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초롱 Oct 06. 2021

춤 출 수 있을 때 춰라

나의 요가 에세이 <생각은 멈추고 숨은 내쉬세요> 

어릴 적, 피아노 대회를 나갔을 때 기억이 난다. 그때의 나는 초등학생 피아노 경연 대회를 위해 정말 열심히 연습을 했다. 그리고 덜덜 떨면서도 무사히 연주를 마쳤다. 시상식에서 나는 내 이름이 불리기만을 간절히 기다렸다. 장려상, 우수상을 받은 몇 명의 사람들이 호명되었다. 뒤로 갈수록 큰 상이 었기 때문에 나는 앞에서 내 이름이 불리지 않았다면 승산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수상에 대한 마음을 버렸다.


그런데 대상을 부르기 전, 특상에서 내 이름이 호명되었다. 그때의 깜짝 놀라면서 동시에 기쁜 감정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데 그 순간, 나는 기쁨을 감추기 위해 애썼다. 환하게 웃기보다는 애써 담담해했고 절대 눈물을 보이면 안 된다는 마음이 들었었다. 그래서 옆에 앉아 있던 분이 내게 "어머, 애는 기쁘지도 않나 봐. 표정이 왜 이래." 라면서 한소리 하셨다.


돌이켜 보건대, 그때 나는 내 감정을 들키면 안 된다는 압박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기대보다 큰 상을 받은 것에 대한 기쁨, 늦게 호명되어 생긴 긴장감, 오랜 노력에 보상을 받았다는 감격스러움을 꾹 눌렀다. 엉엉 울고 싶기도 했지만 울보라는 별명 때문에 눈물을 최대한 참았다. 울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으니 당연히 환하게 웃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때 나는 일그러진 표정으로 상을 받았다.


비단 어릴 적뿐일까. 이후에도 나는 좋은 일에 너무 기뻐하면 다른 사람들의 시샘을 얻기 쉽다는 말에 따라 기쁨을 표현하는 걸 주저했다. 누군가 내게 축하한다고 말해올 때면 별 일 아니라고 대꾸하며 최대한 기쁨을 티 내지 않으려 했다. 또  운이 좋았다는 말로 기쁨의 표현을 대신했다. 그렇게 감정을 누르다 보니,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습관이 되어 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이 보내 준 메시지 하나에 마음이 흔들렸다. 그 메시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춤을 출 수 있을 때 춰라"


기뻐할 수 있는 것도 순간이니 그때를 놓치지 말라는 뜻이었다. 이 문장에 따르면 나는 춤 출수 있는 순간에 매번 아닌 척을 하다가 몇 번의 춤출 기회를 놓쳐버린 셈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놓쳐버린 기회들은 내 삶을 참 재미없게 만들었던 것 같다. 이런 감정 억누르기 습관은 스스로를 인정하지 않는 마음으로 이어져 나를 더 부정적이게 만들었다. 감정을 참으면서 살다 보니 나와 달리 자유롭게 감정을 표현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에게 부정적인 감정이 들었다. '저 사람 왜 저래'의 미운 감정은 나의 통제하는 습관에 기인한 것이었다.


앞으로 어떤 추면 되는거야? 어떤 동작 하면 돼?

메시지에 따라 나는 춤을 출 수 있을 때 추기로 마음을 먹었다. 아주 격렬한 선까진 아니지만 그동안 내가 했던 기쁨을 감추는 행동은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단지 운이 좋아서 할 수 있었다는 거짓말도 금지다. 나는 그런 말이 습관적으로 입에서 나오려 할 때마다 마음의 새로고침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얼마 전, 드디어 내게 기쁨을 표현할 수 있는 순간이 생겼다. 그간의 노력을 인정받았고 우승을 축하하는 선물까지 생겼다. 소감을 말해달라는 질문에 나는 예전과 다르게 답했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저 스스로에게 감사해요. 지금 저는 정말 기뻐요."

활짝 웃으며 정말 기쁘다고 말하고 나니 내 마음이 충만했다. 집에 돌아오면서 과거 트로피를 들고도 웃지 못했던 어린 시절 내 생각이 났다. 춤출 기회가 있다면 앞으로는 열심히 추겠다는 결심으로 선물 받은 요가매트를 꼭 끌어안았다.



이전 17화 뭐 그런 거 가지고 화를 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