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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초롱 Sep 29. 2021

뭐 그런 거 가지고 화를 내?  

나의 요가 에세이 <생각을 멈추고 숨은 내쉬세요> 

재작년 이맘때쯤 일이다. 요가를 마치고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던 중, 선생님이 문득 내게 무슨 일이 있는지 물었다. 나는 특별한 기억이 없어서 별일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내 몸의 상태를 유심히 보시더니 너무 화를 참으면서 사는 게 아니냐는 말을 하셨다. 그리고선 평소 화를 참는 버릇이 있다면 통증을 느낄 것이라며 오른쪽 등라인의 어떤 자리를 짚었다. 강한 터치가 아님에도 나는 찌릿한 통증을 느꼈다.


"저는 화낸 적이 없는데요. 웬만하면 잘 넘기려고 하는 편이에요."

나는 정말이지 갈등을 싫어했던 사람이었다. 웬만하면 좋게 넘어가자는 생각에 상대가 나를 기분 나쁘게 했다 치더라도 굳이 내색을 하지 않았다. 또 불편한 상황을 마주할 때 어떻게든 그것을 피해 가려고 애썼던 사람이었다. 그런 습관이 워낙 오래되었다 보니 나 스스로 화를 안 낸 것인지 아니면 화가 났다손 치더라도 그걸 눌러 감춘 것인지 알기 어려울 정도였다. 게다가 당시에 나는 화를 내지 않는 것을 내 큰 장점으로 여겼다.


내가 화를 참으며 살아왔다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선생님은 화난 느낌들이 몸 안에 축적되어 있다고 하셨다. 그 말에 따르면 나는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화산이었다. 뜨거운 화의 감정이 용암처럼 내 몸속을 돌아다니다가 어느 순간 임계점을 넘으면 엄청난 양과 속도로 폭발할 것이 뻔했다. 가슴이 아프고 명치가 턱 막혔다. 뭔가 불편하다 싶으면 느껴지는 내 몸의 반응이었다.


언제 폭발해도 이상할게 없던 나


나는 최근에 화났을 만한 일이 있었는지 되짚어 보았다. 마음에 걸리는 사건 하나가 있었다. "얼마 전, 회사에서 인기투표를 했어요. 최근에 제가 여러 행사도 하고 동료들과 친하게 지냈던 터라, 저는 제가 뽑힐 거란 기대를 했어요. 그런데 저 말고 다른 사람이 된 거예요. 거기까지 괜찮은데 갑자기 옆에 앉은 다른 동료가 저한테 귓속말로 '야, 네가 되었어야 했는데'라고 했죠. 그 동료가 그 말만 하지 않았어도 괜찮았을 텐데 그 말을 듣자마자 갑자기 화가 났어요. " 그렇게 말을 꺼내고 나서도 나는 당시 그런 감정을 느꼈던 내가 유치하게 보일까 두려웠다. 인기투표에서 1등 못했다고 화내는 어린애 같이 보일까 봐서였다.


"그럴 때 그냥 그 감정을 인정하면 돼요. 오히려 그런 생각을 하는 나를 바보 같다고 생각하거나 유치하다고 여기면 안 돼요." 선생님은 나의 마음을 빤히 들여다보듯 대꾸해 주었다.


솔직하자면 인기투표로 선정된 동료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가 상을 받자 괜히 심술이 났고 진심으로 축하해 주질 못했다. 그렇게 마음을 숨기고 있었던 찰나, 옆자리에서 다른 동료가 했던 말인 '네가 되었어야 했는데'가 나의 화를 더 둗구었던 것 같다. 그때 나는 내가 아니어도 괜찮다고 말했지만 속마음은 어째서 내가 선발되지 못했는지, 내가 상 받은 동료보다 뭐가 부족했는지를 파악해보려 애쓰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유치해 보일까 봐 화를 삭였고 퇴근 후 집에서도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화를 참지 말라는 선생님의 말에 나는 고민이 되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순간에 유치하다는 걸 알면서도 버럭! 하면서 "나한테 투표 안 한 사람 누구야!"라며 소리라도 질렀어야 했을까? 그래서 나는 선생님에게 화를 인정하고 넘기는 방법에 대해서 물었다. 그러자 선생님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이렇게 답해 주었다.


"그냥 인정하면 돼요. 내가 오늘도 이런 것 때문에 화가 났구나. 이렇게요." 그리고 그렇게 자기 자신에게 솔직하고 스스로의 감정을 인정해 줄 때야 화가 사그라질 수 있다는 설명을 보태해 주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나는 화가 날 때마다 참지 않고 그 느낌을 그대로 인정하려 애쓰게 되었다. 그렇게 하기로 시작한 날부터 하루에 몇 번씩 화나는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내가 화를 안 내는 사람이라고 여겼었는데 잘 살펴보니 나는 화를 안 냈던 것이 아니라 화나는 감정을 무시하고 있었다.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빈번하게 화를 냈던 사람인 것이다.(웃음)


최근에도 여전히 하루에 몇 번씩 화가 날 때가 있다. 그때마다 나는  그걸 회피하는 것이 아닌 '그래. 내가 또 화가 났구나.'라는 말로 그 감정을 인식하려고 한다. 그리고 화가 잘 풀리지 않는다면 사무실을 나가 산책을 하거나 커피를 마시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어주면서 그 감정을 달랜다. 그것으로도 화가 풀리지 않으면 엉엉 울기도 한다. 그렇게 하다 보니 자연스레 화는 조금씩 사라지고 화로 가득했던 내 마음에는 조금씩 공간이 생기게 되었다. 그리고 차츰 화를 더 빠르게 떠나보낼 수 있게 되었다.


뭐 그런 거 가지고 화를 내? 사소한 일로, 유치하게, 어린애도 아니고, 사회생활을 잘하려면 화를 내면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

이제 그런 것 없이 화나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니 그 감정들은 예전보다 빠르게 나를 비켜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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