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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초롱 Aug 12. 2023

퇴사의 이유

8화

나중에서야 알게 된 얘기지만 내가 안조은 대리와 썰전을 벌이고 있을 때, 남달라 주임과 한가혜 주임이 탕비실에서 비밀스러운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거기에는 회사에 대한 욕과 다른 직원들에 험담도 있었지만 그중 하이라이트는 다름 아닌 한가혜 주임의 퇴사 소식이었다고 했다.


사실 두 사람은 이전까지만 해도 그리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한 주임이 먼저 자신이 떠날 거라고 말하기 전까지는 둘의 대화는 예의상 하는 겉치레에 불과했었다. 나와 안조은이 한참 동안 회의실에 나오지 않자 둘은 탕비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잠깐 휴식을 취했다.


우리 회사 탕비실로 말할 것 같으면 낡은 가죽 살이 부드러운 정도를 지나 금방이라도 찢어질 듯한 소파가 있고 그 옆에 작은 냉장고, 정수기가 있는 게 다였다. 정수기 옆에는 비스킷과 믹스 커피 몇 개가 남아있었는데 그날도 어김없이 한가혜가 그 믹스커피 두 개를 타서 마시고는 남아있는 믹스커피를 한주먹을 챙겨 호주머니에 넣었다. 남달라는 그 모습을 보며 자신과 다른 부류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둘은 입사 동기라는 점을 빼고 달랐다. 외모와 말투, 취향과 선호하는 점심 메뉴도 달랐으니 알고 지낸 지는 오래였지만 밥 한번 제대로 함께 먹은 적 없었다. 남달라가 쇼핑 중독이라고 하면 한가혜는 소확횡 중독이라 불렸다. 사무실 비품이나 탕비실의 믹스커피가 다른 사무실보다 빨리 사라지는 것이 한가혜 때문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만큼 한가혜는 소소하고 확실한 횡령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한가혜가 핸드폰을 열어 남달라에게 자랑하는 듯이 내밀었다. 항공권 티켓이었다.


"어디 여행 가요?"

"네. 쿠바요."


남달라는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서 '엥?' 하는 소리로 반응했다. 그러자 한가혜가 목소리를 낮추고서는 남달라만 알고 있으라는 듯 속삭였다.


"비밀이에요. 저 회사 때려치고 쿠바 가려고요."


"엥? 갑자기? 그리고 무슨 쿠바요?"


"그냥 가보고 싶어서요…저도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좀 고민해 보려고요. 요즘 이게 제가 원했던 삶이 맞나 싶어서 제 인생을 찾으려고요."


한가혜는 도로 핸드폰을 집어넣으며 의기양양한 태도로 자신이 얼마나 고민을 하며 한 결정인지를 설명했다. 대학 졸업하고 얼떨결에 취업을 해서 회사생활을 시작했는데 퇴근 후 밀려오는 생각은 늘 '이게 아닌데'였다고 한다. 회사 밖으로 나가면 새로운 기회도 생길 것 같고 여행을 하며 무슨 일을 할 것인지 생각해 보면 되니까 이 참에 장기 여행을 하겠다는 애기도 했다.


남달라는 그런 한가혜의 말에 동조하는 듯 호응했지만 동시에 복합적인 감정이 들어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부러워 죽겠는 마음과 한가혜의 말에 빈정대고 싶은 욕구로 뱃속이 뒤틀리는 느낌이었다. 영문을 모르는 한가혜는 순진한 표정으로 남달라에게 물었다.


"남 주임님은 언제까지 회사 다니실 거예요?"


그 질문 때문에 남달라는 자신도 모르게 표정이 굳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회사를 다니는 이유는 돈 때문이었다. 쇼핑 때문에 생긴 빚을 다 갚으려면 적어도 일 년 이상을 꼬박 다녀야 했다. 이를 알턱이 없는 한가혜는 어리숙한 표정을 지으며 앞에 앉은 남달라의 대답을 기다렸다.


"어렵게 들어왔으니까 잘 다녀야죠."


그 대답이 한가혜가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대화를 마무리 짓기에 더할 나위 없는 답변이긴 했다. 한가혜는 이해한다는 듯이 웃어 보이며 자신도 회사 다니는 것에 만족했더라면 남달라처럼 말했을 거라고, 동시에 조만간 다른 사람들에게도 퇴사 의사를 밝힐 예정이니 그전까지 모든 일을 비밀로 해달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비밀스러운 얘기는 몇 시간 만에 내게 들어왔다. 남달라가 술에 취해서 메신저를 보내왔기 때문이다. 내가 어디서 술 마시고 있을 거라 짐작한 남달라가 보낸 '같이 한 잔 하실래요'가 담긴 내용이었다. 평소 같으면 그 말에 '콜'하고 답변했을 테지만 안조은과 썰전을 한 뒤에 기운이 쏙 빠진 나는 내 방 침대 위에서 그 문자를 보고 있었다.


-과장님, 그거 아세요? 한가혜가 쿠바 간대요.

-갑자기?

-대박, 그쵸. 근데 이유가 웃겨요. 자아실현이라나 뭐라나


내가 미처 답변을 쓰기 전에 남달라가 연달아 메시지를 보내왔다.


-뭔 유튜버인줄, 좀도둑 한가혜가? ㅋㅋㅋㅋ

-근데 한가혜처럼 하는 게 맞을까요? 한가혜가 저한테 언제까지 회사 다닐 거냐던데.

-과장님은 언제까지 다니실 거예요?


