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일기 벽돌시리즈 750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칠백 오십번째
"닥쳐라 이 마녀야!" 벽 면에 비춰진 그림자조차 차마 눈 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의 잔인함의 향연이었다. 처형된 마녀들 혹은 아무개는 그 어떠한 무고함을 토로해도 먹히질 않았던 것이다. 종교재판의 혹독함은 중세와 근세의 분명 어두운 그림자 중 하나임은 명백하다. 다만. 구글링과 위키를 통해 최근에 안 사실은 "종교재판"의 대명사라 불리던 스페인의 종교재판은 의.외.로 비교적 적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는 것이다.
종교재판하면 마녀사냥과 함께 떠올리고 화형대에서 불타오르는 끔찍한 광경을 상상하기 쉽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중세와 근세 종교재판, 이단심문은 의외로 합리적인 부분이 있었다는 것이다. 대중매체에서 알려진 이미지와는 다르게 성직자는 엘리트여야만 했고 엘리트중에서도 절차와 과정이 그 나름대로 훈련된 사람들이 이단 심문을 담당했다. 예전에 소개 한 바 있는 잔 다르크도 마녀로 몰려 사형당했지만, 그녀가 처음 이름을 알리기 전 무명의 소녀였을 때의 심문과 그리고 마지막 목숨을 다할 때의 심문은 모두 절차라는 게 있었다.
결과적으로 답정너일수 있지만, 전자의 심문을 통과한 잔 다르크는 샤를 왕세자에게 프랑스군 총사령관에 임명되었고(달리 말하면 이단 심문은 그만큼 권위적이며 함부로 남용될 수 없는 것임을 방증한다.) 후자의 심문은 그녀가 어떤 답을 내놓든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미지에 맞는 잔인한 결과로 끝 맺음이 되었던 것은 맞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을 보자면 당시 성직자들이 사람 잡아 죽이는 도살자들도 아닌 이상에서야 지역 치안과 안정에 힘 쓰던 "관리"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스페인의 경우, 전성기를 이끈 국왕 펠리페는 가톨릭에 경도되어 라이벌 "개신교"국가들에게 악명이 덧 입혀졌고 국제 관계도 실패한 것은 맞지만 어느정도 정상참작 할 부분이 있다. 펠리페는 내치엔 성공적이었으며 과로사 직전의 명군으로 가톨릭이라는 종교를 통해 이베리아 반도에 평화와 안정을 가져다 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래서 스페인의 종교재판이 왜 그토록 대명사가 되었냐 생각해보면 근세 직전의 가톨릭 혐오에서 비롯된 영미권 개신교 쪽 혹은 프랑스 혁명기의 급진적 무신론자들의 비방에 가까운 이미지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중세하면 종교재판이지만, 가장 잔혹하고 인명피해가 많았던 것은 근세였으며 미국에서의 마녀사냥이나 개신교에서의 학살도 만만치 않았다. 어느 종교든 완전히 다른 종교가 아닌 서로 이단이라 일컫는 집단끼리 헤게모니 다툼으로 더 악랄하게 싸웠다. 엘리트주의적인 시선일 수 있으나, 오히려 당시 대중은 까막눈에다가 집단 광기에 휘말릴 위험이 컸으므로 마을에서 찍혔거나 군중심리에 몰려가서 인민재판 선조격으로 사람들이 마구잡이로 죽어나갔다. 가톨릭이냐 개신교냐 누가 잘했고 못했고를 따질 문제도 아닌데다 단순히 앞 뒤 꽉 막힌 "종교"라는 프레임으로 판정하기에는 당시 정치,사회적인 시대적 맥락을 지나치게 무시한 해석일 수 있겠다.
[매일마다 짧은 글에서 우리 모두를 위한 가능성, 벽돌시리즈는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