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빛의 여정 3화

소설 빛의 여정 3화

by 포텐조

검붉은 칠흑의 공기는 신전 안에 있는 군중에게 충격적인 공포를 주기에 충분했다. 몇몇 사람들은 좌석에서 일어나다 천장을 뒤덮으며 빈틈없이 퍼져가는 칠흑의 공기를 바라보며 얼어 붙었다. 앉은 자리에서 두려움에 어쩔줄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왕의 수행원과 귀족들은 왕이 앞에 있음에도 체면이고 뭐고 최대한 몸을 숙이며 의자 밑으로 숨으려 했다. 그간 백성들 앞에서 그리도 콧대 높던 자들이 웅크리면 살 수 있으리란 본능적인 행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미지의 현상에 익숙한, 마법에 능통한 수행원들은 칠흑의 공기가 어디까지 뒤덮는지 그리고 공기의 흐름이 어떤지 순간적으로 간파했다. 지근거리에 있던 왕에게 급히 몸을 숙여 귀띔을 해주고 있었고 듣고 있던 왕의 표정은 굳은 표정에서 점차 충격을 먹은 듯 얼빠진 표정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대주교를 보좌하는 사제들은 급히 그들의 기도문을 읆조리며 그 어느때보다 간절한 기도를 하고 있었다.


검붉은 칠흑의 사내를 바라보던 대주교는 혼란스러웠다. 그럼에도 최대한 위엄을 내보이려 했다. 그의 손은 미세하게 떨렸지만 지팡이를 꽉 붙잡고 있었다.

"당장 요술 광대짓을 멈춰라! 어설프게 따라하면서 신의 행세를 하려 하는 가? 여기가 어디라고 폐하 앞에 예를 다하지 않고 들이닥치느냐? 무엄하도다! 경비병, 무얼 하느냐!"


말이 끝나자 천장을 뒤덮은 검붉은 칠흑의 공기 어딘가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어리석은 것, 죽어야만 쓰임 받겠구나"

동물적인 감각에 익숙한 친위대장이 그 소릴 듣고 급히 병사들에게 명령하며 검은 무리에게 달려갔다.

"저들이 공격하려 한다! 모조리 죽여라!"


신전의 정문 바로 안쪽에서 중앙부에 이르기까지 에워싸던 친위대와 경비병들이 일제히 명령에 따라 검은 무리에 달려들었다. 군중들은 비명을 지르며 대주교가 있는 연단으로 몰려가며 반대편 병사들로부터 멀어지려 했다. 노쇠한 왕은 왕비와 수행원의 부축임을 받으며 이동하려 했다. 병사들이 검은 무리 쪽으로 점차 좁혀나가 무기의 사정거리에 도달할 무렵, 칠흑의 사내와 검은 무리 사이사이로 불길이 튀어나왔다. 불길이 크기가 커지더니 파도처럼 변하면서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친위대장은 물론이요, 무기를 든 모든 병사들이 화마에 싸여 타오르니 살이 타 들어가는 고통에 못이겨 비명과 함께 신전 전체를 뛰어다니면서 난장판으로 만들며 죽어가고 있었다. 몇몇 병사들은 신전 밖으로 뛰쳐 나가 높은 언덕에서 떨어지며 도시의 어둠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불은 순식간에 육신에서 가구와 의자 그리고 커튼과 예식 물건 등에 할거 없이 옮겨붙었다. 연기와 열기로 눈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기운이 없던 왕은 뜨거운 열기에 정신이 똑바로 차려졌는지 자신의 검을 빼들었고 얼마 없는 무기를 든 수행원들과 살려고 의자 밑에 기어들어간 귀족들 그리고 몇몇 사제와 대주교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칠흑의 사내는 말했다.

"대주교라는 놈이 그 주인도 못 알아본다더냐?"

천장에서 흐르는 칠흑의 공기 중 일부가 날카로운 바람처럼 변하며 대주교를 강타했다. 너무 순식간인지라 대주교의 지팡이는 그대로 서있었고 그의 몸만이 어둠으로 일그러지며 찢어지는 고통과 함께 냉기를 내뿜는 얼음 덩어리로 변해버렸다. 인간의 형체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오직 안쪽에 피로 보이는 붉은 액체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대주교가 서 있던 자리엔 이제는 사람 키만한 얼음덩어리가 대신하고 있었다.


사제들도 온데간데 없고 어느새 얼음 덩어리들만이 서 있었다. 자신의 운명이 마지막임을 느낀 왕과 두려움에 어쩔줄 모르는 왕비와 사람들은 검은 무리에 방금 전과는 정확히 반대로 에워싸여졌다. 칠흑의 사내가 앞으로 나오며 연단 앞에서 최후의 발악을 준비하는 왕 앞에 한 마디를 던졌다. "죽음만을 앞둔 왕이여, 내 너에게 젊음을 주겠노라"


왕의 미간이 한껏 구겨지다가 어느새 평안함을 맛보듯 점차 펴져갔다.



4화에서 계속...

"때가 차매 그 빛이 다시 솟아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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