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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초롱 Jun 26. 2023

태국 사람들은 왜 클락션을 울리지 않을까

빵빵! 이 없는 태국의 도로 위

“언니, 느꼈어?”


무슨 말인가 싶었다. 동생은 뭔가가 떠올랐다는 얼굴로 나를 빤히 바라봤다.


“무슨?”


나는 영문을 몰라 말끝을 흐렸다. 너무 뜨거운 햇빛 때문에 눈조차 제대로 뜨기 힘들었다. 어쩌자고 이렇게 더운 날 태국의 길거리를 걷기로 했는지, 속으로 이건 여행자의 호기라고 생각하며 되는대로 땀을 식히고 있었다.


그런 나를 보며 동생은 뭔가 깨달았다는 투로 말했다.


“우리가 지낸 며칠 동안 빵빵 거리는 차를 한 번도 본 적 없다는 거 말이야. 길거리에서 클락션 소리 들는 적 있어?”


그러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엄청난 교통체증에도, 혹은 갑자기 들어오는 차 때문에 놀랐을 때도 클락션을 누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클락션을 누르지 않는다


이유가 뭘까? 사람들 모두가 운전을 잘해서? 그건 절대 아니다. 여행하는 동안 택시 안에서 놀라는 순간, 위험했던 적도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때마다 택시 기사는 클락션을 누르는 대신 '아이야~'하며 우리나라의 '아이고' 같은 푸념을 뱉거나 입 안에서 작게 '쯧쯧'거릴 뿐이었다.


태국에서는 답답한 마음에 문 열고 옆 사람을 향해 소리를 친다거나 운전 못하는 사람을 싸잡아 김여사로 부르지는 않을 것 같다. 그만큼 도로가 조용하다.


"태국 사람들은 참 잘 참는 모양이야."


내가 이렇게 말하자 태국 드라마에 빠져 한참 동안 태국어를 배웠던 동생은 예상치 못한 대답을 해왔다.

"윤회 때문일걸?"


"그게 뭐야?"


"여기 사람들은 전생에 자신이 했던 업보로 인해 현생이 이렇게 되었다고 생각하거든. 그러니까 전생이 좋은 일을 많이 했으면 현생에서 부자고 전생에 좋은 일 하나 한 것 없고 이기적으로 살았으면 가난하다, 말하자면 그런 거야."


나는 윤회에 대해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게 클락션 소리와 무슨 상관인가 싶어서 한번 더 물었다.


"그래서 그게 클락션이랑 뭔 상관이야?"


"그러니까 좀 받아들이는게 익숙해졌다 이거지. 최대한 사람들에게 해 안 끼치려고 하고 설사 상대가 나한테 불편을 준다고 해도 순리대로 될 거라고 생각한다는거야. 그러니까 애써 화내지 않는거지…그치만 이건 그냥 내 생각이기도 해.“


우리의 대화는 이렇게 맥없이 끝났다. 어쩌면 내가 모르는 태국의 다른 지역에서는 클락션을 빵빵대는 문화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것보다 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 윤회라는 것이 더 궁금해졌다. 크게 불만 없이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삶을 살아간다는 말이 왠지 와닿으면서 말이다.



삶의 목적은 

좋은 일을 많이 해서 

다시 태어나지 않는 것


나는 가끔 그런 상상을 한다. 만약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어떻게 살고 싶은지,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고 싶은지 등등의 질문을 하면서 즐거워한다. 그런데 태국 사람들한테는 이 질문의 답이 정해져 있다.


'다시 태어나지 않는 것'


그 말은 곧, 인생이 고통이기 때문에 더 이상 고통을 겪지 않기 위해서 다시 태어나지 않는 것을 원한다는 것이며 다시 태어나지 않는 것을 축복으로 여긴다는 뜻이다.


이런 생각들이 곧 그들의 일상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는 것 같다. 한창 바쁜 저녁 장사 시간에도 길 모퉁이에 앉아있는 홈리스에게 음식을 가져다주고, 아무리 비싼 음식점에도 승려들을 위한 봉양이 멈추지 않는 것을 보이니 말이다.


잘 풀리고 부자 된 까닭은 좋은 일을 많이 했기 때문에, 반대로 가난하고 어렵다는 것은 업보가 많기 때문이라고 받아들이는 삶 속에서 태국 사람들은 여행자인 내게도 다른 나라와는 유독 다른 친절함을 보여줬다.


호스텔 아주머니는 애써 김치 반찬을 내어줬고 택시 기사는 흘러나오는 음악을 케이팝으로 바꿔주거나 내가 뭘 사고 싶다고 말하면 그걸 파는 곳에 차를 슬쩍 세워줬다.  


왓우몽 메디테이션 센터 가는 길


그들의 친절 속에서 내가 배운 건 받아들이는 문화다. 한국에서는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나보다 남이 잘되는 것을 질투하는 경향이 있는데 태국에서는 사촌이 땅을 사면 그 사람이 전생에 좋은 일을 많이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받아들인다.


그렇게 받아들이면서 더 좋은 일을 많이 하려고 하고 결국에는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것, 그게 이 사람들의 삶의 목적이다.


태국에서 돌아온 이후, 나도 내 앞에 일들을 받아들여보자고 다짐했다. 남과 나를 비교하지 않고 있는그대로의 내 상황을 받아들이면서 현재에서 더 좋은 일을 많이 하자고, 그런 마음으로 살다보면 혹시 알아? 정말 더 멋진 다음 생이 기다리고 있을지. 그게 아니더라도 좀 더 행복해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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