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빛의 여정 87화 / 8장 세번째 조각
장편소설 빛의 여정 87화 / 8장 세번째 조각
북적거리던 이질바이나 수도원은 이제 늙은 수도사 한 명만이 쓸쓸하게 지키고 있었다. 그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로이딘 일행은 담담하지만 슬퍼보이는 수도사의 입에 주목하고 있었다.
"그래서 세 사람이 첫 시작을 아주 크게 치뤘다는 말이군"
로이딘은 이질바이나로 오기 전에 캠프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소상히 설명해주었다. 그와 저녁을 먹기전에는 다소 입을 조심하고 있었지만 그가 하는 말이나 태도가 진솔해보여서 레도룬의 일을 차를 마시는 지금, 꺼내게 되었다. 그러자 노인은 대뜸 이름과 함께 자신을 소개했다.
"나는 "갈리스"라 하네. 수도원장님이 없으니 지금 내가 대행인셈이지"
그의 농담에 쓴 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갈리스가 말했다.
"이질바이나 수도원이 내가 수도사가 되어서 평생동안 몸 바친 곳은 아니네만 몇 십년 동안 함께했던 보금자리였지. 한 순간에 내가 사랑하던 사람들이 사라질 줄은 어찌 알았겠나. 다만 내게 피데라께서 조금의 혜안은 부여 해 주신 모양이야."
그 말에 듣고 있던 시테온이 고개를 살짝 갸우뚱했다. 루네가 대신 물었다.
"조금의 혜안이요?"
갈리스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 입을 뗐다.
"들어보니 여기 앞에 자네 친구 로이딘은 싹이 보이는 친구로고. 실제로 피데라를 만난 이는 극히 드물어. 환상과 기적을 들어보니 거짓은 아닌 것 같구만. 사는 동안 내가 얼마나 많은 피데라 대면자들을 만난 지 아시오? 하나같이 진부하고 꿈속에서 자위 질이나 해대던 이야기뿐이었지"
그러자 로이딘이 피데라를 만난 사실에 대해 어찌 긍정하는지 궁금해 했다.
"선생님, 그러면 왜 저는 사실이라고 믿으시나요?"
갈리스가 눈을 가늘게 뜨며 갑자기 씨익 웃어보였다.
"허허. 그냥 느껴지는 것이지"
갈리스가 갑자기 함께 있던 식당 구석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로이딘 일행을 바라보며 말했다.
"따라오게, 구경시켜 줄 게 있어."
그렇게 말하고 식당 문쪽으로 향하는 갈리스를, 마시던 차를 내려놓고 로이딘과 친구들도 덩달아 따라갔다.
복도를 지나서 다른 건물을 잇는 지붕 덮인 회랑을 넘었다. 끝에는 작은 문이 잠겨져 있었고 갈리스가 잠시 열쇠를 들고 그것을 풀고는 문을 열었다. 그리고 로이딘 일행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 헤메다 갈리스가 불을 횃불에다 붙였다. 이어서 환해지는 실내공간은 여러 책장으로 자리한 수도원의 도서관에 그들이 도착한 것이었다. 책장들 사이엔 커다란 테이블이 있고 널부러져 있는 책들과 양피지, 관리 안된 잡기들이 바닥에 있었다. 갈리스가 테이블로 가다니 세 사람을 불렀다. 그러자 4명이 빙 둘러 서 있었고 갈리스는 입을 뗐다.
"흠.. 좋아. 아까 우리 처음 만났을 때로 돌아가보지. 내가 말한 꼬마 말일세. 에르반이라고 한 그 녀석 말이야. 그 녀석이 발견한 돌의 정체를 그대들은 알고 있나?"
로이딘은 잠시 루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루네는 로이딘에게 살짝 염려스러운 표정을 미세하게 보여주고 있었고 이에 로이딘은 순간 파악했다. 찰나에 시테온의 표정도 바라보았는데 루네와 달리 괜찮을 것 같단 느낌을 풍겼다. 갈리스가 눈도 마주치지 않고 테이블만 바라보고 있다가 말했다.
"이보게 친구들. 상의 끝났으면 말해 줄 건지 말해주지 않을 건지 결정하게"
갈리스에 말에 놀란 로이딘과 멋쩍은 루네와 살짝 미소짓는 시테온이었다. 로이딘이 수긍하며 말했다.
"조각이 사실.. 저희가 몇 개월 전에 두 개를 얻고나서 수도원에 들어가 훈련을 받게 되었습니다. 수도원장님과 엑셀리 마스터께서 매우 놀라셨죠. 별똥 별들이 무수히 떨어졌던 백야를 기억하십니까?"
갈리스가 로이딘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무언가 머릿 속에 궁금증이 해결되는 듯 잠깐의 탄식을 내지르며 말했다.
"아...설마 그게 그러면 떨어진 조각들 중 하나라는 건가?"
로이딘이 방점을 찍었다.
"그냥 조각이 아니라 피데라 육체의 일부였죠"
크게 몸을 일으키는 갈리스는 굉장히 놀라워했다. 그가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 같아 로이딘 일행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시간을 주었다.
갈리스가 곧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서 빛의 심판 놈들이 그렇게 찾아갈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구만"
이번엔 반대로 로이딘에게 궁금증이 생겼다.
"선생님 헌데 빛의 심판은 왜 그것을 그렇게 찾고 싶어하는 겁니까? 단지 피데라의 육체라서 그런건가요?"
그 말에 갈리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네 반대지. 그들에겐 "피데라의 육체"란 개념은 이 땅에 있어서는 아니되네. 그들은 어디까지나 하늘에 계신 "빛"을 섬기는 것이지 패배해 내려 앉아버린 "빛"따위는 섬기지 않는 거지"
이 말은 빛의 심판이 피데라의 조각을 찾아내면 어떻게든 수거하겠다는 의미였다. 갈리스가 말을 이었다.
"그 이단자놈들이 사람들을 포로로 잡은 것과 별개로 조각으로 뭔 짓을 하려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피데라는 반드시 하늘에 계신 분이어야만 그들은 자신들이 땅의 대행자로써 기능한다고 믿는 미친놈들이야. 그렇기 때문에 조각은 되레 그들에게 있어서 존립목적을 방해하는 장애물일거야.
시테온이 만신전 방화사건의 이야기가 떠올라 빛의 심판이라는 자들이 왜 그렇게 극단적인지 궁금해 물었다.
"그럼 대체 그들은 뭐하는 작자들인 겁니까?"
갈리스가 로이딘에게서 시선을 돌려 시테온을 바라보았다. 나지막이 말했다.
"그들은 자기들 스스로 "승천할 자"들이라고 믿고 있어. 그것을 확대해석하면 이 땅은 방금 말한 조각과 같이 있어서는 아니 될 공간이고 자기들이 딛고 있는 땅의 흔적들을 파괴하고 피데라가 계신 고향으로 돌아가 재창조의 역사를 요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네"
갈리스가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잠시 머리를 손으로 감쌌다. 그러고선 자신의 수도복을 주섬주섬거리며 만지기 시작했다.
"어딨더라.."
갈리스가 수도복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이윽고 무언가를 감싸쥔 채 꺼내며 그것을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로이딘 일행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그것이었다. 만신전의 것과 동일한 손가락 길이만 한 주황빛 조각이 주름진 손을 떠나 온전한 모습으로 테이블 위에 놓여졌다. 갈리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에르반은 천방지축이긴 하지만 그만큼 똘똘한 녀석이었지."
88화에서 계속...
"때가 차매 그 빛이 다시 솟아나리라"
(매주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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