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초롱 Aug 07. 2023

처음으로 해 본 싫은 소리

7화

신사가 가고 나서 나는 평소보다 일찍 출근을 했다. 다른 때보다 결연한 의지로 안조은의 자리를 살폈다.  오늘은 꼭 그간 참아왔던 안조은의 태도에 일침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막상 그녀의 얼굴을 보니 또다시 '그냥 냅둬' 하는 속엣말이 쑥 올라왔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머릿속으로 몇 번 시뮬레이션을 반복해 보기도 하고 나름의 근거를 들어 논리적으로 안조은을 상대해 보려고 고민했지만 결국 오전 내내 머리만 싸매고 있었을 뿐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다.


사건이 일어난 것은 오후 1시쯤이었다. 나는 안조은이 여느 때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책상에 앉아 커피를 홀짝이고 있는 것을 보고선 지금이 그때인 것 같아 메시지를 보냈다.


-안조은 대리, 지난번 애기한 프로젝트 진척 상황 보고 해 주세요.


그 메시지를 읽었는지 안조은은 커피잔을 내려놓고 살짝 입술을 삐죽이더니 알겠다는 대답을 해왔다. 무엇인가 다급하게 타이핑을 하고선 손톱을 깨물었다. 메시지를 보낸지 한참 지나고 나서도 별다른 얘기가 없자 나는 다시금 물었다.


"안대리, 언제 되나요?"

"잠시만요. 지금 보낼게요."


메신저로 도착한 문서를 열어봤지만 지난번 회의 때 정한 내용만 겨우 정리되어 있을 뿐 진척상황이라고는 없었다. 그동안 뭘 했을까 싶을 정도였다. 나는 의자를 뒤로 밀고 벌떡 일어서 안조은을 회의실로 불렀다. 티 안 내려고 했지만 나의 분노는 목소리에서도 묻어 나왔다. 몇몇이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나를 힐끗거렸지만 그걸 신경 쓸 세가 없었다.


우리 둘은 책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며 앉았다. 안조은은 불평의 신호탄이라도 날리기 위해 스스로 가열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오늘은 나 역시 평소와 달랐다. 중요한 일을 하기 위해서 안조은에게 쓴소리를 하겠다고 마음먹었으니까.


"지난번 회의 이후로 진전된 것이 없네요."


"과장님, 지난번 얘기했던 것처럼 저는 아직도 이 일을 왜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것도 제가 지난번에 얘기한 것으로 아는데요."


"기억 안 나세요? 그러다가 결국 과장님이 다 하시겠다고 하고는 박차고 가셨잖아요."


나는 안조은의 뻔뻔한 태도에 울분이 치솟았다. 평소 말 빠르기로 하면 래퍼 저리 가라 수준의 안조은을 말로는 이길 재간이 없었다. 그렇다고 지금 시대에 상사에 대한 무조건적인 수긍과 복종을 기대했다가는 그 소문이 다른 주임들에게까지 퍼져 오히려 사무실 분위기를 어지럽힐 가능성이 있었다. 아니,그것보다는 불편한 분위기와 갈등이 싫었다.


어차피 안조은과 말이 안 통하니 다른 사람과 일하겠다고 넘어가면 그만인데 그냥 내버려두자, 괜히 내 속만 끓이지 말자, 더러워서 피하는 거다 등의 내적 핑계가 불과 1초 만에 몇 개씩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때 신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안조은과의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조언이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신사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나는 안조은의 눈을 또렷하게 응시했다. 그리고 그녀가 내민 보고서를 덮고 나서 그녀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말했다.


"안 대리, 원하는 게 뭐예요?"


예상 밖의 질문에 안조은은 당황한 기색이었다. 그녀는 이런 질문을 받는 것 자체가 불쾌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금세 그녀의 피부색이 붉게 달아올랐다.


"안대리는 해보지도 않고 안 된다고만 해요?"


그러자 안대리는 적반하장 식으로 나를 향해 쏘아붙였다.


"과장님, 언제부터 제가 하는 일에 관심가지셨다고 원하는 게 뭐냐는 둥 얘길 하세요? 팀 만 같았을 뿐이지 한 번이라도 저 챙겨주신 적 있으세요? 맨날 해봤자 별로 득 될 것 없는 일만 저한테 넘기시고는. 그러는 과장님이 원하시는 건 뭔데요?"


언성이 높아진 안조은이 그간의 불평을 토로했고 나는 그 말들에 입을 닫았다. 하지만 또다시 피할 수는 없었다.


"그만 얘기해요. 앞으로는 내 앞에서 이런 불평도 그만했으면 좋겠어요. 우리 모두에게 득 될 것이 없어요."그 불평을 끊어내고서 나는 다시 그녀의 눈을 응시했다.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분노가 짙게 서려 계속 바라보기가 힘들었지만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안대리가 지금껏 그렇게 느껴왔다면 미안하지만 어쨌든 여기는 회사예요. 그 일이 득이 되는지 아닌지는 해봐야 알 수 있고요. 그런데 안대리는 일을 하기도 전에 그런 불평을 늘어놓으니 문제예요. 그러니까 이제 좀 그만해요."


"제 말이 맞다는 생각은 안 해보셨어요?"


안조은이 눈에 쌍심지를 켜고 또다시 하소연을 시작하려고 하자 내가 먼저 나서서 막았다.


"안 대리, 이거 다시 정리해 와요."


책상 위에 널브러지듯이 놓여있는 파일을 다시 주워 안대리에게 건넸다. 날카롭게 치닫던 대화는 끝이 났지만 왠일인지 안조은은 미동 없이 앉아있었다. 무슨 말이 더 하고 싶은 것일까 싶었지만 그 내용이 궁금하지는 않았다. 나는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이제 그만 나가서 일 보라는 말을 남겼다.


사무실로 돌아와 다시 자리에 앉았을 때, 메신저가 울렸다. 남달라 주임이 보낸 메시지였다.


-과장님, 오늘 안대리한테 얘기하신 거 보고 깜짝 놀람요. 다들 난리남요.


그러고 보니 사무실의 모두가 나와 안조은의 접전을 마치 길거리 싸움 구경하듯 지켜보고 있었다. 조용한 사무실에서 타이핑 소리만 흘러나왔는데 그게 문서 작성을 하는 소리인지 아니면 서로 메신저를 주고받는 소리인지 확실하진 않았다. 하지만 남달라 주임이 나에게 보낸 것으로 봐선 아마 모두 후자 쪽에 가까운 게 아닐까 싶었다.


한참 뒤에 안조은이 회의실을 나와 자리에 앉았다. 침울해 보이긴 했지만 평소처럼 불평에 휩싸여 일을 놓고 있지는 않았다. 어떤 면에서는 다행이었다.


이전 06화 텅 빈 마음 채우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