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일기 벽돌시리즈 752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칠백 오십 이번째
키르케고르는 신 앞에 선 단독자란 개념으로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 나의 존재에 대해 긍정했다. 그는 신이 있다는 가정하에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느냐란 끊임없는 의문에 답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반면 니체는 신 없이도 위버멘쉬, 초월자가 되어 자신의 삶의 고삐를 붙잡아야 한다 설파했다. 두 사람 다 신이 있건 없건 현존하는 자기 자신을 삶의 능동자, 삶의 주인으로 바라보았다.
키르케고르의 "신 앞에 선 단독자"란 개념은 마침 알몸으로, 에덴동산의 그때와 같이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비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때의 나는 실존의 절정이며 절대자 앞에서도 당당한 자기 운명의 자립자가 된 것이다. 그런데 내가 이해하는 키르케고르의 철학이란 신 앞에 서기까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내기까지, 먼저 무수한 사람들이 실존적 공허에 고통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해보았다.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하는가? 왜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끊임없는 되물음과 풀리지 않는 해답은 결코 기존의 누군가가 내놓은 답에 의해서 정해질 수 없는 것이며, 객관적인 기준 또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고통받을 수 밖에 없다. 의문에 대한, 그것도 자기 존재의 근본적 토대의 불안정함으로 인간은 질문을 던지지만 답을 찾지 못한 채 유예할 경우 다른 곳에 시선을 돌린 채 살아간다.
하지만 그러한 몰입이 끝나고 다시 자기 자신에게로 시선을 돌리는 때가 오면 실존적 공허로 인하여 고통을 받는다. 현재를 충실히 살아라? 안 그래도 그러고 있지 않은 가? 현재의 나에게 나는 왜 살아야 하는 지 답을 묻고 있지만 들려오지 않는다. 삶을 긍정하려 하지만 여전히 들려오지 않는다. 자신의 마음은 육안으로 보기엔 두 손으로 가릴 정도 밖에 되지 않지만, 안으로 들어가 살펴보면 그 공간은 우주보다 넓은 채로 텅 비어있다.
니체는 신으로부터 노예의 사슬을 끊고 초월하라 말했지만 키르케고르는 신과 자기 자신 사이에의 관계를 설정한 채 관계성에서 도리어 자립성을 찾는다. 마치 인간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듯, 그 대상이 신이 되었든, 그 무엇이 되었든 그것 앞에 선 자신이 당당한 단독자로 서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래서 그에 앞서 먼저 만나야 할 상대가 있다. 그리고 어쩌면 평생을 회피하며 허수아비를 앞에 세운 채 삶이 끝나는 사람도 많을 것이지만, 먼저 공허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세운 단독자로써 온전히 바로 설 필요가 있다.
[매일마다 짧은 글에서 우리 모두를 위한 가능성, 벽돌시리즈는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