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초롱 Jul 18. 2022

나를 안다는 것은 나의 구린 면까지 안다는 것

나의 요가 에세이 <생각은 멈추고 숨은 내쉬세요>


나에 대해 알게 된다는 건 생각만큼 편한 일은 아니다. 나에 대해 안다는 것은 나의 '구린'면까지 알고 인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나는 엄청난 비평가였다. 나와 잘 맞는 사람과 친한 사람들의 기준이 있었다. 터무니없었지만 매우 진지한 척도였다. 가령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 짜장면보다는 파스타를 좋아해.' 이런 식이다. 돌이켜보면 그런 사사로운 정의에 기반해 사람에 대해 판단하고 그것에 비추어 나를 규정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런 식으로 나는 굉장히 억지스럽게 나에 대해서 또 내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성에 대한 판단은 더 억지스러웠다. 과거 소개팅을 돌아보면 작은 기준에 이 사람은 나와 맞아, 안 맞아가 갈렸다.


한 번은 굉장히 늘씬한 남자를 소개받은 적이 있었다. 나는 뚱뚱하고 배 나온 사람을 싫어해서 그 체격의 남자가 맘에 들었다. 그런데 점심을 같이 먹는 와중에 상대가 자신은 완전한 육식주의자이고 고기를 너무 좋아해 하루 세 끼 모두 고기를 먹어야 한다는 말을 꺼냈다. 당시 나는 채식주의에 대해 굉장히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던 터라 그 사람이 순간 늘씬한 야만인처럼 느껴졌다. 그 사람과 결혼이라도 하게 되면 매일 밥상머리에 먹을 것을 두고 싸울 것 같다는 상상을 했다.


이어 그 사람이 디저트로 말차 프라푸치노를 시켰는데... 정말 나와 정반대의 취향임을 한번 더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굉장히 까다로운 커피 취향을 가진 나와 너무 다른 스타벅스 취향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한 여름임에도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그 사람은 따뜻한 커피가 맞느냐 제차 확인했다.

그 소개팅을 끝으로 우리는 서로 연락하지 않았다. 그 사람도 그 쯤이면 내게 어떤 판단이 섰지 않았을까?  


그런데 지금 그때를 돌아보면 '그게 뭐라고, 그럴 수도 있지.' 싶다. 고기 세 끼에 이어진 여러 상상 때문에 나는 대화에 집중하지 못했다. 그 사람이 어떤 생각으로 사는지 뭘 좋아하는지 기억이 하나도 안 난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는데. 그 사람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데 함께 살게 될 경우 냉장고를 어떻게 채워야 할지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나 혼자 상대를 두고 이랬다저랬다


지금은 달라졌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이런 변화를 누군가는 나이가 들어서 유해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던데 내 경우는 요가하며  나 스스로에 대해 알게 되면서가 그 이유다.


나는 내 구린면을 받아주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먹자 내가 사람을 쉽게 판단하고 작은 것에 트집 잡고 산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지금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사람을 쉽게 판단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물론 이 습관이 구리기 때문에 혼자 찔리기도 하고 내면의 질타를 받기도 한다. 그런데 질타에 자꾸 반응하면 맥이 빠지고 스스로를 미워하게 되므로 나는 대답까지 잘 마련하게 됐다.


'사람을 그렇게 쉽게 판단하면 안 되는 거 아니야? 나쁜 거 아니야?'라고 말하는 내면의 소리에 '그래서 뭐?'라고.


이런 습관을 지닌 나 그대로도 괜찮다고 하면서 조금씩 상대의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자고 다짐한다.


이런 태도로 인해 내게 생긴 놀라운 변화는 나에 대한 비평도 줄었다는 것이다. 남을 판단하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나 스스로를 판단하며 몰아붙이는 습관을 놓고 뭐가 어쨌든 나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 된다.


사실 우리 자신은 스스로를 가장 사랑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비로소 남을 사랑할 수 있게 될 테니까. 결국 내가 남을 그렇게 판단했던 것도 알고 보면 나 자신이 맘에 들지 않아서가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작가의 이전글 연봉이 많아야 열심히 일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