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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초롱 Jul 31. 2023

불평중독

4화

나는 한 칸 넘어 앉아있는 신사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한번 더 물었다. 안조은이 왜 불평만 하는지에 대해서 그 당사자가 아닌 낯선 사람에게 묻고 있는 다소 황당한 상황이었지만 왠지 그 답에 대해서는 신사가 더 정확히 알려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안조은은 왜 맨날 불평불만일까요? 무슨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매번! 대체 왜 그럴까요?"


"그 사람은 불평하는데 중독되어 있나 보죠."


불평 중독? 나는 그 단어를 나지막하게 곱씹었다.


"안조은은 자신이 불평하고 있다는 걸 모르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요. 원래 중독된 사람들이 쉽게 자신의 상태를 부정하듯이요."


"흠…“


"불평 중독은 자신이 피해를 입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시작돼요."


나는 신사와 대화를 하면서 다시 한번 안조은과의 지난 회의를 떠올렸다. 그녀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었다. '왜 저한테만'으로 시작하는 문장이었다. 화가 날 때마다 '또 저요?'라든가 '제가 왜요?'. "왜 저한테만 이러세요.' 식의 연속된 말들이 등장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만큼 그 말들의 임기응변은 다양했는데 어느 날은 '왜 저한테 이걸 시키세요'가 또 다른 날에는 '왜 저만 빼시는 거예요'로 달라졌다. 매번 그런 식으로 꼬투리를 잡는 그녀의 불평 때문에 회사 내부에서는 무슨 일을 하든 안조은과 일하면 지친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제는 그 불평의 강도가 점점 심해져 그 누구도 견디기가 힘든 상황에 이르렀다.


"불평만 하는 사람들이 회사에 계속 있으면 아마 주변 사람들도 영향을 받을 거예요. 보이지 않은 것들의 영향력이 더 클 때가 있거든요. 안조은과 일 할 때 어떤 느낌이었는지 기억해요?"


"신경질이 확 나죠."


속이 답답하고 꽉 막힌 것 같든 그 기분. 맥이 빠지고 피곤하면서 안조은이 뿜어낸 화가 전달되어 나조차 덩달아 화가 뻗치는 기분이 들었다. 안조은이 입을 떼는 것을 상상만 해도 벌써 머리가 아팠다.


"그게 당연해요. 부정적인 기운은 사람들에게 쉽게 전파돼요. 보이지 않지만 느끼기 쉽죠."


나는 신사의 말에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불평은 전염된다. 그건 향수가 퍼지는 것처럼 순식간에 공기 중에 퍼진다. 아무리 구석에 살짝 뿌렸다 한 들 몇 초가 지나면 모두가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전파력이 뛰어나다. 안조은의 불평 또한 그랬다.


"그렇다고 뭐라고 하기에도 참."


신사는 이 상황을 모르니까 그렇게 대답할 수 있을지 모른다. 저 사람 안 겪어 봤으니 모르지, 나는 속으로 생각하며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생각을 떠올렸다. 그러자 갑자기 모든 것이 지겨워졌다. 날마다 끊이지 않는 불평을 또 참고 살아야 한다니 속이 콱 막히는 것 같았다.


"왜 바뀔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저는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고 싶지 않아요. 평생 같이 일할 것도 아니고."


"그럼 앞으로도 계속 지금처럼 참으면서 지낼 건가요? 아까 제가 말했죠? 사람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고. 벌써 당신도 안대리의 영향을 받은 거 같네요."


그 말에 나는 버럭 했다. 순간적인 일이었다. 안조은과 나는 다르다는 생각에서 이기도 했지만 신사의 계속되는 말이 마치 내 심장 정곡을 찌르는 것 같아서였다. 이어지는 팩트 폭격에 궁지에 몰려 그게 아니라고 소리쳤다.


"뭘 안다고 그러세요! 그럼 저더러 어떻게 하라고요•


"더 중요한 게 뭔지 생각해 봐요. 그리고 그걸 행동에 옮겨요."


