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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초롱 Aug 02. 2023

있어보이고 싶어서

5화

출근을 하자 먼저 와 있던 주임들이 남달라 주임의 책상 옆에 붙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남달라는 어제도 쇼핑을 한 모양이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책상 위에 큰 로고가 박힌 쇼핑백 몇 개가 놓여 있었는데 딱 봐도 알만한 럭셔리 브랜드의 것들이었다. 남달라는 자리에 앉아 그 안에 든 물건들을 하나하나씩 꺼내며 마치 보란 듯이 책상 위에 진열하기 바빴다.


상품들이 책상에 놓이면 다른 직원들이 찾아와 말을 붙였다.


-와, 이거 얼마짜리야?

-구하기 어렵던데 어떻게 샀어?


그때마다 남달라는 그런 반응을 예상하기라도 했듯이 자랑스럽게 대꾸를 했다.


-우리 엄마 지인분이 대기업 사모님인데 그분이랑 같이 가면 이것저것 추천 많이 받거든. 이번에 여기 점장이랑 친해져서 진짜 구하기 어려운 건데 하나 샀잖아.


그렇게 말하며 들떠 보이는 남달라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쇼핑 중독이네'라는 말을 중얼거렸다. 다행히 내 목소리가 작아 주변 사람들을 듣지 못했다. 책상 위에 늘어진 상품들이 마치 백화점 진열장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일 뿐이다. 나를 포함해 사무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은 그 상품들의 수명이 오늘 까지라는 것이니까.

어떻게든 트집을 잡아 백화점에서 사 온 물건을 바로 환불하는 건 남달라가 늘 해오던 버릇이었다.


그녀는 어떤 물건을 정말 원해서 사기보다는 '있어 보이고 싶어서' 샀다. 비싸고 좋은 것을 샀다는 것을 모두에게 알리자마자 그 물건들은 자취를 감췄다. 산 물건은 많았지만 직접 쓴 물건은 없다는 게 참 아이러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화장실 변기에 앉아 밖으로 나갈 타이밍을 기다렸다. 다른 주임들이 한참 동안 남달라 주임에 대해 험담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그 얘기를 중간에 끊기가 좀 그랬다. 물론 남달라 주임의 뒷사정이 궁금한 것도 있었다.


-그 애기 들었어? 남달라 그 백화점 블랙리스트던데?

-어떻게 알았어?

-아니, 내가 그때 자랑한 가방 파는 매장 가서 남달라 얘기했는데 완전 표정이 달라지더라.

-뭐야, 혼자 친한 척 다하더니?

-야. 안 그러고 배겨? 지난번에 그 가방 환불 못 받았다던데.

-헛, 그거 남주임 월급으로 감당될까?


저마다 한 마디씩 보태느라 한참 동안 대화가 끊이질 않았다. 결국 나는 괜한 기침 소리를 내며 인기척을 냈다. 그러자 곧 험담이 멈췄고 사람들이 밖으로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화장실을 나와 다시 사무실로 향하면서 나는 남달라 주임의 자리를 흘겨봤다. 아침부터 남달라는 뭔가에 열중하고 있는 눈치였는데 그리 좋은 표정은 아니었다.


그날 오후, 남달라는 한껏 수척해진 얼굴로 내게 찾아왔다. 잠깐 시간 좀 내달라는 것이었는데 평소에 딱 부러지던 남달라가 삐죽거리는 게 왠지 의아했다. 우리는 평소와 다를 바 없이 회의실에 들어가 앉았다. 남달라는 내 앞에 앉아 한참을 머뭇거리다 끝내 운을 떼었다. 그 목소리가 너무 작고 떨리는 바람에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빙빙 돌려 들리는 그 말의 말미에는 '가불'이라는 단어가 있었다.


"과장님, 가불이 되나요?"


그 말을 듣자마자 화장식에서 들었던 험담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았다. 어느 때와 다르게 위축된 남달라는 손까지 덜덜 떨었다.


"무슨 일인데요?"


"급하게 돈이 필요해서요."


"얼마 나요?"


"가능하다면 한 6개월치, 아니면 한 달치만이라도..."


"월급 나간 지 얼마나 지났다고. 어려울 거 같은데 물어는 볼게요."


남달라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서 먼저 회의실을 나갔다. 그 표정과 분위기가 평소와는 너무 달라 다른 사람 같아 보이기까지 했다.




그날 저녁 나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 물론 술이 없으니 잠이 오지 않아 몇 번씩이나 뒤척였다. 온종일 있었던 일을 복기하는 중간에 남달라가 한 말이 생각나 신경이 쓰였다.


-하, 그냥 안된다고 얘기하고 딱 자를걸. 괜히 알아봐 준다고 했나.


