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요가 에세이 <생각은 멈추고 숨은 내쉬세요> 28화
나는 종종 친한 회사 동료들에게 질문을 한다. "당장 오늘 은퇴한다면 내일 어떻게 보낼 거예요?" 이 질문을 시작으로 나누는 대화는 늘 근사하다. 사람들이 평소에 어떤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무엇을 위해 시간을 보내는지 알 수 있는 최고의 질문이기 때문이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동료 A에게 은퇴한 다음 날을 물었다. 그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이렇게 답했다. "강원도 같은 좀 조용한 곳에서 아내랑 딸 아이랑 살고 싶어. 조용하게 내 시간 보내면서."
그전까지 내가 수집한 답변은 대게 '동남아 어디에서 해외여행을 하겠다.'라든가 '어디 바닷가에서 세일링을 하겠다.' 등이었는데 A의 답은 비교적 일상적이었다. 그래서 내 입에선 "지금이랑 다를 게 없잖아."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는 지금과 다른 것이 단 하나 있다면 바로 강원도로 거주지를 옮기는 것일 거라고 답했다. 자신에게 중요한 건 조용한 곳에서 소중한 사람들과 지내는 것이라는 말과 함께. 그러면서 내게 같은 질문을 했다. 오늘 당장 은퇴한다고 치면 당장 무엇을 할 것이냐고 말이다.
"음... 오전에는 일단 요가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점심 먹고 글쓰기를 하고 책 좀 보다가 오후에 산책하면 좋지 않을까?" 머뭇거리다가 말 끝을 흐린 내게 그는 웃으면서 몇 분 전의 말을 고스란히 옮겼다. "지금이랑 별반 다를 게 없잖아." 그러고 보니 내 대답 역시 특별할 것 없었다. 뭔가 더 차별점을 두어야겠다는 생각에 몇 가지를 덧붙였다.
"요가, 글쓰기, 그리고 내 주변에 아티스트들이 많았으면 좋겠어.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나고 하고 싶은 일만 하는 날들이 이어졌으면 좋겠어." 그러자 듣고 있던 A도 자신 역시 그렇다면서 지금과 다를 게 있다면 바로 그것일 거라고 했다. 그리고선 내게 "넌 이미 은퇴 후 다음 날처럼 살고 있잖아."라고 말해줬다. 그 말에 내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은퇴 후 다음 날처럼 날마다를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난 줄곧 은퇴 다음 날을 꿈 꿔왔다. 은퇴를 해야만 내가 원하는 것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동료와의 대화로 내가 원하는 것을 추려보니 그건 다름 아닌 요가, 글쓰기, 좋은 인간관계였다. 지금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나 은퇴 후 다음 날처럼 살고 있잖아." 나는 크게 웃었다. 갑자기 내가 엄청 멋진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날의 대화를 끝으로 은퇴에 대한 집착이 사라졌다. 은퇴 후 다음날과 지금이 제법 비슷하다면 그거야 말로 잘 살고 있는 게 아닌가? 굳이 어떠한 때를 기다릴 필요 없이 원하는 것에 집중하며 산다면 그것처럼 멋진 것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은퇴를 기다리는 것을 그만두고, 날마다를 은퇴 후 다음 날처럼 살자고 마음먹었다.