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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초롱 Sep 27. 2023

말레이시아 게스트의 굉장히 사적인 부탁

기도해도 될까요?

베트남 호찌민에서 홀로 여행하면서 수건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탄‘의 집에 머물렀다. 탄은 자신의 숙소를 게스트 하우스라고 했지만 막상 가보니 가정집 2층을 도미토리로 꾸려놓은 장소로, 2층의 방 두 개에 이층 침대가 꽉 차 들어가 있는 구조였다. 혼성 도미토리였지만, 비수기에 베트남을 방문했기 때문인지 먼저 와 있는 게스트는 없었다. 그래서 하루 온종일 나 혼자 방 한 개, 침대 네 칸을 점령하면서 여유롭게 지내고 있었다.


하루가 지나고 탄이 내게 새로운 게스트가 들어올 것이라고 일러주며 여자 1명 남자 2명이 방을 함께 쓰게 될 거라고 말했다. 사실 예전에도 혼성 도미토리를 쓴 적이 많았고 앞으로도 거부감이 별로 없기에 나는 괜찮다고 했다. 오히려 함께 방을 쓸 새로운 여행자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궁금했다.


저녁 9시가 가까이 되어서야 방을 같이 쓰게 될 룸메이트들이 들어왔다. 두 명의 남자는 굉장히 수줍게 인사를 걸어왔다. 그 뒤에는 히잡을 쓴 앳된 여자가 나를 보자마자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셋은 말레이시아 사람으로 가족여행을 왔다고 했다. 그들은 나보다 더 오랫동안 게스트 하우스에 머무를 예정이었다.


먼저 숙소에 적응했고 또 숙소 주변에 여러 장소를 미리 탐험했던 나는, 그들과 어울려 어느 곳을 가면 좋고 무엇을 하면 될지 의견을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혼자 여행하면서 대화할 일이 거의 없다가 사람들을 마주하고 오랜만에 손짓발짓 해가며 영어를 쓰니 들뜬 기분이 들었다. 당시에 말레이시아를 가본 적이 없었던 터라, 말레이시아는 여행하기 좋은지 또 음식은 어떤 것을 먹는지, 날씨는 어떤지 다양한 주제로 얘기를 나눴다.


그러다가 말레이시아 여자 게스트가 내게 공손한 어투로 한 가지를 부탁한다고 했다.


“혹시 함께 지내면서 기도를 해도 될까요? “


나는 별 걸 다 물어본다고 생각하며 “당연하지!”라고 대답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생각보다 기도할 일이 제법 생긴다.

‘제발 기차를 놓치지 않게 해 주세요.’

‘배가 안 아프게 해 주세요.‘

‘돈을 잃어버리지 않게 해 주세요.’

‘무사히 집에만 갈 수 있게 해 주세요’ 등등.


그때 당시에 나는 말레이시아 게스트가 말하는 기도가 이런 유형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 채 고맙다고 대답하는 말레이시아 게스트들을 앞에 두고

‘언제든지 너네가 원한다면 기도해. 나도 그러니까.’라고 대답했으니까.



호찌민 게스트하우스에 울려 퍼지는

내 인생 첫 아잔 


갑자기 새벽 한 밤 중에 게스트 하우스에 인기척이 들렸다. 함께 방을 쓰는 말레이시아 가족이 부산스럽게 채비를 하는 소리였다. 새벽에 시작하는 투어 프로그램을 신청한 게 아닐까 추측하며 다시 잠을 청했지만 그 순간, 아주 큰 노랫가락이 들렸고 두 남자가  침대 아래로 내려와 조심스레 큰 비치타월 같은 천을 깔더니 바닥에 엎드렸다.


그들의 기도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노랫가락은 이슬람 기도문인 아잔이었다.


그  당시에만 해도 아잔이 무엇인지, 이슬람이 어떤 종교인지 구체적으로 경험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깜짝 놀랐다. 이불속에서 웅크리며 그들이 기도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아잔은 방이 떠나갈 정도로 크게 울렸고 그런 기도를 처음 접한 나로서는, 셋이 바닥에 엎드려 있는 상황에 계속 누워 잠을 자는 것이 나을지 아니면 방을 빠져나와야 할지 고민에 휩싸였다. 결국 세 사람의 경건한 시간을 방해하지 않으려 이불을 뒤집어쓰고 아잔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셋은 기도를 마치고 다시 아무렇지 않은 듯이 각자의 침대로 올라갔다. 아마 그들은 바로 잠들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상황이 너무 낯설고 당황스럽던 나는 쉽사리 잠들지 못했다. ‘기도 해도 될까?‘가 바로 이 아잔을 말하는 것이라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그다음 날에도 그들은 새벽에 기도를 했다. 첫 번째는 당황스러웠다면 두 번째는 괜찮았다. 어제 다른 방에서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 아니면 호스트 탄이 한 소릴 했는지 모르겠지만, 방 안에 쩌렁쩌렁 울려 퍼지던 아잔의 볼륨이 줄었다. 소리가 작아지자 알람 소리 같던 아잔이 자장가처럼 느껴졌다. 두 남자 게스트는 침대 아래로 내려왔고 여자 게스트는 침대 위에서 몸을 웅크리면서 기도했다. 나는 덮고 있던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리고 돌아누웠다.


그러다가 무슨 생각인지 나도 그들처럼 침대 위에 엎드렸다. 나 역시 혼자 여행하면서 할 기도가 많았다. 그래서 나도 두 손을 공손히 모아 기도를 청했다. 물론 나는 크리스천이기 때문에 아잔이 들리는 공간에서 성부와 성자, 성령의 이름을 불렀다. 옆에 엎드린 게스트들이 내 모습을 볼까 싶었는데 그렇다고 해도 뭐 어쩌랴. 종교를 선택하는 것은 자유다.


그렇게 동이 트지도 않은 새벽, 탄의 게스트 하우스에서는 아잔에 맞춰 기도하는 네 명이 이방인이 머물렀다. 아마 탄은 이런 에피소드를 모를 테지. 탄이야 말로  이슬람도, 크리스천도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탄이 꾸민 한 게스트 하우스에서 다른 나라에서 온 여행자들은 함께 기도했고 아마 좋은 꿈을 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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