나는 답답한 마음에 옆에 놓아둔 쿠션을 집어 들었다가 침대 밖으로 던졌다. 벌써 시계는 자정을 지나 새벽 두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거의 밤을 새운 것과 다름없는 상태로 아침에 일어나 출근을 하니 메일이 하나 도착해 있었다. 인사팀에서 온 내용이었는데 가불이 어렵다는 답변이었다. 남달라가 메신저를 보더니 회의실로 나를 찾아왔다.


"회사 규정상 가불은 어려울 것 같아요."


"네 알겠습니다."


그녀는 덤덤한 척했지만 곧 눈시울을 붉혔다. 이내 눈물 한 방울이 뚝 떨어졌다. 당황한 나는 옆에 있는 티슈 몇 장을 건넸다. 한참을 말없이 그렇게 앉아있던 남달라가 사정을 말하기 시작했다.


"한 천만 원만 더 있으면 되는데."


"천만 원?"


 "네. 부모님한테도 손 내밀고 친구한테도 다 빌렸는데 딱 천만 원이 모자라요."


"무슨 일 있어요?"


"카드 빚 때문에요."


남달라는 빨개진 눈으로 나는 바라봤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한 마디를 더 했다.


"과장님, 저 천만 원만 빌려주시면 안 될까요? 6개월 안에 갚을게요."


"아휴, 내가 그런 돈이 어딨 다고. 미안해요. 나도 살기가 좀 빡빡해서."


평소 살가운 사이도 아닌 남달라가 돈 얘길 꺼내니 정말 사정이 어렵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돈에 여유가 없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내 적금 통장에도 천만 원이 들어있을까 말까인데. 나는 갑자기 훅 들어온 돈 얘기가 불편했다. 그것을 눈치챘는지 남달라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갑자기 그냥 해본 말이라고 하며 신경 쓰지 말라고 말했다. 나는 어색함을 감추며 괜히 앞에 놓여있던 각티슈를 이리저리 옮기다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의자를 뒤로 밀었다. 그때, 남달라가 내게 묻지도 않은 얘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카드 빚이란 게 무섭더라고요. 맨 처음에는 그냥 친구 따라가서 몇 개 산 것이 전부였어요. 제 친구 중에 날 때부터 부자인 얘가 있거든요. " 그녀는 마치 고해성사라도 하듯이 개인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별 말이 없자 남달라는 이어말했다.


"맨날 아울렛에서 옷 사다가 오랜만에 친구랑 백화점을 가는데 친구 돈 쓰는 스케일 보고 직원들의 태도가 단번에 바뀌더라고요. 그때 딱 느꼈어요."


"뭘 느껴요?"


"글쎄. 좀 있어 보이니까 대우가 다르다는 거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대충 알 것 같았다. 마트를 갈 때와 달리 백화점을 갈 때에는 차려있어야 한다는 엄마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백화점은 보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끼게 하는 장소다. 그곳에 들어서는 순간,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지만 없어 보이면 안 될 것 같은 중압감을 받는다.


"부자 친구랑 같이 다니다 보니 저도 부자가 된 것 같더라고요. 늘 을의 역할로 살다가 처음으로 제가 갑이 된 기분이었어요. 처음에는 언제 또 이런 대접받아보느냐고 시작했는데 어쩌다 보니 월급 받은 것보다 더 많이 사게 된 거예요. 계속 사고는 싶은데 돈은 없고..."


"그래서 환불을 그렇게 한 거예요?"


"네. 근데 그마저도 더는 안될 거 같아요."


남달라는 그런 자신을 자책하면서 또 앞으로의 일에 대해 고민하면서 그간 말하지 않던 사정을 털어놓았다. 나는 그걸 듣다가 가끔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다. 한참 뒤, 남달라는 진정이 되었는지 눈물을 닦아내고 고개를 들어 머쓱하게 웃었다.


"과장님 진짜 이상한 게 뭔지 아세요? 쇼핑은 하기 전이 제일 좋아요. 근데 물건을 딱 사고 나면 후회막심이죠. 제가 왜 그랬을까요?"


"왜 그런 건데요?"


"그냥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싶었어요."


아마 남달라는 그 말을 하면서 자신이 잘 알지도 못하는 백화점 직원, 사무실의 다른 주임들에게까지 잘 보이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비싼 물건을 사서 책상 위에 놓는 그 순간, 직원들이 몰려와 해준 말들이 좋았다고, 그럴 때면 자신이 부자친구가 된 것 같다고 했으니 말이다. 그게 본인을 향한 것이 아닌 돈을 썼다는 행위에 대한 칭찬인 줄 알면서도, 별 의미 없는 의례적인 인사치레인 줄 알면서도 남달라는 그 칭찬이 듣고 싶어 카드를 꺼냈다. 그때만큼 자신이 정말 중요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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