세 통의 메시지가 연달아 온 뒤 나는 답변을 쓰는 것을 멈췄다. 지금 무엇을 써도 남달라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을 내용이었다. 직장 상사에게 이렇게 술 취해 문자를 보내는 남주임이 정말 남다르게 느껴지면서 동시에 얼마나 답답하면 이럴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곧이어 연달아 온 메신저 내용이 삭제처리 되었다. 아마 남달라가 내일을 위해 그렇게 한 것 같았다. 나는 내일 본 것을 못 본 척하고 별 내색 안 하며 지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몇일 후, 한가혜가 사직서를 냈다. 설마했던 남달라의 말이 진짜였다. 불평중독 안조은이나 쇼핑 때문에 빚더미에 앉은 남달라라면 퇴사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고만고만하게 회사 잘 다니던 한가혜가 사직서를 내다니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한가혜는 사직서를 책상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놓고서는 오래전부터 생각했던 일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늦기 전에 제가 원하는 대로 해보려고요."


초조해진 나머지 눈을 깜빡거리는 나와 달리 한가혜는 온화한 표정을 지었다. 그 어느 때보다 한결 편안해 보였다.


"아니... 그래, 마음은 알겠는데 꼭 퇴사까지 해야 하는 거예요?"


"회사 다니면서는 어려울 것 같아서요. 깊이 생각해 봤는데 아무래도 퇴사하고 나서 저만의 시간을 갖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요. 제가 하고 싶은 대로 살다 보면 어떻게 해야 맞는 길인지... 그런 게 느껴지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래서 당장 계획이 뭐예요?"


"아, 일단 집에서 쉬다가 여행 가려고요. 쿠바요."


그 말을 듣자마자 내 입에서는 자동반사처럼 쿠바라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한가혜는 그걸 듣더니 뿌듯하다는 듯이 웃었다. 그 표정 속에는 확신과 순진함이 서려있었고 또 후련함이 언뜻 비쳤다. 벌써 마지막 날이라도 되는 듯이 한가혜는 내게 그동안 감사했다는 말을 했다.


한가혜가 딱히 일을 잘해서도 아니고 아주 오래 합을 맞추고 지낸 직원도 아니지만 우리 팀에는 그녀 같은 존재가 필요했다. 말없이 묵묵하게 자신의 일을 하는 사람, 크게 돋보이려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 어느 것에도 중독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한가혜에게 한번 더 물었다.


"확실한거죠?“


"이미 결정했어요."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나도 예전에 비슷한 의도로 어학연수를 간 적 있거든요. 벌써 10년 전 일이긴 한데 그때 영어를 배우겠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사실 한주임처럼 내가 원하는 게 뭘까 싶어서 간 거였어요."


그 말에 한가혜가 반색하며 물었다.


"과장님은 어디로 가셨어요?"


"아, 아일랜드요. 그때 나도 한 주임처럼 회사 그만두고 떠났어요. 대학 졸업하자마자 회사 들어가서 숨 쉴 틈 없이 살다가 야근하던 날, 내가 뭐 하러 이러고 있지 싶더라고요."


10년 전, 사회 초년생이던 나는 스스로 부족한 게 많다는 생각 때문에 괴로워했다. 내가 더 좋은 대학에 나왔더라면 어땠을까, 어학연수를 다녀와서 영어를 잘했다면 대기업에 취업할 수 있었을까, 차라리 유학을 갔어야 했나, 아니면 성형이라도 해야 할까 등의 아직 결정하지 않은 수만 가지의 선택지 앞에서 그 무엇도 선택하지 못한 채 끙끙 앓았다.


그러다가 처음으로 용기를 낸 것이 어학연수였다. 사표를 쓰고 아일랜드로 떠난 날,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아일랜드에서 어학원 다니고 마지막에는 여행을 했어요. 그런데 막상 한국으로 돌아올 때가 되니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어요. 뭐 하러 여기에 왔지 싶었죠."


"왜 거기 가려고 하셨는데요?"


"그걸 미리 알았으면 좋았으련만. 결국 뭐 하러 여기 왔는지에 대해 대답하지 못했어요. "


그때 책상에 놓인 사직서가 눈에 들어왔다. 괜히 확신에 차 있는 한가혜를 김새게 만들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서 더 하고 싶은 말을 삼켰다. 대신 나는 사직서를 서랍에 넣었다.


"한주임은 가기 전에 목적을 분명히 해요. 원하는 것을 찾겠다는 걸로는 부족할지 모르니까."


"그럼요. 과장님."


한가혜는 이미 자신도 알고 있다는 투로 화답했다. 어쩌면 내가 하는 말의 절반도 다 듣지 않았을지 모른다. 서랍에 넣은 사직서를 다시금 확인하면서 나는 아까 내가 하려던 말을 꺼내봤다.


아일랜드로 간 이유는 모든 것을 피하고 싶어서였다. 나는 도망쳤다. 야근을 피하고 싶었고 같이 일하는 동료들을 떠나고 싶었다. 출신 대학에 따라 편애를 일삼는 상사들을 떠나고 싶었다. 지금 아일랜드 어학연수를 다녀온 것에 후회는 없지만 이후 바뀐 것도 없다.


여전히 도망치고 싶은 날들을 살고 있다. 도망치기 위해서 술을 마시고 평화주의자가 되고 혼자 지냈다. 물론 나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안조은은 도망치기 위해 변명을 하고 인상을 쓴다. 남달라는 도망치기 위해서 물건을 사고 빚을 진다.


하지만 도망의 끝은 결국 제자리다. 만약 다시 10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을 피해서가 아니라 좀 더 구체적인 의도로 거기에 갔더라면 나도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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