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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많을수록 부정적인 생각을 한다

나의 요가 에세이 <생각은 멈추고 숨은 내쉬세요>

by 김초롱

하루 종일 회사에서 바쁘게 일할 때에는 별 생각이 없다가 오늘처럼 갑자기 쉬게 되는 날에는 금세 헛생각이 몰려온다. 그간 긍정적으로 살겠다고 그렇게 다짐해 왔건만 나의 결심을 무시하듯 내 머릿속에는 부정적인 생각들이 물꼬를 틀고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서도 그것을 행하고 있는 나 스스로를 알아채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저 생각에 빠져서 그 속에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다. 오늘도 그랬다. 특히나 오늘은 이상스럽게 꼬인 생각들로 괴로워했는데 막상 그것을 옮겨 적자니 민망할 정도다.


오늘도 예외 없이 삽질했습니다


며칠 전에 있었던 사건


얼마 전 지인과 대화를 나누던 중이었다. 상대는 몹시 바빠 보였고 연말에 약속이 많아 분주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게 "자기도 요즘 많이 바쁘지?" 이렇게 물었다. 사실 나는 그 대답에 그렇다고 할 만큼 바쁘지 않았다. 너무 다행스럽게도 우리 회사는 야근을 지양하는 문화로 내 일정은 대부분 오후 7시 전에 정리가 된다. 딱히 모임이랄 것도 없고 그렇다고 연애를 하는 것도 아니라서 나는 참 시간이 많다. 그게 팩트였다.


하지만 나는 상대방의 질문에 "그럼요."라고 답했다. 연말 모임으로 정신없는 척했다. 그러는 편이 더 나으리라고 생각했다. 괜히 상대에게 만남에 대한 부담을 주는 것도 별로였고 너무 한가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싫었으니까. 그때는 별 일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그때가 떠오르면서 괜히 내가 인기 없는 사람이 아닌가 의심하기 시작했다.


내가 인기 없는 사람이라는 가설


하나하나 따지고 보니 나의 가설이 맞는 것 같다. 이번 크리스마스가 낀 주말에도 별 다른 약속이 없었고 최근에 친구가 해주기로 했던 소개팅도 흐지부지 되어 진짜 이번 겨울은 회사 일 빼고는 말할 것이 없다. 그러고 보니 '최근 어떻게 지냈어?'라고 물어오는 사람들의 질문에 나는 늘 같은 대답만 했던 것 같다. "열심히 일하고 끝나고 요가하고 그리고 일기 쓰고." 이건 꾸밈없는 사실이지만 오늘은 이런 대답을 계속하는 내가 참 심심하게 느껴졌다.


왜 이렇게 인기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지금이라도 만날 약속을 정해야 할까 고민했고 그러다가 '누굴 만날까, 만나서 뭘 해야 하는 거지?'로 이어지는 생각과 결국 만날 상대를 결정하기 어렵다는 것, 연말이라 누구에게 연락하는 것이 실례라는 생각들이 겹겹이 쌓이면서 한숨을 푹 쉬게 되었다.


그저 삽질이다.


다행히 몸을 움직이면 이런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잠깐의 요가를 하면서 내가 세워 놓은 가설과 사로잡혀 있던 생각들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내가 또 혼자만의 생각으로 삽질하고 있구나.
내가 스스로 구멍을 파고 그 속으로 퐁! 들어가 버렸어. "


특별히 할 일이 없을 때 나는 삽질을 많이 한다. 의식적으로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아주 교묘하게 이런 생각의 습관을 이뤄진다. 이건 오랜 습관이라서인지 정말 고치기가 어려운데 어떻게든 알기만 하면 이 생각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는 건 참 다행인 일이다.

그럼 왜 그런 삽질을 한 거지?


나는 누군들 만나고 싶으면 연락할 수 있었고 전화도 할 수 있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쇼핑이든 뭐든 하면서 시간을 쓸 수 있었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하지 않고 스스로를 인기 없는 사람으로 자처한 이유는 거절당하기 싫은 마음 때문이다.


어떤 모임이든 내가 나서서가 아닌 누가 나를 불러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다. 호스트가 되기는 부담스러우니 게스트가 되고 싶었다. 호스트가 된다면 어쨌든 먼저 연락을 해야 한다.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이라면 모를까 그게 아닌 경우에는 연락을 하는 것도 필요하고 괜찮은 제안도 할 줄 알아야 한다. 먼저 어떤 것을 제안하려면 그게 무엇이든 용기가 필요한데 그 에너지를 쓰기가 귀찮았고 거절당하는 건 솔직히 너무 싫었다.


팩트는 나는 인기가 없다가 아니다. 오히려 '나는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과 약속을 만들고 뭘 하자고 제안하는데 어려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주말에는 사람을 만나야겠다는 의지도 예전에 비해 많이 약해졌다. 주말은 충전하는 시간으로 혼자서 보내겠다는 선택을 많이 했다. 그런 선택을 한 것은 나인데도 오늘은 '왜 아무도 내게 연락을 안 하지?'로 시작해 '내가 인기가 없구나.'의 우스운 결론을 지어냈다.


이 생각이 가짜라는 것을 알게 되면 빠져나올 수 있다


그런데 다른 이유도 있다.


또 다른 팩트도 있다. 예전에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어야 내가 좀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꼈다. 주말마다 스케줄이 꽉 찬 사람을 동경했고 사회생활은 모름지기 그런 것이라며 바쁜 사람을 성공한 사람이라 여겼다. 그래서 꼭 만나야 하는 사람을 만나기보다 나를 증명하기 위한 모임을 많이 가졌다.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다가 집에 돌아오면 그렇게 허전할 수 없었다.


그런데 요즘 나는 혼자 지내도 예전처럼 마음이 허전하진 않다. 누굴 만날 약속이 없어서이지 세워놓은 계획도 있고 할 일도 많다. 또 시간이 많을수록 나의 글쓰기 작업량이 늘어나기 때문에 장기적인 맥락에선 지금 시간적인 여유가 있는 것이 축복이다. 나한테 투자를 할 수 있다는 건 늘 감사한 일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의식적으로 나는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나 자신에게 시비를 건다. 내가 긍정적인 태도와 마음가짐에 집중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부정적인 생각으로 향하는 수법은 정교해진다. 이 모든 것을 다 내가 만들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고치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오늘은 엉터리 가설 하나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고 그 습관 때문에 글 한 편을 쓸 수 있으니 참 다행이다.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우리는 부정으로 혹은 긍정으로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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