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빛의 여정 85화 / 8장 세번째 조각
장편소설 빛의 여정 85화 / 8장 세번째 조각
아디일라의 왕 "피네로"는 북쪽 산맥의 사람들에게서 악명이 자자했다. 그가 머리뼈로 만든 술잔을 들고 피를 담아 마신다는 이야기와 잘못을 저지르면 사지를 잘라 바꿔놓는 끔찍한 형벌을 내린다는 소문 등이 그것이었다. 그런데 피네로는 이를 즐기고 있었고 오히려 그런 소문이 널리 퍼지기를 내심 기대했다. 뭐, 일부는 사실이기도 했으니. 그는 공포만이 무리를 지배할 수 있다 생각하는 지도자였으며 그 수하들은 공포에 절여져 철저히 복종하고 있었다. 아디일라는 혹독하고 폐쇄적이었으며 무력만이 전부라 여기는 전사들의 집합소처럼 보였다. 이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들은 추위에서 버려졌으며 약자를 솎아내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다.
최근 피네로는 북쪽의 땅과 남쪽의 땅들 사이에 관문 역할을 하는 바슬라의 국왕 메토네메우스를 만나 서로간의 협상에 성공했다. 바슬라가 아디일라의 남쪽 침략을 눈 감아주는 대신 전리품으로 얻어낸 이그네움을 분배받기로 한 것이다. 소리소문도 없이 어느 날 바슬라의 거대한 성문이 열리고 아디일라의 군대는 순식간에 빠져나와 남쪽의 아보테 국경까지 향했다. 바슬라를 통과할 무렵엔 메토네메우스는 혹여나 성문을 열어주었더니 배신을 때려 이곳을 초토화시키지 않을까 걱정하여 뜬 눈으로 전 군을 무장시킨 채 아디일라 병사들이 남김 없이 지나가는 것을 긴장하며 바라보았다. 아디일라 침략군은 만 명이 넘었고 지리에 밝은 바슬라의 정찰병들이 아보테 국경까지 발각되지 않기 위해 숲에서 숲으로 이동하면서 길을 인도 해 주었다.
아디일라 군대의 복장은 너덜너덜한 가죽 옷에서 어디서 전리품으로 얻었는지 모를 녹슨 철갑으로 무장한 중무장 보병까지 다양했다. 가난하고 황량한 북쪽의 국가여서 차림은 시원찮았지만 얼굴은 볼거리에 걸린듯 붉게 달아올랐고 눈은 살아남은 자들의 광기로 이글거렸다. 간만에 이어지는 대규모 약탈 활동에 아디일라의 부족민인 병사들은 고무되어있었다. 관리되지 않은 덥수룩한 수염에다 너무 긴 나머지 중간에 줄로 묶어 꽁지처럼 뺀 수염을 기른 사람도 있었다. 무기는 기본적으로 창이었으나 상처와 고통을 깊게 주기 위해 창날이 톱날로 되어있었다. 이는 피네로의 가학적인 성향을 적극 반영하여 통일한 무기였다. 나무줄기를 곧게 다듬지 않고 휘어있어도 휜 채로 톱날 창날을 달아 쓰거나 아니면 도살장에서 쓸 법한 거대하고 네모난 칼날을 단 무기를 들고 이동했다.
군대의 중간 행렬에선 메토네메우스와 바슬라 사람들을 놀라게 한 산중 거인들이 뭉쳐서 이동했다. 산중 거인들은 돌로 된 망치를 얼기설기 가죽으로 묶어 막대에 매달아 들고 있었다. 망치 길이가 사람 키의 두 배만 했다. 가장 중요한 장비 중 하나인 군기를 들고가는 친위대 소속인 거인은 분명 아디일라의 노숙자 주머니까지 털어가며 맞추어 주었을 법한 반짝거리는 철갑을 입고 자기 보다 높은 아디일라의 군기를 들고 이동했다. 보통 군대라면 군기가 사람들의 키보다 조금 높을 뿐이었을테지만 거인이 든 군기는 이동하는 등대 수준이었다.
그래서 아보테 국경 가까이 왔을 때는 군기를 낮추거나 아예 눕혀서 들고 이동했다. 뒤쪽은 피네로 그 자신이 친위대에 둘러 싸여 있는 채로 마갑을 입힌 말을 타고 화려한 장식을 얹은 갑옷을 입고 이동했다.
뿔이 좌우가 아닌 빙 둘러 하나씩 꽂은 뿔로 장식한 투구를 쓰고 있는 피네로의 두상은 다소 특이했는데 그의 술잔이 된 정적들이 "그의 공격적이고 잔인한 성격은 바로 저 기형적인 머리모양에서 비롯된 것이다"라고 주장했었다. 두상이 둥근 네모형에 귀가 도드라지게 크게 보여 어릴 적 그는 "아디일라의 원숭이"라 놀림을 받았다. 지금 그의 앞에서 그런 별명을 언급했다간 누군가의 발에 걷어 치우게 되는 하얀 두개골이 될 것은 분명하다.
아보테의 국경에 나타난 아디일라 군대는 숙영을 했고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국경은 이단 추적대의 공격적인 이단 처리 사업으로 넓어지고 있어 동시에 경계 또한 느슨해지고 있었다. 대주교의 선포 이후 아나티리캄을 사실상 침략한 아보테가 그쪽을 집중하고 있는 터라 상대적으로 바슬라 부근 북쪽의 국경선은 안일하게 관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왕래하는 사람이 거의 없으며 바슬라와도 사이가 어색한지라 최근에 분위기도 뒤숭숭해서 괜히 어물쩍 바슬라에서 활동하면 아나티리캄 사람들 꼴이 될까 극 소수의 상인들을 제외하면 인적이 드물었다. 그래서 그 사이의 흙길들은 겨울초들이 자라나려 하고 있었다.
숙영지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피네로에게 조심스레 다가온 장군이 말을 건넸다.
"폐하, 그 자가 말한 게 사실일까요?"
게걸스레 물처럼 마시던 피네로가 잔을 멈추어 떼며 말했다.
"무슨 말이냐?"
장군은 고개를 숙인 채 시선을 아래로 향하고 그에게 말했다.
"아보테에서 온 사제 말입니다. 그 자가 정말 이그네움 저장고를 알려준 건지 싶습니다. 혹시나 유인책이 아니올까 싶어..."
피네로가 조용히 장군을 바라보다가 다시 잔을 올리며 말했다.
"이새끼가 술 맛 떨어지게.. 확실하다 걱정마라"
장군이 고개를 다시 숙이며 조용히 물러났다.
"송구스럽습니다 폐하"
덕분에 피네로는 바슬라로 오기 전에 자신의 결단에 도움을 줬던 아보테의 사제를 떠올려 보았다. 그는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이 먼 곳까지 찾아왔고 혈혈단신으로 야만적인 군주 앞에 서서 자신이 온 이유에 대해서 설명했다. 그는 자신이 이그네움이 모여있는 곳이 아보테 전역에 어디있는지를 알고 있다며 거래를 하러 왔다 말했다. 진위여부를 따져 묻던 피네로는 보기 드물게 유혹의 사신을 극진히 대접했다.
85화에서 계속...
"때가 차매 그 빛이 다시 솟아나리라"
(매주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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