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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동안 편의점 앞을 그냥 지나가면 생기는 일

by 김초롱

[습관]


계산을 해보니 지난달 별생각 없이 편의점에서 지출한 돈이 4만 원에서 5만 원 사이이다. 겨울이니까 이 정도지 지난여름에는 생수나 아이스크림, 간단한 요깃거리를 사느라 더 썼을 것이다. 평균 5만 원으로 잡아서 12개월을 썼다면... 편의점에서만 도합 60만 원을 썼을 것 같다.


이렇게 쓰고 보니 편의점에서 무엇을 샀는지 잘 기억도 나질 않는데 지출한 비용이 십만 원 대라는 것에 놀랍다. 참 많이도 썼다.


무엇을 샀을까를 떠올려 보니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새우깡'이다. 퇴근 후에 집에 돌아올 때면 지하철 카드 찍는 개찰구에서 딱 보이는 것이 그 과자다. 그 맛은 어린 시절을 생각나게 한다. 작은 과자 한 봉지를 아껴 먹으며 놀던 행복한 기억이 있다. 그래서인지 나는 그 새우과자를 정말 좋아한다.


그래서 저녁 늦게까지 일을 해서 출출한 상태 거나 보상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면 새우깡을 꼭 한 봉지씩 샀다. 옛날에는 300원이었는데 이제는 그 값이 세 배 이상 올랐다. 그래도 나는 별생각 없이 기쁨을 맛보기 위해 과자를 샀다.


새우깡만 사서 먹으려니 저녁을 거르게 되면 건강에 좋지 않을 거란 생각 들어 삶은 달걀 2개가 패킹된 것을 하나 사고 탄산수를 사다가 결국 컵라면까지 사게 된다. 1+1 이벤트가 있다면 할인 혜택 더 받자는 생각이 들어 여러 가지를 담게 된다.


그런 식으로 집에 도착하기 전에 편의점 장보기를 하는 날이 더러 있었다. 그리고 그게 한 달에 5만 원 정도. 편의점에서 쓰는 돈을 계산해 보기까지 나는 내 지출에 대해 전혀 감이 없었다. 마치 수도꼭지 물 새듯이 개찰구 앞에서 내 돈은 찔끔찔끔 새고 있었다.



[시도]


아무래도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 게 올해 1월이다. 나는 편의점에서 생각 없이 쓰던 지출을 줄이기로 했다. 편의점 자체를 안 가겠다는 것보다 쓸데없는 지출을 줄이기 위해서이다.


누군가는 고작 5만 원 가지고 왜 이리 유난이냐고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나는 내가 계획하지 않은 소비가 60만 원 정도라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커피 한 잔을 사 마셔도 어디로 가서 무엇을 마실지 생각하는 편인데 편의점에서는 그저 그날 기분에 따라 즉흥 소비를 하게 된다는 것이 달랐다.


또 편의점에서 소비를 했던 이유를 살펴보면 허기를 채우기 위해서였는데 그때의 소비로는 허기가 가시지 않았고 오히려 더 부족하게 느껴졌다.


월 5만 원 정도 충만감을 느끼는데 소비를 할 거라면 나는 다른 방법을 찾아보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트에서 싼 재료를 담아 오는 것이 나을 수 있고 어쩌면 꽃 한 송이 살 수 있었다. 그런데 꼭 소비를 해야 무엇인가가 채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인가 허전함이 꼭 위장이 비어서가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주변에 아무도 없어 외롭다는 느낌이 들 때, 인정받지 못했다는 느낌이 들거나 성과가 나질 않아 초조할 때 등의 감정적인 이유로 새우깡을 샀다.


새우깡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습관적이던 편의점 방문 수를 늦출 수 있었다.



[개선]


나는 오늘까지도 개찰구에서 싱긋 웃고 있는 간편식과 간식을 잘 지나치고 있다.


새우깡이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간식에 대한 집착은 회사의 탕비실에서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또 나를 위한 보상을 다른 것으로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허기질 때는 집에서 요리를 해 먹고 피곤하면 일찍 잠에 드는 식으로 다른 방법을 찾고 있다.


다음 편에서 얘기하겠지만 밀가루를 당분간 끊는 것도 도움이 되었다. 밀을 먹지 않겠다고 선언하니 밀로 만들어진 모든 것들이 구매 리스트에서 사라졌다. 머릿속에 계속 생각나는 단 것들도 자취를 많이 감췄다.(*하지만 쌀과자가 등장하긴 했다..)


나를 자극하던 1+1의 할인도 이제는 내 소비에 별 자극을 주지 않는다. 그런 건 마케팅에 불과하다며 나 스스로를 잘 달래고 있다.


편의점을 지나쳐 가면서 오늘까지의 내 지출 목록을 살펴봤다. 편의점 지출이 '0'원이다. 목표를 잘 지키고 있다. 이 목표를 지키고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성취감이 들면서 마음이 충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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