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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초롱 Mar 07. 2021

온 몸으로 취약점을 드러내며 걷기

뺑글이 안경을 쓰고 지내는 날들


요즘 나는  안경을 끼며 생활한다. 무려 세 번 압축하고도 다 담아내지 못한 초초초고도근시난시용 안경이다. 우리 집 사람들은 이 안경을 '뺑글이 안경'이라고 부른다. 사실 나는 어릴 적부터 시력이 굉장히 좋지 않았다. 얼마 전 시력교정이 가능한지 묻기 위해 들른 안과에서는 '마이너스 18 디옵터'라는 지금까지 최고로 안 좋은 근시 기록을 알려줬다. 기분 탓인지 아니면 실제로 의사가 기분이 안 좋았는지 모르겠지만, 그 사람은 굉장히 신경질적으로 내가 원하는 시술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말을 했다. 여러 사례가 있기 때문에 굉장히 보수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자신 있는 멘트에도 고민되는 수술인데 의사가 우려의 목소리를 내니 내 마음도 좋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뺑글이의 모습을 피해볼까 싶었는데 아쉬웠다.


안경 쓴 모습으로 지하철을 타고 수많은 사람들을 지나쳐 오면서 나는 '제발 내가 아는 사람을 만나지 않게 해 주세요.'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아닌 척 해도 내 마음은 여전히 그렇다. 이 모습이 완벽한 모습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안경을 쓰는 동안엔 저녁 약속을 하나도 잡지 않았고 날마다 가던 요가 스튜디오도 가지 않았다. 그 대신 완벽하지 않아도 되는 나만의 공간에서 차분히 즐길 수 있는 것들을 했다. 그래서 요사이 몇 권의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이상하리만큼 연달아 읽은 책들의 맨 앞장에는 취약점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작가 스스로가 자신에게 느꼈던 수치심, 힘들었던 기억, 그것을 알아차리게 된 계기에 대해 서술하고 있었다. 물론 책의 초반에 독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달아서 읽은 책들의 모든 내용이 그렇게 시작하니 뭔가 특별한 감정을 느꼈다. '그래, 이건 나에게 말하고 있는 거야.' 나는 그렇게 받아들였다.  


사실 안경을 쓰고 일상을 보내는 것이 최근의 일은 아니다. 3년 전, 안과에서는 콘택트렌즈 착용 시간을 서서히 줄이고 안경을 써야 할 때라고 일러주었다. 벌써 하드렌즈를 낀 기간이 20년이 훌쩍 넘었기에 내 눈이 콘택트렌즈를 오래 버티기 힘들 것이고 눈 건강에도 안경이 좋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출근할 때, 적어도 오전 근무시간까지는 안경을 썼다. 처음에는 너무나 어색하고 힘든 일이었다. 만나는 동료들마다 '제가 눈이 너무 나빠서요.'라고 말하며 마치 출전하지 못한 군인이 하는 변명처럼 말하고 다녔다. 지금은 익숙해진 상황이긴 하지만, 가끔 외부 미팅이 있거나 원피스를 입어야 하는 날, 요가 스튜디오를 갈 때 - 힘든 자세를 하면 안경이 후들거린다- 나는 렌즈를 낀다. 취약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기 때문이다.


안경을 자주 쓰는 날이 오기 전까지 나는 친한 친구 유미에게도 이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내가 만난 모든 남자 친구에게도 단. 한. 번. 도 안경 쓴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안경을 쓴 모습을 보인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단점을 모두 보여주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애초에 연인관계는 완벽해야 한다는 불필요한 관념을 가졌던 스무 살의 나에게 좋지 않은 시력은 엄청난 취약점이었다.


