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초롱 Jan 24. 2021

술 마시면 된다고? 나의 불면증 극복기 (2)

불면증 해결하려다 알코올 중독 

* 이 글은 총 세 편으로 작성했어요. 불면증 극복기의 1편에 이은 2편이에요. 혹시 1편을 보시려거든 

이곳을 클릭해주세요.

나의 불면증 극복기 (1) 





2. 스트레스 관리법 

일 끝난 후 나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 시간에 무엇을 하면 가장 좋을까? 많은 선택지가 있었지만  평소에 나를 기쁘게 하는 것들을 해보고 싶었다. 그래야 스트레스가 좀 해소될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것은 친구와 통화하기, 인스타그램에 사진 올리기, 인터넷 쇼핑하기였다. 


친구와 수다를 떨면 실제로 스트레스가 많이 해소된다. 웃고 떠들다 보면 회사 일을 잠시라도 잊게 됐다. 그런데 이 방법은 일주일에 고작 하루 정도 할만한 것이었다. 날마다 내 고민 상담사가 되어 줄 친구를 찾기 어려울뿐더러 시간과 비용이 역시 많이 드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인스타그램에 날마다의 이야기를 쓰면서 위안을 삼곤 했다. 사진을 열심히 올리고 다른 사람들이 보내주는 댓글에 다 화답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전화 통화만큼 스트레스가 해소 되질 않았다. 뭔가 허전한 기분을 느꼈다. 


결국 인스타그램의 업데이트에 이어서 쇼핑몰 MD가 추천하는 세일 상품을 찾게 되었고 장바구니에 물건을 담았다 지웠다를 반복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자정에 하는 세일 상품을 기다렸다가 매우 저렴한 가격에 사면서 만족감을 느꼈다. 그때엔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스트레스가 없는데 

분명 일이 잘 풀리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수면의 질은 좋지 않았다. 예전보다 나아지고 있다고 스스로 위안하며 시간을 보냈다. 

사람들은 인스타그램의 내 피드를 보면서, 새로운 옷을 자주 사 입는 나를 보면서 내가 분명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곧잘 웃고 다정하게 얘기를 건네는데 문제가 없었으니 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진짜 차분하신 것 같아요.”

“스트레스 잘 안 받는 타입이시죠, 대단해.”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나를 평가했고 어느 순간 나는 그 평가에 힘입어 점점 더 ‘스트레스를 잘 안 받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속상한 일이 생겨도 남들을 먼저 위로하며 나는 괜찮은 척, 태연한 척 굴었다. 


릴랙스에는 술이 최고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의 나는 술의 힘을 전적으로 믿었다. 사람들 사이에 스트레스가 별로 없는 긍정적인 캐릭터가 되다 보니 술 먹자는 제안이 많았다. 처음에는 주량이 세지 않았는데 마시다 보니 그 누구보다 잘 마시게 되었다. 그런 나를 보면서 사람들은 더 마실 수 있지 않냐며 부추겼고 나는 기대에 부응하고 싶다는 마음에 연거푸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고 알딸딸하게 된 상태에선 바로 잠이 쏟아졌다.  밤마다 찾아오는 많은 생각에 술은 ‘뭐 어떻게든 되겠지.’ 라며 쿨한 답변을 내놓았다. 그래서 나는 술이 주는 이완을 좋아했다. 

사람들은 내게 ‘언제 술 한 잔 같이 해야지?’ 라면서 농담을 자주 건넸다. 그러고 보니 인간관계는 술로 만드는 게 아닌가 싶었다. 상사들도 술을 잘 마시는 사람을 선호했다. 그렇게 술을 통해 회사에서는 인기를, 집에서는 수면을 얻었다고 생각했다. 


몸이 보내는 경고 

세계 맥주 4캔에 만원, 너무 매력적이지 않은가? 편의점 아주머니가 새로운 세계 맥주를 가져다 놓을 때마다 나는 쾌재를 불렀다. 나와 함께 밤을 보내줄 새 친구는 계속 생겼다. 지루할 틈이 없었다. 

밖에서만 마시던 술을 집으로 가져왔다. 냉장고에 반찬은 없어도 맥주는 있었다. 처음에는 자기 전 한 캔으로 시작하던 것이 어느덧 두 캔이 되었고 맥주에 이어 와인까지 사 들여오게 되었다. 

와인은 많이 마셔봐야 그 맛을 안다는 친구들의 말에 칠레, 프랑스, 이탈리아 와인을 섭렵했다. 재미있는 시도였다. 그런데 금방 부작용이 생겼다. 맥주는 한 캔으로 끝나지만 와인은 한 병을 다 마셔야 끝난다는 것이었다. 코르크 마개로 아무리 덮어도 다음 날이면 맨 처음의 그 맛이 나질 않았다. 와인은 아끼면 맛이 변한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나는 와인 한 병을 시작하면 끝까지 다 마셔야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다.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은 겨울에 일이 터졌다. 그날도 어김없이 회사 일을 마치고 돌아오며 맥주를 사 오는데 뭔가 머리가 아프고 몸이 으슬으슬했다. 그냥 컨디션이 좀 좋지 않은 것이라 여겼는데 아침에 노란 콧물이 뚝 떨어지는 것을 보고 병원에 갔다. 


이비인후과에서는 감기가 오래돼서 생긴 축농증이라고 했다. 나는 그때까지 내가 감기를 앓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그런데 병원 진단이 그랬다. 의사의 약 처방에 따라서 일주일은 술을 마시면 안되었다. 정말 끔찍한 일이었다. 나는 3일 차까진 약을 먹고 어느 정도 호전되었다 스스로 판단했다. 그리고  다시 술 약속을 잡았다. 

일주일 뒤, 머리가 정말 깨질 듯이 아팠다. 잠을 자고 일어나도 힘이 없고 무기력했다. 아무래도 축농증 때문인가 싶어 다시 병원을 찾았다. 그리고 그때 나는 내가 A형 독감과 B형 독감을 동시에 앓고 있음을 깨달았다. 

나는 날마다 술을 마시며 내 몸이 보내는 경고를 무시했던 것이다. 당연히 술을 마시면 열이 오르고 가끔 머리가 아프고 숙취로 인해 몸이 아픈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약 처방과 더불어서 링거를 맞았고 집에서는 혼자 격리된 상태로 지내야 했다. 독감 B의 진단으로 인해 회사에는 나갈 수 없었다. 당연히 술은 입에 대면 안 되는 것이었다. 


몸을 회복하기 위해서 술을 일주일 마시지 않았을 때, 내 몸이 아프다는 것을 그제야 느끼게 되었다. 술과 커피가 없이 초반 일주일은 몽롱한 상태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생각은 좀 더 또렷해졌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시도들이 결국 술로 이어졌고 어느 순간부터는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이 안 오는 악순환이 이어졌음을 깨달았다. 몸이 아프니까 그제야 나는 나의 일상을 되짚어 볼 수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잠 못 이루는 날이 많다면? 나의 불면증 극복기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