라도 있지, 이 괴물들은 어둠 속에서 덮치기 직전의 으르렁거리는 소리밖에 나질 않아 그 공포가 배가 되었다. 그나마 움직이는 소리로 알아챈다지만 로이딘은 귀가 밝은 사냥꾼이 아니었다. 간혹 뒤를 돌아보며 "혹시나", "혹시나"를 연신 몸으로 표현하며 잔뜩 긴장한 채로 마을을 향해 돌아가고 있었다.
"핏빛 늑대"는 일반적인 늑대들과 달리 단독으로 사냥하는 녀석이며, 누구는 저 망할 "영원한 추위"의 저주라고 주장하는 반면 어떤 이는 무리 중 뒤처지는 늑대가 제 발로 독립해서 기어나왔다는 썰등 밤이면 할 거없는 주민들의 모닥불 이야기 소재가 된다. 항상 입 주위가 피로 얼룩져있어 핏빛 늑대라 부르는데, 추위로 죽은 자들이 끊이질 않아 잔치 벌리듯 탐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의 맛을 너무나 많이 알아버린 건지 사냥의 우선순위가 뒤바뀐 듯 했다. 인간의 발자국이 머무는 곳에 핏빛늑대 또한 인근에서 출몰이 잦아지고 있었다.
어제 그리고 오늘, 그런 녀석들 중 일부의 흔적 조차 마주치지 않은 로이딘은 하늘에 감사하며 오늘의 할당량을 채우러 가고 있다. 로이딘이 살고 있는 크리넬의 서쪽은 그나마 나무가 눈꼽만큼이라도 보이지만 상황이 좋지 않은 크리넬 북쪽이나 헤르논 남쪽은 자체적으로 해결이 되지 않는 상황인 것 같았다. 듣자하니 달팽이 상단의 상인이 장로에게 뭐라 하는 지 정확히 듣질 못했으나 대충 상황이 악화되면 악화되었지 좋을리는 없다는 소식인 것 같았다.
나무를 베어 넘긴다는 것은 보통 쉬운 일이 아니다. 도끼 머리에 힘을 집중해 나무 둥치를 쳐 내는데 방향도 생각하며 잘라내야 안전하게 쓰러 뜨릴 수 있다. 로이딘은 청소년 시절부터 계속 나무를 베어왔으나 20대 후반의 그는 현재 얼어버린, 잎사귀 하나 볼 수 없는 앙상한 나무만을 베어넘기고 있었다. 지금쯤 태어나는 아이들은 이 지옥의 광경이 익숙한 것이고 지난 푸르른 봄과 여름은 오히려 낯선 옛날 이야기로 느껴지겠지?
마지막으로 작업한 참나무 하나가 안쪽에서 독하게도 얼었나 해가 질 무렵까지 씨름을 한 후에야 약간의 이그네움을 넣은 횃불과 베어 넘긴 나무의 일부를 태우며 잠을 청했다. 얼어죽기 일보 직전에 둘 중 하나가 로이딘을 살리는 편이었다. 하나는 충분한 이그네움의 불이 가까이에서 화려히 타며 그를 지켜주거나 다른 하나는 동굴이나 사람들이 자재를 다 뜯어가서 앙상하게 변한 폐허를 발견하고 거기서 일반적인 불을 붙이며 새벽을 머무는 경우였다. 대부분은 이그네움의 축복이 가장 컸고 누울 자리 주변에 재료만 갖추어지면 이그네움이 야수들을 근처에도 못 오게 했기 때문에 크게 문제될 건 없었다. 동굴은 좋다고 들어갔다가 자칫 늑대에게 고기를 헌납하는 꼴이 되어 오히려 더 조심해야 할 때가 많았다.
나무를 지평선 너머로 베러 갈때에는 곳곳에 보이는 폐허들은 눈 속에 파묻혀 있었고, 땔감으로 때울만 한 것은 찾기 힘들었다. 폭삭 주저앉은 채 가망없는 젖고 썩은 자재들과 쓰잘데기 없는 깎아만든 바위와 돌 몇개, 녹슬어서 다시 활용도 못하는 똥철만이 전부였다. 한 번은 로이딘이 폐가에 그래도 뭐가 좀 있나 뒤져보려다가 뒤로 넘어져 본전도 못찾은 적이 꽤 있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는 가족으로 추정되는 산 채로 얼어버린 시신 3구가 서로 감싸주며 주저 앉은 채 있어 로이딘의 마음을 착잡하게 했었다. 어머니로 보이는 시신은 가운데에 감싸져있는 아이를 마지막 순간까지 달래려 했던 모양인지 평온한 표정이었다.
분명 장로가 봤다면 잔소리했을 테지만 로이딘은 얼지않은 땅을 조금이나마 파서 시신들을 끌어와 한번에 묻어주었다. 적어도 늑대에게까지 비참함을 당하지 않았으면 하는 심정이었기 때문이다. 묻어주고 나서 허리를 피고 하늘을 보니 흐리멍덩하게 로이딘을 바라보고 있는 듯 했고, 로이딘은 문득 공허한 마음이 스며들어 의욕이 도무지 나질 않았다.
6화에서 계속...
"때가 차매 그 빛이 다시 솟아나리라"
(매주 화요일,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