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빛의 여정 86화 / 8장 세번째 조각
장편소설 빛의 여정 86화 / 8장 세번째 조각
이질바이나는 레도룬과는 달리 험난한 곳에 있었다. 로이딘 일행이 도착하기 하루 전부터 바위 언덕의 높이는 점차 높아만 갔는데, 아나티리캄 지역에서도 손 꼽히는 고지였다. 걸어서 올라간 이질바이나 마을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나마 비어있는 마을 이곳 저곳을 살피며 찾아본 결과 사는 사람이 극소수 남아 있었고 주민은 이런 곳까지 왜 찾아왔느냐며 반문했다. 로이딘 일행은 피데라시스의 수도원을 찾는다며 답하자 주민은 다시금 손가락을 위쪽으로 가르키며 어디있는지를 알려주었다. 다음 날까지 무릎을 손으로 짚어 헥헥거리며 도착한 로이딘 일행은 마침내 수도원을 마주하게 되었다.
높은 산 중턱에 위치한 수도원과 아찔한 절벽 너머로 보이는 아나티리캄 끝자락의 땅들. 그리고 바다가 넓게 펼쳐져 있었다. 가장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남쪽 땅은 춥고 황량한 이곳과 달리 초록기운들이 저물지 않았는데 만약 맞다면 그곳은 정글지대의 초입부일 것이다. 잠깐의 구경을 하고 있는 로이딘과 시테온은 숨을 크게 들이마쉬고 내쉬었다. 루네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했지만 여전히 영원한 추위의 기운이 느껴지는 음울한 배경이 떠올라 있었다. 로이딘이 이제 눈 앞에 보이는 수도원을 향해 발을 떼자 시테온과 루네도 함께 발걸음을 재촉했다.
수도원의 종탑이 가장 눈에 띄었으나 앞에는 나무 벽이 쳐져있어 어느 수도원이나 마찬가지로 외부인의 출입을 금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벽 근처에는 경비서는 사람이 없었고 조용하기만 했다. 로이딘이 정문을 두드렸다. 커다란 고리 손잡이를 잡고 쿵쿵하고 두드려보았다. 귀를 기울였지만 반응이 들려오지 않았다. 한 번 더 두드려보았으나 역시나 마찬가지였다. 그러자 로이딘이 두 친구의 얼굴을 바라보았고 루네가 말했다.
"비켜봐 발로 차서 열던지 하자"
이때 문 너머 조용하게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럴 필요 없소"
끼익하며 열리는 문 그리고 앞에 선 로이딘 일행, 마주한 노인. 노인은 수도복 차림이었고 지팡이를 쥐고 있었다. 그의 눈은 퀭했으며 몸은 말라 있었다. 로이딘이 어색하게 인사를 건넸다.
"아..안녕하십니까?"
노인은 인사를 듣는 둥 마는 둥 몸을 돌려 안쪽으로 향했다.
"오시오. 그대들이 누구인지 알고 있소"
서로를 어리둥절하게 바라보던 로이딘 일행이 노인을 따라갔다. 수도원은 이질바이나처럼 텅 비어 있었다. 평소처럼 사람이 있거나 현재의 특수한 상황으로 피난민이 몰려있을 것이란 예상과는 정반대로 아무도 없었다.
루네가 궁금했는지 대놓고 노인에게 물어보았다.
"저희가 누구인지 아시면 왜 왔는지도 아시나요?"
노인은 말이 없었다. 조용히 걷기만 했다. 루네는 자신의 물음에 답하지 않는 노인에게 기분이 나빴다. 조용히 걷다가 갑자기 노인이 창고로 보이는 건물에 섰다. 그리고 힘겹게 문을 여는데 옆에 있던 시테온이 도와주며 두문을 열어젖혔다. 열린 창고엔 마른 풀들이 드문드문 깔려있었고 옷가지와 잡동사니들이 널부러져 있었다. 노인이 말했다.
"이질바이나 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피데라시스 사람들이 우리 수도원으로 도망을 왔었소. 수도원이 미어터질뻔했지. 안 그래도 우리 수도사들도 머물어 살기에도 좁은 데 그 사람들까지 왔으니 관리하기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시오?"
로이딘 일행은 그 말을 들으며 눈이 커졌다. 놀란 로이딘이 물었다.
"아니 그러면 여기에 사람들이 피신했었다는 겁니까?"
노인이 끄덕였다. 그리고 입을 뗐다.
"몇 명인지 까먹었는데 여하튼 벽 넘어까지 꾸러미를 내리고 살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소. 그만큼 급박했던 거지"
로이딘이 다시 물었다.
"그러면 지금 사람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노인이 잠시 한숨을 쉬고 말했다.
"얼마 전에 "에르반"이라는 꼬마가 자기가 빛나는 돌을 주웠다고 수도원을 싸돌아다니며 자랑을 하더군. 원래 녀석이 천방지축이니까 그러려니 했는데... 혹시 빛의 심판이라는 자들을 아는가?"
로이딘과 시테온은 그 말을 듣고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노인의 말을 듣고 순간 귀를 의심했다.
"빛의 심판이요?"
시테온이 묻자 고개를 끄덕이는 노인은 창고를 맥없이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만신전에서 불 지르고 난리쳤던 이단놈들 말야. 도망쳐서 받아들인 피데라시스들 중에 빛의 심판이 끼어있었지. 에르반은 그것도 모르고 돌을 보여준 모양이야. 나는 그게 뭔지 모르지만 빛의 심판 놈들에겐 굉장히 중요한 물건 인 것 같더군"
로이딘이 급하게 물었다.
"아니 어르신 그러면... 떠난 사람들하고 그게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노인이 답했다.
"빛의 심판이 데리고 가버렸어. 전부. 나는 약초를 캐러 멀리 나가는 고얀 버릇이 있는데 하필 내가 돌아왔을때 죽어가는 우리 수도사 몇 명만이 나를 반겼지. 그들이 내게 일러주더군."
루네가 얼굴이 달아오른 채 말했다.
"세상에...쳐 죽일놈들"
노인은 말했다.
"그 돌 조각이 이그네움하고 관계가 있는 모양이네. 아무튼 놈들이 피난민들 틈에 끼어있으니 알 턱이 있었겠나."
노인이 창고에서 눈을 떼 이제 종탑을 향해 걸으며 뒤에 있는 로이딘 일행에게 말했다.
"여기까지 왔으니 밤은 보내고 가게나. 따라오게"
로이딘 일행이 들어온 수도원은 한바탕 소란이 일어 사람들이 죽거나 떠나서 이제 폐허가 될 운명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87화에서 계속...
"때가 차매 그 빛이 다시 솟아나리라"
(매주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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