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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언덕에서

대학원생의 성장일기 8

by 포텐조

벽돌 시리즈 여덟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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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고 있는 지금, 비가 많이 내린다. 이번연도는 쏟아지는 것을 넘어서 작물까지 썩게 만들어 버리니 너무 많이 내리는 것 같다. 다들 비를 좋아하는지 궁금하다. 나는 선택적으로(?) 비를 좋아한다.

외출하거나 야외활동 할 때는 비를 정말 싫어한다. 옷도 젖고 신발도 젖고 제일 짜증 나는 건 신발이 더 이상 물을 흡수하지 못해 통과하기 시작하고 양말이 젖기 시작하는 그 타이밍이 너무 싫다.

하지만, 사람이라는 게 절대적인 진리인 케바케라는 게 있지 않은가? 집에서 방콕 집콕할 땐 갬성이 솟구치고,

비가 오는 선선한 날, 창문 열어놓고 자고 있으면 그것만큼 꿀 맛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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갬성이 솟구치기 딱 좋은 이때. 나의 꿈 중 하나를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중학교 때 train의 "hey soul sister"가 영어시간인가 언제인가 영상과 함께 틀어지는 것이다. 학창 시절은 나의 암흑기였고 중학교가 절정이었으니. 학교 폭력을 당했다. 왕따는 아니지만 반 내 인원을 그룹화해서 보면 나는 언제나 비주류였고 가장 만만한 놈 중 하나였다. 제일 싫은 시간 중 하나인 체육시간은 팀 경기를 하면 또래에게 언제나 온갖 상스러운 욕을 한가득 먹었고 심지어 때리기까지 하니 당연 싫을 수밖에.. 그때 또 가뜩이나 질풍노도의 시기에 예민하던 차에 그런 어두운 감정들이 나를 잡아먹고 있으니 학교가기는 제일 싫은 것 중 하나였다. 다시 돌아와 헤이 소울 시스터가 틀어지자 듣기가 좋아 나도 다운을 받아 이어폰으로 듣고 다녔다. 당시 앨범 표지가 먹구름에 초원 사진이었다. 뭔지 모를 끌림과 그동안 학교에서 집중도 안 되는 수업, 자습시간 비가 오는 것을 보면, 비가 엄청 와서 학교가 폐교하는 상상까지 하던 나인데 음악을 듣고 있자니 심적으로 달래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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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시절 자기 계발서를 읽으면서 꿈의 장면을 그려보라는 내용에 자극받아 심상을 떠올려 봤는데, 아주 맑은 날 해가 뜬 날에 비가 오는 것이다. 즉 여우비가 내리는 것이다. 근데 그 여우비를 나는 홀로 맞고 있었고 앨범표지처럼 초원에서 더 나아가 언덕 위에서 그런 비를 홀로 맞고 있었다. 언덕 아래엔 초원의 풀들은 먹구름에 그렇다고 막 밝지도 않은 채 비를 맞고 있었으나 내가 서있는 언덕과 그 뒤의 들판은 아주 화창한 날씨에 비가 뿌려지고 있었다. 나는 팔을 벌리고 마치 타이타닉 주인공 마냥 기쁨의 포효를 지르고 있는데 뒤에는 아주 비싼 외제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중학교 때의 상상이라 오그라들 순 있으나, 그때 당시의 심상이 인상 깊었는지 여전히 기억하고 있고 나는 뭔지 모를 해방감과 성공이라는 외제차의 상징과 포효는 그때 내가 꿈꾸는 나였다.


즉 현재 이 먼지 나고 곰팡내 나는 교실에서 나는 너희와는 다른 엄청난 성공을 할 것이다라는 꿈을 꾸며 상상을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비를 맞는 상상은 현재의 고달픔, 답답함, 어려움을 한 번에 해소하는 차원과 비가 가져다주는 어두운 이미지과 콜라보되어 내 옷과 피부로 시원함이 전달되는 것을 느꼈다. 그 해방감과 성취감을 느껴보며 간직한 채 다시 어두운 현실과 마주해야 할 시점에서 나의 상상은 내 마음 박스 한편에 밀봉되어 버렸다. 달라지는 건 전혀 없었고 상상은 상상일 뿐이었다. 하지만 비 내리는 것을 가끔 보면 박스 속에서 나오려고 발버둥 치는 귀여운 상상은 가끔 그 장면을 떠오르게 했고, 지금은 나의 꿈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게 언제 일지는 모르지만 벽돌을 하나하나 쌓아가다 보면 자연스레 그 언덕을 오를 수 있지 않나 싶다.

일단 외제차부터 구해야...

여하튼 비 오는 언덕에서 여우비를 맞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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