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빛의 여정 84화 / 8장 세번째 조각
장편소설 빛의 여정 84화 / 8장 세번째 조각
조금씩 재로 변하면서 사라져가고 있는 검은 뱀은 똬리를 튼 채 구덩이 깊숙한 곳에 죽어있었다. 구덩이에 접근하다 뱀을 보고 놀란 로이딘 일행은 온 몸이 칠흑같은 괴물의 시체를 다시 조심스럽게 접근해서 바라보고 있었다. 살아난다면 바로 크게 벌린 아가리를 다물어서 무엇이든 삼켜버릴듯한 머리에는 무언가 관통한 모양인지 턱에서 머리까지 동그랗게 뚫려있었다. 그리고 뚫린 부분 주위가 새하얗게 변하여 티끌들이 휘날리며 공중으로 날아갔다.
로이딘은 뱀을 발견하고 놀라서 움찔하며 도끼를 손에 꽉 쥐고 있었다. 그는 긴장한 채 기괴할 정도로 커다란 괴물을 바라보며 같이 바라보고 있는 친구들에게 물었다.
"저게 뭘까?"
시테온이 진절머리를 치며 물러서 말했다.
"으.. 몰라. 그냥 괴물이지 뭐야"
루네가 말했다.
"이게 나타나서 캠프가 쑥대밭이 된건가?"
그 말을 듣자 로이딘이 생각이 났다.
"검은 섬광이 이 뱀 때문에 나타난 건가봐"
착잡한 마음이 불현듯 들으면서 감옥 안에 있던 사람들이 생각났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건지 루네가 감옥에 있던 사람들이 모조리 사라졌다며 한탄스럽게 말했다. 캠프 안 마당에는 쓰러진 사람들이 흩어져 있었지만 구덩이 안에는 뱀 외엔 사람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살아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고 로이딘 일행이 구할 레도룬의 피데라시스들의 모습은 이곳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시테온이 말했다.
"이제 어쩌야 하나?"
로이딘 일행은 잠시 멈춰서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루네가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남은 곳으로 향해야 하지 않을 까?"
로이딘이 말했다.
"이질바이나? 그런데 베일런이 거기보다 이곳을 더 강조했었잖아"
루네가 답했다.
"뾰족한 수가 없잖아. 그렇다고 이대로 가서 추적대 본부까지 찾아 갈 수도 없으니"
그들이 알고 있는 아나티리캄 동부 피데라시스의 사원은 레도룬과 이질바이나 뿐이였는데 레도룬의 사원은 마을에 위치해 있어 대부분 일반인들이 출입가능한 곳이었고 이질바이나는 산 자락에 있는 수도원이었다. 가장 접근하기 쉬워 그만큼 탄압이 거센 것으로 알려져 있던 레도룬에 서 있던 로이딘 일행은 이제 다시 떠날 수 밖에 없었다.
로이딘이 말했다.
"피데라시스들이 이단 추적대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 생업을 포기하고 수도원까지 올라갔을까?"
루네가 답했다.
"이질바이나가 어떤 곳인지 직접 봐야 만 알 수 있겠지. 여하튼 우리는 처한 상황을 파악해야 하니까"
폐허가 된 캠프 한 복판에서 조용히 기도를 해주는 것 외엔 희생자들을 위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캠프를 나오면서 걷기 시작하는 로이딘 일행은 그들이 서 있는 곳에서 남쪽으로 향했다. 말을 살 돈도 없으니 그냥 걷고 또 걸어야만 했다. 시테온의 말로는 3~4일은 족히 걸어야 도착할 것이라는 예상을 했다. 어쩔 수 없었다. 시테온이 헤르논 수도원으로 복귀하는데 오로지 걸어가는 것에 대해 앙탈을 부린 것이 현실이 되었다. 더군다나 이질바이나까지 말 없이 가게되니 헤르논 복귀는 더욱 더 먼 길이 될 것이다.
여기저기 앙상한 숲을 통과하고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는 바람에 생긴 평평한 흙길을 고스란히 따라갔다. 오후가 지나 이제 저녁이 될 쯤에, 잠을 청하기 위해 혹시라도 민가가 있을까 싶었다. 그러나 민가는 보이지 않았다. 걸어가면서 검은 뱀에 대한 추측을 해보았지만 갑자기 나타난 날개달린 박쥐시체와 뱀을 누가 소환했는지 그들은 알 턱이 없었다. 피데라의 등장과 검은 마법이 동시에 등장한 것에 대해 그 어떤 연결조차 그들 머릿속으로 그려지지 않았다.
그날 밤은 바위 틈에서 모닥불을 만들고 꽁꽁싸맨 채 잠을 청할 수 밖에 없었다. 이그네움으로 붙인 불이 추위를 이겨내게 해주어 야생 한 복판에 있는 그들이 무사히 밤을 보낼 수 있도록 해주었다. 새벽이 지나 전투 수도사들의 다음 날 아침이 되었다. 로이딘 일행은 항상 해왔듯이 막간의 아침 예배 및 기도를 해야했다. 이를 생략하거나 약식으로 잠시 기도하는 시간으로 끝내기도 했었는데 추위와 배고픔에 스물스물 올라와 그들의 신심이 본격적으로 발현이 되는 듯 했다. 로이딘이 진행을 맡기로 했다. 그가 말했다.
"그 분은 누구신가?"
시테온과 루네가 답했다.
"그 분은 영광의 신이요 빛의 신이라."
로이딘이 말했다.
"그분은 우리에게 어떤 분인가?"
시테온과 루네가 답했다.
"그분은 삶과 죽음의 지배자요, 피조물의 조물주이며 사람에겐 선을 알려주신 분이라."
로이딘이 말했다.
"피데라의 영광이 우리와 함께 하시길"
시테온과 루네가 답했다.
"피데라의 은총이 우리와 함께 하시길"
그리고 모두가 외쳤다.
"때가 차매 그 빛이 다시 솟아나리라"
그렇게 기도문답을 외치고 각자 짧게 기도를 하며 마무리했다. 이 짧은 기도조차 때로는 로이딘 일행 중 누군가는 하기 귀찮아하는 경우가 있었다. 시큰둥한 표정으로. 그럼에도 하고난 후에는 하루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느낌을 받았다.
모닥불을 끄고나서 바위 틈에서 고개를 쏙 내민 로이딘은 부은 얼굴로 저 멀리 남쪽을 바라보았다. 해가 떠오르고 있었고 험난하진 않았지만 바윗길들이 계속 펼쳐져 있었다. 그들이 위치한 곳은 어느 언덕이었고 이러한 언덕길이 보이는 끝 자락까지 이어졌다. 불만을 표하든 기쁨을 표하든 갈 길을 계속 갔다. 시테온의 철퇴머리보다 단단해보이는 빵 조각을 물에 적서 어떻게든 삼키고서야 흐느적거리는 팔다리에 힘이 생겼다. 루네가 지나가는 길에 사슴이라도 보이면 자신이 잡겠다고 말해주자 두 사내의 사기가 어느정도 솟았다.
85화에서 계속...
"때가 차매 그 빛이 다시 솟아나리라"
(매주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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