그러고 보니 신사와의 대화는 어느덧 결론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중요한 일을 하기 위해서는 모두에게 사랑받겠다는 생각을 버리는 것,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빨리 하라는 것. 이 두 가지였다. 나는 살짝 고래를 떨궜다. 질끈 묶인 운동화 끈이 보였다. 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지만 웬일인지 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벤치에 남아 신사와 대화를 이어나가고 싶은 듯했다.


"저는 아직도 이해가 잘 안 돼요. 그러니까...안조은 대리도 처음에는 안 그랬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회의할 때마다 우리 둘이 서로 어깨를 부여잡고 가시덤불을 데굴데굴 구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불평이라는 것이 원래 점점 더 강도가 세어져요. 불평은 자신에게 무엇인가 합당하지 못한 일이 생겼다는 생각으로 시작되죠. 쉽게 말하면 피해자 마인드라고 표현할 수 있겠네요. 자신이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모든 것이 다 불리하게 느껴지니까요."


"안조은이 스스로 피해자라고 느낀단 말인가요?"


"네. 그리고 그런 생각 때문에 가장 힘든 사람은 바로 안조은일거에요."


나는 그 말에 피식 웃고야 말았다. 가장 힘든 사람이 안조은이라니. 그 사람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이 수두룩 빽빽한데 말이다.


"피해자는 저예요. 안조은과 회의하면서 제정신적 피해가 만만찮거든요."


농담으로 한다는 게 비아냥으로 바뀌어 나왔다. 나는 혹시라도 그의 심기를 건드리게 된 게 아닐까 눈치를 봤지만 그는 내 말에 큰 반응이 없었다. 오히려 이전보다 더 진지한 목소리였다.


"손해를 보고 있다는 생각에 빠지면 쉽게 헤어 나오지 못해요. 그런 생각이 오히려 자신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는 것을 모른 채 말이죠. 피해의식 때문에 불평거리가 생기고 불평이 계속될수록 이상하리만큼 더 불평할 일들이 생기죠. 그렇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몰라요."


하지만 나는 당장 뭘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해 여전히 답을 찾지 못했다. 그의 말이 맞는 것 같으면서도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들렸다. 다 믿고 싶다가도 한편으로는 이 모든 애기를 도를 믿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하는 허튼소리처럼 여기고 싶었다. 그런 내 마음을 알리가 없는 신사는 확신에 찬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불평을 하는 사람들을 대하는 최선의 자세는 일단 그 불평에 휩쓸리지 않는 거예요."


"그걸 누가 몰라요."


그는 내 말을 듣고서는 가볍게 웃었다.


"불평에 휩쓰리지 않으려면 안조은에게 그간 못했던 말을 하는 게 먼저겠네요. 그만 좀 하라는 말."


"하..."


"그 얘길 하기 쉽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회사 일을 잘 해결하기 위해서 꼭 해야 할 말이기도 해요."


"그러다가 안조은과 싸움이라도 나면요?"


"사이가 틀어지는 건 당연해요. 지금도 서로 말만 하지 않을 뿐이지 불편한 상태이고요. "


"그런 상상만으로도 토할 것 같아요."


"계속 피하지 말아요. 해야 할 말은 하고 그다음 일에 집중해요. 과장님."


"어머, 제가 과장인 걸 어떻게 아셨어요?"


그는 지난번 정류장에서 목에 걸린 내 사원증을 봤다고 말했다. 그리고선 시계를 한 번 바라보더니 때가 되었다는 듯이 일어나 인사를 건넸다. 나는 반대편으로 신사가 사라지는 것을 유유히 바라보며 그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벤치에 앉아있었다. 머리를 한 대 쿵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신사가 한 말은 되새길수록 맞는 말이었다.


그가 말한 것처럼 나는 정신줄 놓는 것에 이어 가식적인 태도에 중독되어 가고 있었고 날마다 불평을 하는 안조은을 닮아가고 있기까지 했다. 신사의 말처럼 그저 방관하며 스스로 피해를 입고 있다고 생각해 이르렀다. 나는 그런 나 자신을 바로 잡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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