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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초롱 Aug 14. 2023

부자가 된 다음에

9화

"김 과장님, 좋은 아침이에요."

"오늘 만나 뵐 줄 몰랐는데 이렇게 만날 수 있어 다행이에요."


새벽 5시, 나는 또다시 버스 정류장을 찾았다. 오늘은 꼭 신사에게 할 말이 있었다. 그간 고민해 왔던 안조은과의 관계에 한 발자국 발을 뗀 것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


"저 그때 말했던 안조은 대리에게 몇 마디 했어요. 속이 시원하더라고요."


"잘됐네요."


"처음에는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싶었는데 그 상황이 닥치니 그간 하고 싶은 얘기를 하게 되었어요. 근데 안조은이 불같이 화를 냈어요. 예상했지만."


"그럼 이제 고민 하나가 해결되었네요."


"네... 아니요. 근데 뭔가 찜찜해요."


이상하리만큼 마음 한 구석이 석연치 않았다. 안조은이 했던 한 문장이 자꾸 거슬렸다.


"안조은이 말하기를 그러는 과장님은 원하는 게 뭐냐고 묻더라고요. 물론 제가 먼저 비슷한 질문을 한 것도 있는데. 그 질문이 자꾸 기억에 남아요."


"왜 그럴까요?"


신사의 이어지는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 그걸 알고 있었더라면 굳이 신사를 만나러 올 필요가 없었다.


"저도 모르죠."


"그 질문에 대답을 못했죠?"


"그런 뜬구름 잡는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순간 빈정거리는 말투가 새어 나왔다. 신사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나는 이 상황을 모면하려고 다시 정리해 말하기 시작했다.


"실은 오늘 하루 종일 그 질문에 대해 생각해 봤는데 정말 모르겠어요. 분명 제 입에서 먼저 나온 질문이었는데도요."


"제 생각에는 그 질문에 제대로 답변하면 찜찜함이 사라질 것 같은데요."


신사의 간단한 대답에 나는 어이없어 웃었다. 어느덧 동이 터 하늘이 밝아졌다. 그러자 신사의 얼굴이 환하게 드러났다.


"그래서 김 과장이 원하는 게 뭔데요?"


"잘 모르겠어요. 우리 팀 막내 주임이 최근에 퇴사를 하면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찾겠다고 했어요. 저도 그래야 할까 봐요."


심각한 나와 달리 신사는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


"김 과장님, 자신이 원하는 건 보물찾기 하듯이 찾는 게 아니에요. 회사 밖에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럼 뭐예요?"


"그거야 과장님이 원하는 것이니까 과장님이 제일 잘 알겠죠. 밖에서 발견하는 게 아니에요. 내 마음속에 있는 것 중에서 선택하는 거지."


그 말을 들은 나는 머리가 띵 했다. 온종일 머릿속을 떠나니던 그 질문의 답은, 내가 아닌 다른 곳에 있어서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돌아보니 신사의 말처럼 자신이 원하는 게 다른 곳에 있을 리 없었다. 신사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나를 바라봤다.


"김 과장님은 회사를 관둔 어느 날, 낯선 도시로 여행을 가서 마치 영감을 얻는 것처럼 번쩍 하고 계시를 받을 거라고 상상했겠죠. 모두가 그렇듯이 그런 드라마틱한 장면을 원했을지 몰라요. 하지만 김 과장님이 원하는 건 그저 눈감고 숨 한번 들어마시고 내쉬는 것으로 알 수 있어요."


그러면서 그는 내게 한 번이라도 자신이 원하는 것에 대해 깊이 알아보려고 한 적이 있는지 물었다. 나는 고민 끝에 가장 쉬운 대답을 선택했다.


"제가 원하는 건 돈 많이 벌어서 잘 사는 거예요."