자신의 취약점을 주제로 한 책을 몇 권 읽고 나니 그들에 비해 나의 취약점은 그리 큰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또 다른 생각으로는, 안경 쓴 모습보다 더 큰 결점이 나에겐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를 들면, 나는 가끔 숫자를 틀린다. 0.3 퍼센트를 3퍼센트라고 말하거나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1억 단위의 큰 금액은 뒤에서부터 일, 십, 백, 천, 만을 읽어오지 않으면 쉽게 알아채지 못한다. 그리고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구부정한 어깨로 걷기도 하며, 비행기나 호텔을 예약할 때 너무나 실수를 자주 해서(2박 3일인데 3박 4일을 예약하거나, 도착지점을 잘못 지정하는 등) 여동생에게 꼭 컨펌을 받는 편이다. 생각해보니 그 많은 결점을 제치고 가장 취약한 점이 뺑글이 안경일까. 적어도 뺑글이 안경을 쓰는 내 모습에서 금전적인 손실은 발생하지 않는다.


그냥 안경을 쓴 모습을 싫어하는 나 자신 때문에 이 모습은 나의 취약점이 된 것이다. 안경 쓴 모습을 공개해야만 했던 출장 가기 전 날 밤, 나는 얼마나 고민스러웠는지 모른다. 사람들이 내 모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계속 짐작하면서 잠을 설쳤다. 그런데 다음날 아무도 나의 모습을 신경 쓰지 않았다. 단지 상사가 '모범생처럼 보이네.'라고 한마디 했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도 수술을 고려하는 나에게 '굳이 무리하지 않아도, 지금 이 모습으로도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좋은 동료가 있었다. 심지어 지난주에 이어 이번 주까지 뺑글이 안경을 쓴 나를 데리고 등산을 다녀주는 지현이도 있다.


그러고 보니 나 스스로 만든 취약점 때문에 나는 놓친 것이 있다. 캠핑이나 수영을 못한 것. 단지 시력이 좋지 않아 시도하지 못한 게 맞을까. 오히려 안경 쓴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피한 일들이 아니었는지 짐작해본다. 취약점을 보여줌으로 해서 '어떤 선까지만 친해질 수 있는 사람'이라는 딱지를 붙여준 옛 친구들에게 더 나다운 나를 보여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취약점에 대해서 말하다 보니 예전 영어 스피치 모임 때 만난 J가 떠오른다. J는 프랑스 사람이었는데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 자신을 소개하면서 정말 사적인 얘기까지 다 말했다. 영어로 말했기 때문에 나는 그녀의 스피치를 온전히 알아듣긴 어려웠다. 하지만 '이혼, 이별, 죽음, 병' 들을 주제로 한 얘기였고 나로서는 꽤나 충격적이기도 했다. 그런 일을 겪었다는 것이 충격이라기보다는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취약성을 다 보여준 그 태도 때문이었다. 스피치가 끝나고 쉬는 시간에 나는 J에게 그런 얘기를 해줘서 고맙다고, 넌 참 대단히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J는 그런 경험이 모두 자기 자신이기 때문에 말할 수 있다며, 자신은 용기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에 대해 말한 것일 뿐이었다고 답해주었다.

그 말에 좋은 기운을 얻어서인지, J 다음에 스피치를 해야 했던 나는 서툴게 스피치를 이어갈 수 있었다. 완벽하지 못한 것이 진짜 내 모습이라고 생각하니 모든 것이 쉬웠다. 덜덜 떨면서 온 몸으로 취약점을 보여준 덕에 그 모임에선 좋은 사람들을 많이 사귈 수 있었다.


취약점을 드러낸다는 것은, 어쩌면 자기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는 일이다. 그런 면에서 요즘의 나는 나의 취약점을 전면으로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취약점을 극복했다는 말은 아니다. 내면의 한 구석에서는 '제발 이 모습을 oo는 보지 못하게 해 주세요.' 라며 소망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여전히 나는 약하다. 하지만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내 안경 쓴 모습을 나 스스로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점이며, 어떤 면에서는 이런 시력을 갖게 된 것에 대해서 감사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적어도 취약점을 드러내는 법을 알게 된 셈이니까. 그리고 취약한 나의 모습을 너그러이 받아주는 사람들이 진짜 내 친구라는 것을 알았으니까.


어제 읽은 책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다.

아무리 시력 2.0을 가진 사람이라고 해도 자신의 내면을 보지 못한다면 장님이나 다름없다.

나는 내 뺑글이 안경이 내 내면을 볼 수 있는 좋은 시력이면서 동시에 진실을 발견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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