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일기 벽돌시리즈 825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팔백 이십 오번째
인문학적 그리고 문화적 관점에서 생각해보는 신념의 언어들, 불교의 아미타불 편에 이어서 이번 시간에는 기독교로 넘어가보도록 하자. 이전 글에 썼듯 밸런스(?)를 맞추기 위한 관점이자 동시에 개신교인으로써 성서에 등장하는 인물 중 바울(천주교에선 바오로)을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 해 써보게 되었다. 이전에도 바울에 대해 쓴 바 있지만 신념의 언어들에서 보다 자세히 다뤄보고자 한다. 바울은 사실상 기독교의 틀을 세운 인물이라 봐도 될 큰 기여를 한, 아이러니하지만 예수를 직접적으로 본 적이 없는 제자다.
12사도? 예수와 직접 대면하고 활동하던 12제자들은 베드로와 요한 등등이 있지만 바울은 들어가지 않는다. 예수가 생존하셨을 당시에 바울은 약 10살 정도 어렸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예수를 만날 수 없었던 것이 그는 지금의 튀르키예의 남부, 타르수스라 하는 지역에서 자랐지만 예수는 예루살렘과 갈릴리 지방에서 활동을 하고 있었던 터라 어렴풋이 스쳐 지나가는 가능성조차 없었다. 바울이 어느정도 시간이 흐른 후 예루살렘의 유대교 학당에서 엘리트 교육을 마쳤을 때엔 이미 예수는 이 땅 위에 있지 않았다.
종교에 대해 관심 없는 사람들은 바울에 대한 중요성을 크게 인식하지 못한다. 12사도와 예수를 중심으로 한 사역과 그들의 스토리를 인식하고는 있지만 정작 이 모든 것이 존재하게 하고 이어지게 만든 바울에 대해선 낯설게 느낀다. 자, 예수를 본 적이 없는 바울이 왜 예수의 제자가 되었는 가? 지금부터 나열하는 내용들은 성경, 그중 신약 성서 분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바울의 서신과 글에 바탕을 두었다.
바울은 자신이 중동의 유명한 도시 다마스쿠스에서 예수의 제자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밝힌다. 원래 그는 쉽게 말하면 유대교 중에 찐 유대교 활동가여서 당시 예수 신앙에 대해 극혐을 하고 있었던 터라 기독교인들을 잡아 가두거나 죽이는 역할에 선봉에 서던 자였다. 첫번째 순교자인 스데반을 죽인 증인 중 한 명으로써 현장에 있었으며 성서에선 그가 다마스쿠스에 기독교인들이 모여있는 소식을 접하고 사람들을 이끌고 잡으러 가던 중에 갑자기 눈과 귀가 이상해지며 예수를 보았다고 말한다.
이는 성경 스토리에선 "회심"이라 하는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인데 현실적으로 해석 해 본다면 여러 추정 또는 상상만이 이 간극을 메워 줄 수 있다. "바울아 네가 왜 나를 탄압하느냐?" 예수가 바울에게 나타나 전한 말이다. 이때 바울은 크게 마음이 요동 쳐 180도 바뀌게 되면서 박해하던 자에서 박해받는 자로 바뀐다. 추정컨대 열성적인 유대교 신자 바울이 기독교인을 탄압하면서 도덕적 혹은 신학적 딜레마의 위기에 처했거나 인명을 해치는 것에 대한 슬럼프가 크게 온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스데반의 사형 때를 언급 한 것을 보면) 2부에서 계속..
[매일마다 마주하는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당신의 좋아요, 구독은 작가에게 창작의 에너지가 됩니다.]
매일 습관 정리
습관 1 : 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