일단 집을 사면 좋겠고 기왕이면 신사가 타는 고급 승용차도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통장에 여유자금이 넉넉했으면 했고 메뉴판에 적힌 금액을 보지 않고 음식을 주문하고 싶었다. 가끔 후임들에게 커피 한 잔씩을 쏠 수 있는 두둑한 지갑을 가진 상사이고 싶었다.


내 나름대로는 솔직한 답이었지만 그 말을 하면서 쑥스러웠다. 나의 지극한 속물근성을 신사는 뭐라고 생각할까.


"돈 중요하죠. 그런데 그걸 다 산 다음에 뭐 하게요?"


"할 거 많죠…“


이어서 몇 가지를 더 말했지만 말을 다 이어가진 못했다. 나는 헛기침을 두어 번 했다. 그때를 놓칠세라 신사는 다시금 물었다.


"지금 부자라면 뭘 하고 싶으세요?"


그 질문에 다시 복잡해졌다. 이미 집도 있고 차가 있다면 그다음에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을까. 더 큰 집과 더 좋은 차? 그게 아니라면?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싸한 답변이 떠오르지 않았다.


"모두가 돈을 많이 벌기 원해요. 그런데 정작 돈이 많아진 다음을 생각하는 사람은 없죠. 그게 돈을 버는 목적인데도 불구하고요. 김 과장님이 생각해야 할 것은 돈을 넘어서는 목표예요. 그게 진짜 우리가 원하는 것일 가능성이 크죠."


당장 카드값을 걱정해야 할 판국에 돈을 넘어서는 목표를 생각하라니, 나는 또다시 빈정대고 싶었다. 이미 다 가진 신사의 말을 어느 시점부터 공감하지 못한 것도 있었다. 아마 신사가 비슷한 얘기로 계속 대화를 이어갔다면 회사에서 했던 습관처럼 나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듣고 있는 체했을 것이다.

"기대한 대답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사실이에요."


그는 말을 마치고선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재킷 안 쪽에서 색이 거의 바랜 손바닥 크기만 한 카드를 건넸다. 흡사 포커카드처럼 보였지만 그런 용도는 아니었다. 모서리 끝이 마모되어 둥그스름 해졌고 손 때가 많이 묻어 만지기만 해도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는 듯했다. 오래된 물건이었지만 주인이 어찌나 관리했는지 그 카드는 방금 다림질을 한 듯 구김 없이 빳빳했다.


카드 중간에는 'Passion(열정)'이라는 단어가 쓰여 있었다.


"무슨 일을 할 때 기운이 나질 않는다면 이 카드를 바라봐요." 그러면서 신사는 "저 역시 김 과장님과 같은 시절이 있었어요. 그때 이 카드가 저에게 많은 힘이 되어줬죠."라고 했다.


"일종의 부적인 셈이네요. 그런데 이걸 왜 저한테?" 내가 그것을 다시 돌려주려고 하자 신사가 다시 카드를 내 쪽으로 건네며 받으라고 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모를 때에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일단 내 앞에 있는 일을 하는 것이에요. 지금 하고 있는 회사 일부터 열정을 갖고 해 봐요. "


"어떻게요?"


"마음가짐에 따라 결과는 달라져요.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라 정말 이 일로 회사에 좋은 성과가 생기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해보라고요. 지금과는 다른 일들이 벌어질 테니까."


갑자기 무엇인가 달라질 것 같은 느낌이 든 것은 왜일까. 이상한 카드와 신사의 확신. 마치 어떤 비밀병기를 얻은 것처럼 든든함이 느껴졌다.


"김 과장님이 열정의 단계를 넘어서면 그다음에 기다리는 카드가 있을 거예요. 다른 번에는 제가 그 카드를 드릴 수 있으면 좋겠네요." 그러면서 그는 내게 자신의 명함을 건넸다. 그는 한 투자회사의 대표였다. ‘썬샤인 투자회사 대표 손태양.‘


명함을 바라보는 나를 뒤로 하고 그는 다음번에 달라진 이야기를 들고 오라고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마중을 나온 차를 타고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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